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환-최지훈 부자가 하바로프스크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 앞에서 휴식하고 있다.



 

동해항에서 배 타고 긴 여정 본격 시작
이탈리아 돌아가는 70대 할아버지 눈길

아빠 친구들 환대에 진귀한 구경도 실컷
처음 만난 사이지만 다들 형제처럼 여겨

항일유적지 많은 우수리스크 가슴 뭉클
며칠 만에 즐긴 비빔밥, 육개장 정말 꿀맛

아무리 달려도 건물 없고 오직 넓은 들판
넓은 대륙답게 지역 따라 날씨 천차만별




지난 11일 낮 12시, 아빠와 함께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배를 탔다. 드디어 바이크를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있었고, 항일유적 탐사를 떠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었다. 자동차를 싣고 가거나 우리처럼 오토바이를 싣고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온 70대 할아버지였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난해 겨울 이탈리아를 떠나 러시아를 횡단했다고 한다. 몇 달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머문 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고 한다. 이 외에도 배에는 수많은 여행객들과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 집으로 돌아가는 러시아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중 어린이는 나 하나뿐이었다.

아빠는 "배가 시속 30~35㎞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배는 하루를 꼬박 달려 다음날 오후 2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항구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나라와 모습이 많이 달랐다. 러시아 군함들도 보였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조금 어색하고 낯설었다.

아빠의 오토바이는 통관절차를 밟는 데 하루가 걸렸다. 러시아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아빠 친구들이 밥도 사 주고 블라디보스토크 주변을 구경시켜 주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러시아 해안대포와 일본군이 만들었다는 진지도 봤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아빠 친구들 덕분에 가 볼 수 있었다. 어른들은 커피랑 맥주를 마시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맛있었다.

▲ 최지훈 군이 하바로프스크 중앙광장 분수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다음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아빠의 친구들이 배웅을 해 주겠다며 따라 나섰다. 아저씨들은 아쉬운 듯 한참을 함께 달리고 나서야 손을 흔들며 되돌아갔다. 궁금해서 아빠에게 언제 만난 친구인지 물었다. 무척 잘 해 주었기 때문이다. 대답은 의외였다. 사실 아빠도 이번에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앞집 뒷집 사람들도 잘 모르고 살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특히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서로를 형제처럼 여긴다고 한다. 우리가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한다고 하자,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형제처럼 대해 준 거라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두 시간쯤 달렸을까. 아빠는 "여기는 우수리스크라는 도시야. 이곳에는 항일 유적지가 많고, 고려인문학관도 있어"라고 말했다.

최재형 선생의 생가로 갔다. 그는 대한제국시대에 해외에서 활동했던 대표적 독립운동가다. 자신이 번 큰 돈을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도 찾아갔다. 만주, 연해주 등 곳곳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때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독립운동을 했다니 가슴이 뭉클했다.

고려인문화관에도 들렀다. 조선인들이 연해주에 정착한 과정을 볼 수 있는 장소다. 1890~193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았다. 옛소련이 그들을 강제로 먼 나라로 보내 농장에서 일하게 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코리아 사람이라서 고려인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 식당에서 며칠만에 우리나라 음식을 먹었다. 비빔밥과 육개장이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 우수리스크에 있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생가.
▲ 최지훈 군이 고려인문화관에서 태극기를 둘러보고 있다.

달레네친스크로 가는 길에 소나기가 몇 차례 내렸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이쪽의 맑은 하늘과 저쪽의 흐린 하늘이 모두 다 보였다. 우리가 가는 쪽 하늘에 먹구름이 보이면 잠시 후엔 꼭 비가 내렸다. 아빠는 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하면 오토바이를 세우고 미리 비옷을 입게 했다. 그래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도 비 맞을 일은 없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밤이 꽤 깊어서야 달레네친스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엄마가 보고싶지는 않다. 엄마 미안.^^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이곳은 땅도 넓지만 하늘은 더 넓다. 높은 산과 건물이 없고 오로지 넓은 들판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찻길에 차들이 많이 없다. 큰 화물차들은 우리에게 먼저 가라며 길을 비켜준다. 조금 달리다 힘이 들면 오토바이 뒤 박스에 기대어 잠깐씩 졸기도 한다. 내 자리 양옆에 있는 옷가방이 팔걸이가 돼 줘서 불편하지 않다. 나는 아빠와 벨트로 묶여 있기 때문에 떨어질 염려도 없다.

두 번 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달렸다. 어느 새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했다. 아빠는 오늘은 조금 달린 거라며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벌써 친구들이 보고 싶다. 김해 용산초등학교 친구들아, 보고 싶다!^^

최정환·최지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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