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원주민 시인 역사 이야기
미국 합병과 자치권 저항 담아내


'하와이는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다.'

북태평양 동쪽, 108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샌드위치 제도'로도 불리는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 하면 야자수가 수놓인 와이키키 해변과 훌라춤을 추는 아리따운 여성을 떠올리는 '우리'에겐 낯선 표현이지만, '그들'에겐 가슴 아픈 진실이다. 세계적 관광지인 하와이의 역사는 원주민들에겐 핍박의 시간이었다.

하와이 원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시인 겸 저항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는 <하와이 원주민의 딸>에서 화려한 관광지 이면에 가려진 하와이의 불편한 역사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원제는 '원주민 딸로부터-하와이에서의 식민주의와 자치권'이다. 1999년 출간된 책은 19세기 말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되는 과정과 이후 급격히 파괴된 원주민 세계, 자치권을 되찾기 위한 저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778년 원주민의 섬 하와이를 방문한 첫 이방인인 영국인 선장 제임스 쿡. '하올레(백인 이방인을 뜻하는 하와이어)'가 가져온 이질적인 문명은 이후 원주민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 중에서도 병균 유입이 특히 치명적이었다. 결핵·홍역·천연두·장티푸스 등 수많은 질병 때문에 100만 명이던 원주민 인구는 100년 만인 1800년대 말에는 4만 명 이하로 급감한다. 토지 소유권 개념이 없던 원주민들의 경작지는 하나둘 외지 자본가 손에 넘어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바뀌었다. 19세기 말에는 경작지의 4분의 3이 하올레의 수중에 넘어가 버렸다.

하와이 경제를 장악한 설탕 플랜테이션 경영자들은 본토와의 교역을 위해 미국과의 합병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하와이의 주권을 지키려는 원주민과의 갈등 속에 왕조 전복을 시도한다. 결국 하와이 왕조는 1893년 1월 미국에 권한을 이양하고 1898년 제25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때 최종 합병되고 말았다.

이후 하와이는 미국의 군사기지 겸 휴양지로 전락했다. 원주민 문화는 관광 산업을 위한 '호객용'으로 변질됐다.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담은 고대 무용인 '훌라'는 이국 정서를 팔아먹는 현란한 춤이 돼 버렸다. 조리기구나 망토·투구 등 원주민 공예품을 베낀 모형들은 호텔 장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문화가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 트라스크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조상이 먼 바다를 건너와 신성한 섬을 고향으로 삼았다. 하올레가 몰려오기 전까진 풍족한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교도인 하와이 원주민은 읽고 쓰기도 못하는 음탕한 식인종이다. 원주민이 쿡 선장을 살해하자 그 복수로 하느님이 병과 죽음이란 저주를 내렸다"고 배웠다.

성인이 돼 고향의 '진짜 역사'에 눈을 뜬 트라스크는 '역사학자와 인류·고고학자 등 주류 학계는 원주민 역사를 왜곡하고 영혼을 식민화한 주범'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하와이대 교수 시절부터 수업과 연구를 통해 과거 선교사들이 지어낸 수많은 원주민 폄하 신화를 고발하는 등 원주민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자치권을 회복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책에는 그가 하와이대 교수로 부임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부당한 대우와 이후 하와이 식민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하며 받은 탄압 경험도 담겨 있다.

트라스크의 발걸음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란 공고한 두 장애물을 동시에 넘어섰기에 더 큰 의미를 남긴다. 저자는 "우리 고향을 방문할 생각이라면 제발 멈추길 바란다. 우리는 관광객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예쁜 화관을 쓰고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건 채 훌라춤을 추는 무용수의 환한 미소 뒤에 감춰진 하와이 원주민들의 진짜 목소리다. 김해뉴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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