신하·유생에 던진 78가지 질문
시대적 상황에 맞춰 다시 풀이해
‘조선 최고의 왕’ 격찬 이유 이해



조선왕조 임금 27명 가운데 가장 개혁적이었던 왕은 단연 정조였다. 또한 그는 경제와 국방, 민생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 올린 통치의 대가였다.

정조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 사람에게 해결 방안을 물었다. 최근 출간된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개혁 군주 정조가 신하와 학자, 유생 등에게 나라의 정책을 78가지 질문한 것을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풀이한 책이다.

이 책은 정조가 꿈꾸던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과 최고 지도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당쟁이 극심했던 시대에 분열된 나라를 이끌어야 했던 정조는 사회 통합을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해 지도자의 올바른 정치철학,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국가의 모습을 고민하는 지금의 새 정부에게도 작은 도움이 될 책이다.

먼저 눈여겨볼 대목은 소통이다. 언로(言路)는 정치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의사소통. 그래서 국가 통치행위에서 언로는 매우 중요하다. 정조는 "좋은 충고는 물이 흐르듯 순순히 따라야 하는데, 나의 정성이 부족해 관리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최근 들어 어쩌다 이렇게 언로가 협소해져 버렸는가? (중략) 그 이유는 크게 보면 나의 잘못이고, 작게 보면 여러 관리가 정책 비판을 불필요하게 여기고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정조는 자기반성과 함께 신료들에게 다음을 주문한다. "나의 부족한 점에서부터 정책의 잘잘못에 이르기까지, 크건 작건 관계없이 모두 지적해 논의해 주어야 한다. 나의 간절한 부탁을 저버리지 말라." 정조가 소통을 얼마가 중시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인재 등용이다. 정조에게도 인재 등용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훌륭한 인재를 어렵게 찾아냈으나 정작 관직을 주려고 하면 기존의 학벌이나 가문에 구애받고, 특별한 분야에서 능력이 탁월해 특별 채용을 하려고 하면 시험을 보고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고 반발한다"며 한숨을 토해낸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계급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과 열정이다." 정조는 똑똑한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는 과거제도와 같은 기존의 제도에만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라고 강조한다. 요즘 시대에 대입하면 학벌보다는 능력과 열정을 선택한 셈이다. 놀라운 사실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날'(인일)을 제정할 정도로 사람을 소중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중하다는 사실을 직접 실천한 왕이 바로 정조였다.

정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문화와 함께 군사 안보적으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대목에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안목이 드러난다. 경전 공부, 시와 음악 등의 예술 지원, 문체의 사용과 천문 등의 과학 관련 책문에서는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을 갖춘 학자 군주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왜 정조를 '조선 최고의 왕'이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왕정 시대의 사고가 어찌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 패러다임에 적합하겠는가? 정조의 지도력을 오늘날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과 통찰로 모든 사안의 본질을 보고 올바른 질문을 통해 거듭 고민해 국정과제를 풀어나갔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정조의 열정 어린 지도력과 사람을 향한 마음은 오늘날 사회 현실에도 충분히 대입할 수 있다. 정조의 책문은 그런 역할을 자임한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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