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훈 군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알타이 개울에서 몽골 친구 부제, 그의 동생들과 목욕을 즐기고 있다.

 



모래 먼지 뒤집어쓰고 반나절 달려가
계곡 물 뛰어들어 목욕하고 빨래까지

인근 가게 게르 옆에 안전한 텐트 설치
주인 아들 부제와 친구 돼 마음껏 놀이

창고 건설 도와주고 이발까지 봉사활동
기분 좋은 할아버지, 양고기 실컷 대접




우리는 다시 몽골 남쪽도로를 타고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포장도로가 없어지고 모래, 자갈길이 시작됐다. 눈앞에 사막이 펼쳐지기도 했고 돌산이 무더기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동차도 다니기 힘든 길을 오토바이로 달리려니 중심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아빠가 능숙하게 운전한 덕분에 한 번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며 거의 반나절을 힘겹게 헤쳐 나가는데 저 멀리 계곡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이곳은 알타이다.

아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시원하게 물놀이를 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다. 아빠는 밀린 빨래도 했는데, 다른 나라지만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며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다. 시원하게 씻고 나니 다시 모래밭 길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계곡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가게에 들러 마실 물을 샀다. 주인 할머니에게 이 근처에 잠을 잘만 한 곳이 있냐며 잠자는 시늉을 했다. 할머니는 없다고 했다. 그리더니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고는 옆 게르에 있는 아주머니를 불러왔다. 할머니의 딸인 것 같았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한국에서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이었다.

 

▲ 최정환 씨가 창고 건설을 돕고 있다(위 사진), 공사를 마친 뒤 열린 양고기 파티.

아주머니는 결혼 전 5년 간 한국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말을 잘 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덕분에 게르 뒤편 안전한 곳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아주머니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이름이 부제라고 했다. 이후 사흘간 부제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아주머니는 한국식으로 김치찌개도 끓여줬다.

다음날 아침, 부제 가족은 할머니의 미니슈퍼 뒤에 작은 창고를 짓느라 바삐 움직였다. 아빠는 "맛있는 밥도 얻어먹었는데 우리도 일을 돕자"고 했다. 그들은 벽을 거의 완성하고 지붕을 올리고 있었다. 아빠는 키가 커서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지붕재료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발이 척척 맞았다. 덕분에 그 날 저녁 지붕공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함께 계곡으로 가서 몸을 씻었다.

이날 아빠는 제법 자란 내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었다. 어릴 때부터 직접 아빠가 잘라줬기 때문에 여행을 올 때도 일부러 머리깎는 기계를 챙겨왔다. 내 차례가 끝나자 옆에서 보고 있던 부제 할아버지와 외삼촌, 일하는 사람 등 3명이 서로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줄을 섰다. 아빠는 기분 좋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 머리카락도 다듬어 줬다.

 

▲ 최지훈 군이 친구 부제, 그의 여동생과 사진을 찍고 있다.

낮에 다 같이 일을 한 뒤 저녁에 씻고 머리도 새로 단장하니 부제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가족들과 함께 우리를 아주 깊은 계곡으로 데리고 가더니 양고기를 배가 터지도록 먹게 해 주었다. 모두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말이 안 통할 땐 부제 엄마가 통역을 해 주니 더 편했다.

몽골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도 월급을 50만~100만 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여기 와 보니 작은 가게에서도 한국 물건을 판매할 만큼 몽골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는 "몽골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에 돌아가면 일하러 온 외국 사람들에게 잘 해줘야겠다"고 말했다. 몽골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는 여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살지만, 모두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 동안 부제랑 야구도 하고 작은 도마뱀도 잡으며 마음껏 놀았다. 또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됐다. 부제 아빠는 우리 아빠에게 몽골 전통의상을 선물했다. 부제 할머니는 가게에서 몽골 술 1병과 통조림 2개, 과자 2개, 사탕 2봉지, 라면 3개, 그리고 물 2병을 내어 줬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인데 너무 많이 줘서 걱정이 됐다. 우리는 가져온 게 없어 드릴 것도 없었다. 항상 받기만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부제네 가족들을 다시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때는 우리가 더 많이 드리고 싶다. 떠나는 길이 조금 슬펐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부제야, 우리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 우리 집으로 초대할 게. 그때까지 잘 지내~!!"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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