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어요?' 사람을 만났을 때 안부를 물으며 편하게 던지는 말이다. '밥 한 번 먹읍시다' 다음 약속을 기약하면서 하는 말이다.

한국인은 '밥'이란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친근하게 쓴다. 만날 때 밥으로 시작해서 헤어질 때 밥으로 끝난다. 상대의 건강 상태를 물을 때도 '밥'을 거론하고, 생활의 여유를 물을 때도 '밥'을 들먹인다. 기분이 언잖을때도 '밥맛이야'라고 말하면서 '밥'이라는 단어를 넣는다. 전국 어디서든 사투리 없이 단일한 단어인 '밥'은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밥 주세요'하고, 엄마는 자녀에게 '밥 먹어라'라고 할 정도로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밥'이라는 단어는 식사와 주식을 동시에 뜻한다. 매일 먹는 쌀밥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로는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배고픔 해소와 에너지 보충 등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음식 섭취를 의미한다. 한국인이라면 스튜, 시리얼, 빵, 면 등을 며칠 연달아 먹고 쌀과 보리로 지은 '밥'을 먹지 못했다면 밥 먹었다는 생각을 않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에게 밥은 오로지 쌀밥, 보리밥 정도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선인의 1인당 밥 소비량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많았다. 개화 초기 한국인의 생활 사진을 보면 공기 위로 산처럼 쌓여 있는 밥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부뚜막에 올려져 있던 삼촌의 큼지막한 놋그릇과 그 안에 산처럼 수북이 올라가 있는 밥의 양을 보고 '저렇게 먹어야 어른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문헌의 기록에도 일본에 다녀온 사신이 '왜에서는 한 끼에 쌀 세 줌밖에 먹지 않더라'며 놀라워하는 내용이 나온다. 중국에 갔던 조선의 사신 홍대용은 '청나라의 밥그릇은 찻잔만하더라'라고 전했다. 실제로 일반 백성도 남자도 아닌 명성황후의 밥그릇 크기만 보아도 밥그릇이라기보단 국그릇에 가까운 정도다. 청나라가 조선의 별칭을 '대식국'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한국인이 사랑하는 밥은 쌀과 보리가 주된 재료다. 밀을 이용한 음식은 밥이라 하지 않는다. 밀 재배지로는 초여름에 비가 적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같은 북한 지역이 유명하다. 한반도 남쪽은 보리에 비해 수확기가 약간 늦어 초여름에 벼를 심는 데 지장을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밀 재배는 덜 활성화되었다.

우리가 밥을 먹는다고 하면 쌀밥, 보리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밀가루 음식은 간식, 분식으로 취급받을 뿐 밥이라 하지 않는다. 서양인들처럼 아침, 점심, 저녁을 쌀이 아닌 밀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지역에서 쌀을 추수한 뒤 보리를 심어 2모작을 할 수 있다. 예전 벼농사를 직파로 할 때는 보리쌀 이모작이 힘들었다. 하지만 모내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내기 이전까지 비워진 물을 채우지 않은 논에 보리를 뿌려서 본격적으로 보리~쌀로 이어지는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가 망종이다. 양력으로는 6월 6일 무렵이 된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망종 무렵에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 것이다. 그러므로 쌀이 고온 다습한 여름을 지나면서 자라는 곡식이라면 보리는 서늘하고 건조한 겨울을 지나면서 자라는 곡식이다.

성장하는 환경조건에 따라 쌀은 따뜻한 성질을 갖고 보리는 서늘한 성질을 가지면서 인체에 작용한다. 예부터 어린아이가 열이 나면 우선 보리차부터 먹이고, 소화가 안 되거나 식욕이 없을 때 현미차나 숭늉으로 속을 달랬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위산이 많고 소화력이 강한 사람은 찬 성질의 보리를 먹고, 소화력이 약하면서 식욕이 적은 사람이라면 따뜻한 성질의 쌀을 먹는 게 한국인의 '밥'인 쌀과 보리를 더욱 건강하게 먹는 요령이다. 김해뉴스




 

조병제 한의학·식품영양학 박사
부산 체담한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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