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산마을 전경. 현재 50여 가구가 야트막한 산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다.




건물 한 채 없는 드넓은 평야 ‘녹색 향연’
2010년 구멍가게 개·보수해 회관 단장

집마다 작은 샘 깊이 파서 식수로 사용
공동우물에 술 넣어 냉장고 역할 ‘톡톡’

당산나무, 산 꼭대기서 외로이 자리 지켜
과거 벼·토마토 재배하던 농가 즐비

최근 돼지농장 들어오며 오·폐수 흘러와
비행기 소리, 분뇨 냄새에 골머리






부원동 호계로 사거리에서 부산 강서구 가락동을 향해 달리다 보면 도로 양 옆으로 드넓은 논이 펼쳐진다. 여름 논에 줄지어 선 벼들은 싱그러운 연두 빛을 뽐낸다. 주변에는 건물이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시야가 탁 트여 가슴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5분쯤 달렸을까. 도로 왼쪽에 세워진 안내석이 '전산마을'에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눈앞에 나타났다. '당산나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이인규(56) 통장과 박소순(84) 할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더운 날씨 탓에 얼른 인사를 나누고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마을회관에는 '전산마을 해피하우스'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벽에 그려진 커다란 해바라기에 눈길이 갔다. 현재의 마을회관은 김해시자원봉사센터가 후원금 4100만 원을 들여 2010년 11월 새롭게 단장한 곳이다.
 
이 통장은 "당시 구멍가게였던 건물을 개·보수했다. 지금은 마을 어디에도 가게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통이 좋은 곳에 마을이 있어 별다른 불편함은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박 할머니는 "집마다 차가 있어 마을 밖에서 장을 봐 온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해서 조금 불편한 점도 있지만, 하루 두 번 마을버스가 운행되기 때문에 괜찮다"며 웃었다.
 

▲ 과거 식수를 제공하고 냉장고 역할까지 했던 공동우물.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좌측 150m 지점과 우측 200미터m 지점에는 마을의 공동우물이 있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우측에 있는 우물에는 풀이 자라 우물을 가득 덮고 있다. 우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박 할머니는 "마을에 상수도 시설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했던 공동우물이다. 이전에도 대개 집안에 작은 샘을 파서 물을 썼다. 다만 주택이 고지대에 있어 샘을 깊이 파야 하거나 샘을 팠는데 물이 좋지 않은 집은 공동우물을 이용했다. 옛날에는 여기가 바다였기 때문에 샘에서 짠맛이 나는 집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도 물이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 마을사람들에게 공동우물은 냉장고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물김치, 술 등을 담가 줄을 연결해 우물에 매달아 뒀다는 것이다.
 
박 할머니는 70년 전 결혼하면서 마을에 정착했다. 마을의 웬만한 대소사는 모르는 게 없다. 마을 입구에서 본 큰 나무가 당산나무가 아니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아니다. 당산나무는 마을 중간에 있는 야트막한 산의 꼭대기에 있다. 아마 40년도 더 됐다. 태풍 때 나무가 저절로 넘어졌다. 작은 가지가 남아 그것을 보호하고 마을에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제사를 지내곤 했다"고 회상했다. 할머니는 "이제는 어르신들이 다 세상을 떠나 아무도 당산나무를 찾지 않는다. 원래 두 갈래로 나 있던 길에는 풀만 무성해졌다. 오가기가 힘들다. 나도 다리가 아파 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2014년 발간된 <활천지>에 따르면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큰 나무는 수령은 약 250년 된 팽나무라고 한다. 2007년 4월 김해시 노거수로 지정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박 할머니는 "나무가 너무 커서 큰 차들은 지나가지도 못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오래 된 데다 당산나무 품종이어서 아무도 베지 못한다. 나름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인규 통장의 안내에 따라 당산나무가 있다는 동산을 찾아 올라갔다. 나무 서너 그루가 모여 있었다. 이 통장은 가장 안쪽에 들어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당산나무라고 했다. 생각 했던 것보다 나무가 크고 잎이 무성했다.
 

▲ 마을 입구에 있는 수령 250년 팽나무. 2007년 김해시로부터 노거수로 지정됐다.

전산마을은 행정동으로는 활천동 22통, 법정동으로는 삼정동 22통으로 구분된다. 특정한 성씨를 바탕으로 하는 집성촌이 아니다. 현재 50여 가구, 약 115명이 살고 있다. 이 통장은 "절반은 마을 토박이들이고, 절반은 외지에서 전입한 사람들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자연환경이 좋으니 여기 살면서 김해 시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농사짓는 가구는 몇 안 된다. 예전에는 농사짓는 사람들 중 벼나 토마토를 재배하는 집이 많았다. 지금은 일손이 부족해 토마토는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산마을에도 최첨단 농업의 바람이 불고 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일손부족의 어려움을 덜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한다. 이 통장은 "곧 드론 방제를 시작한다. 경남도와 김해시가 지원하는 시범사업이다. 시에 드론 3대가 배정됐다. 우리 마을에 2대가 들어왔다. 최근 교육을 받았다. 나도 직접 조종한다. 12월에는 자격증도 따려고 준비하고 있다. 드론을 이용하면 3000평 방제 작업을 8분 만에 마칠 수 있다"며 자랑했다.
 
마을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최근 김해 신공항 소음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며 씁쓸해 했다. 잠시 마을에 머무는 동안에도 많은 비행기들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소음은 생각보다 컸다.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항공노선이 더욱 많아질 텐데 괜찮은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 직면한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통장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2년 전 김해와 부산의 경계지점에 돼지를 키우는 돈사가 들어왔다. 원래 부산에 있었다. 강서구에서 허가를 내 준 것 같다. 돈사에서 나오는 오·폐수 때문에 악취가 심하다. 항의를 하고 싶어 찾아가도 주인을 만날 수가 없다. 마을사람들이 돈사에 다녀오고 나면 며칠은 악취가 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기존의 돈사 옆에 새로운 돈사를 더 짓는다는 점이다. 지역주민들이 돈사 건립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박 할머니는 "이렇게 냄새가 많이 날 줄 몰랐다. 알았다면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처음부터 막았을 것"이라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다른 건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미 나이가 많으니 괜찮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소음과 악취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나. 비행기 소음과 돈사 악취 문제가 하루 빨리 잘 해결되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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