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관통하는 패권·다문화 분석
영화 40편에 보인 삶과 시대 정신

 

청산되지 않은 역사 속에서 충돌하고 있는 동아시아를 '영화'라는 언어로 읽어낸 책이 나왔다. 오랫동안 부산일보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내놓은 <영화로 만나는 동아시아>다.

책은 '21세기 신냉전체제', '근대 서양의 침략과 동양의 응전', '우리 곁의 다문화 사회', '폭력·사랑 코드로 읽는 재일한인의 세계시민주의', '경계를 넘어' 등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눠 영화가 품은 동아시아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 '패권주의와 다문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다양한 분야와 국적의 영화를 통해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패권과 다문화라는 주제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이를 테면 '21세기 신냉전체제'에서는 한반도 분단의 고통,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 중국과 대만의 복잡한 지형을 '고지전', '괴물', '귀향', '귀신이 온다', '비정성시' 등 1980년대 영화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의 상영작까지를 통해 재미있게 설명한다.

저자가 영화에서 주목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디아스포라'다. 재일한인학자 서경식이 '지역 분쟁, 전쟁, 식민 지배 등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이라고 정의한 단어다. 디아스포라는 어쩌면 동아시아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일 수 있겠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재일한인('피와 뼈',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 자본주의 도시로 흘러간 수많은 중국인들('파이란', '첨밀밀'), 베트남을 탈출하는 보트피플('영웅본색3')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책 곳곳에서 번뜩인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담은 '밀정'과 '암살'에서는 국정교과서 적용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다문화가정의 어두운 단면을 호소력 있게 그려낸 '완득이'에서는 외국에서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 자녀에 국가가 관심을 보이라고 호소한다. 홍콩의 중국 본토 반환을 앞둔 혼란스러운 세태를 반영한 '아비정전'에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낳은 '청년 난민'을 읽어내기도 한다.

'설국열차'를 '인류가 평화롭게 공생하는 새로운 세상의 희구와 열망을 담은 영화'로 해석하고, '마이 리틀 히어로'에서는 '다문화 사회 논의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참된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디서 비롯되는가 하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는 대목 역시 새겨볼 만하다.

책은 40편 가까운 영화를 소개한다. 영화의 상세한 내용이 함께 실려 영화를 미처 보지 않았더라도 영화와 주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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