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훈(가운데) 군이 몽골소녀 헤지스렁의 가족들과 함께 '게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여행사’ 운영 한국인 우연히 만나 가정 방문
외곽서 캠핑 즐기며 현지음식 ‘허르헉’ 맛 봐

해 넘어갈 무렵 도로서 몽골 청년 일행 조우
대평원 가로질러 전통 이동식 집 방문해 환대

온종일 친구에게 승마 배우며 여행 피로 달래
다시 이별 앞둔 시간 “말 가져가라”에 당혹감




러시아에서 몽골 국경을 넘었다. 위로는 북한이 있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인 우리나라에서는 육지로 국경을 넘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무척 신기했다. 먼저 러시아 쪽에서 짐 검사를 한 후 도장을 받고 바로 앞 몽골 쪽에서 다시 짐 검사를 했다. 우린 여행객이라서 짐 검사를 꼼꼼하게 하진 않았다. 그래도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 시간은 많이 걸렸다.

 

밤늦게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틀을 쉬면서 아빠는 밀린 빨래를 했다. 낮엔 시내 구경을 나갔다. 한국이랑 똑같이 생긴 큰 매장이 있어 깜짝 놀랐다. 직원들의 유니폼도 한국 마트의 것과 똑같았고, 파는 물건도 비슷했다. 매장 안 손님들도 한국 사람들이랑 똑같이 생겼다. 단 한 가지, 언어가 달랐다. 모두 한국어가 아닌 몽골어를 사용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몽골에서 사용할 휴대폰 유심카드와 먹을 것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해 울란바토르 시내를 통과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우리 오토바이를 보더니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10년 전 몽골에 왔으며, 현재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오늘과 내일이 마침 한가하다"며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자녀가 두 명 있다고 했다. 지금은 시골집으로 놀러가서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집은 매우 조용했다. 몽골사람인 아주머니가 요리를 해 줘서 맛있게 먹었다.


 

▲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와 캠핑을 한 강변.

 

▲ 몽골 전통음식 '허르헉' 재료.

아저씨는 근처에 보물같이 멋진 장소가 있다며 그곳에 가서 캠핑을 하자고 했다. 우리는 아저씨의 차에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시내를 벗어나 포장이 안 된 험한 도로를 한참 달렸다. 어느 새 눈앞에 개울이 나타났다. 경치가 정말 좋은 곳이었다.

아저씨 부부가 준비해 온 '허르헉'을 함께 먹었다. '허르헉'은 양고기와 야채를 달군 돌과 함께 냄비에 넣어 쪄내는 몽골의 전통 음식이다. "아저씨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개울가에서 하룻밤 캠핑을 하고 다음날 우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아빠는 다음에 또 몽골여행을 할 일이 있으면 꼭 아저씨에게 가이드를 부탁하겠다고 약속했다.

꽉 밀린 시내를 벗어나자 거짓말 같이 도로가 한산해졌다.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을 달렸다. 시간은 점점 저녁에 가까워지는데 저 멀리 하늘엔 먹구름이 보였다. 서둘러 잠잘 곳을 찾아야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오토바이가 한 대가 다가왔다. 몽골사람인 누나랑 형이 타고 있었다. 아빠는 앞의 먹구름을 손으로 가리키며 잠을 자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아빠의 뜻을 이해했는지 따라 오라고 손짓을 했다. 몽골 대평원을 가로질러 달렸다. 한참 지나자 몽골의 이동식 집 '게르'가 나타났다. 게르에는 누나와 형의 부모가 있었다. 아빠가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우리를 반겨주며 따뜻한 차와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또 우리에게 게르 안에서 잠을 자라고 청했다. 아빠는 피해를 주기 싫다며 게르 옆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울란바토르에서 산 술 한 병을 가방에서 꺼내 그들에게 선물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주변의 다른 게르에 있던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갑자기 파티가 열렸다. 아빠와 나도 함께했다. 아까 우리를 안내한 누나는 이름이 헤지스렁이라고 했다. 나보다 네 살 많은 15세란다. 누나는 양떼를 돌보고 또 게르에 쓸 물을 길어 오기도 했다. 나도 물 길어 오는 걸 도왔다. 말은 안 통했지만 웃는 모습으로 대해 주니 마음이 참 편했다.


 

▲ 최지훈(왼쪽) 군이 몽골친구와 함께 말을 타고 있다.
▲ 최정환 씨가 몽골인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누나의 아빠는 예전에 말 타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누나의 아빠가 말을 한 마리 데리고 나왔다. 그러더니 나를 말에 태우고는 말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같이 말을 타며 놀았다. 하루 종일 말과 함께했다. 말이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잘 따라줬다.

다음날 아침, 또 떠날 시간이 됐다. 짐을 챙기고 인사를 하려는데 누나의 아빠가 어제 내가 탔던 말을 데려 왔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꺼냈다. 선물이니까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말 한 마리를 선물로 주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린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고 있어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토바이에 묶어서 가라며 말고삐를 묶어 주었다.

아빠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2년 뒤에 다시 여행을 와서 가져 갈 테니 잘 보관해 달라고 말했다. 그제야 아저씨는 말고삐를 풀었다. 이제 겨우 이틀 본 사이인데 말을 선물해 주다니 아저씨의 마음이 넓게 느껴졌다.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몽골에는 내가 선물 받은 말 한 마리가 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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