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와 경남발전연구원은 지난 13일 경남 창원 경남발전연구원에서 '가야유적 발굴과 복원, 활용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도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을 지방정책 공약에 포함시키라"고 한 지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행사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영·호남 가야사 전문가 4명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발표 내용을 정리한다.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김삼기 소장이 지난 13일 세미나에서 '가야고도 복원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김삼기 가야연구소 소장
“고도 보존·육성, 주민 상생으로
 사업 착수 앞서 철저한 준비 필요”

■ 곽장근 군산대 교수
“백제문화권에서 가야유적 발견
 호남지역 유산 보호책 마련 필요”

■ 최완규 원광대 교수
“일정한 공간 내 유적 연계해 연구
 대학에 관련 과목 개설 서둘러야”

■ 남재우 창원대 교수
“지역 편중 발굴조사 평면적 확대
 현황 파악하고 기본계획 마련을”





 

■ 백제·신라 고도 조성 추진 사례로 본 가야고도 복원 방안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김삼기 소장
21세기 들어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보존 중심의 문화재 정책은 각종 규제 때문에 주민 재산권에 제약을 주게 됐다. 결국 국민의 수용성 저하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4년 3월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 2011년 7월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하면서 주민과의 상생을 꾀했다. 고도는 과거 우리 민족의 정치, 문화 중심지다. 경북 경주, 충남 공주·부여, 전북 익산처럼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고도 보존·육성사업은 고도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 경쟁력과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사업이다. 고도의 역사문화성을 살리면서 주민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 상생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역에 실질적 혜택을 줘야 한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거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익산 금마면 중심지 일원 117만 6000㎡에는 개선사업비용 3652억 원을 들여 고도 보존·육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 인근 지역 주민 직접 지원사업도 최초로 시행한다. 주거환경·가로경관 개선, 고풍스런 이미지 조성 등을 통해 2012년 이후 해마다 관광객을 13.4% 증가시켰다.
 
올해부터 2038년까지는 '백제왕도 핵심유적 정비 복원사업'이 이어진다. 공산성, 부소산성, 미륵사지 등 9개 유적에 1조 119억 원을 투입한다. 토지 매입, 발굴조사 부족, 유적 간 연결체계 미흡, 정비 복원 합의 도출 어려움 등 갖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평성궁' 복원을 위해 25년간 기초연구를 하고 3년간 엄격한 설계과정을 거쳐 사업에 착수했다. 사업착수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 호남 동부지역 가야문화 조사·보존·활용 방안 / 군산대 사학과 곽장근 교수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운봉고원이, 서쪽에는 진안고원이 자리하고 있다. 
 
운봉고원에 지역적 기반을 둔 기문국은 5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6세기 중엽까지 가야계 소국으로 존속했다. 이 일대에서 180여 기의 말무덤과 가야계 중대형 고총, 최상급의 위세품(정치적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 출토되면서 기문국의 존재가 고고학적으로 증명됐다.
 
기문국은 가야와 백제가 문물교류를 하는 관문이었다. 대규모 철산 개발, 교역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철 유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운봉고원에서는 현재까지 30여 곳의 제철 유적이 확인됐다. 백제, 대가야, 소가야 등이 양질의 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최고급 위세품과 최상급 토기류를 기문국에 보내기도 했다. 
 
진안고원에 위치한 장수가야는 5세기께 등장했다가 6세기 백제에 복속된 소국이다. 이곳에서도 250여 기의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 발굴됐다. 금강 상류지역에서 가야 문화를 꽃피웠던 장수가야는 120여 곳의 제철 유적을 남긴 철의 제국이다. 또 80여 곳의 봉수가 발견돼 봉수왕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국시대 때 백제문화권에 속했던 곳으로만 줄곧 인식돼 온 전북 동부지역에서 430여 기의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 발견됐다. 가야사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현재 고총의 대부분은 잡목과 잡초 속에 갇혀 있거나 봉토를 평탄하게 다듬어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가야계 고총들이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역사 인식의 결여와 무관심 때문이다.
 
운봉고원의 기문국과 장수가야는 백두대간 속에서 잊혀진 가야계 왕국이다. 호남 동부지역 가야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학계의 관심과 행정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동시에 호남 동부지역의 가야 문화유산을 역사교육의 장과 미래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보존대책 및 정비방안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 백제 유적 보존·활용 사례를 통해 본 가야사 복원 방안 / 원광대 문화인류학부 최완규 교수
가야 연구는 절대적 문헌자료 부족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고고학 자료의 증가와 지자체의 노력 덕분에 서서히 지역학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노력은 경남 김해, 함안, 고성, 창녕과 경북 고령, 성주 등 가야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던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동부 산간지역인 전북 진안, 장수와 전남 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가야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도 주목받고 있다.
 
전북 익산은 가야의 정치·문화 중심지와 비슷하다. 고대 문헌자료의 기록이 전혀 없어 문헌을 통한 연구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고학 자료의 증가와 꾸준한 연구 덕분에 2004년 경주, 공주, 부여와 함께 고도로 지정됐다. 2015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세계적 역사문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익산은 오래전부터 마한과 백제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주목 받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역 조사연구가 진행돼 왔다. 1973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설립된 이후 본격적인 발굴조사와 학술회의, 학술지 발간 등을 통해 익산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 연구의 쟁점지로 떠올랐다.
 
연구소는 최근 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까지 포함해 발굴조사 결과보고서를 총 81권 발행했다. <익산의 선사와 문화(2003년)>,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어제와 오늘(1973~2009년)>, <익산역사유적지구 가이드북(2015년)> 등 많은 단행본을 발간했다. 1973년 11월 첫 학술회의를 개최한 이후 총 30여 차례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논문 28집을 만들었다. 역사문화 탐방 등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육에도 앞장섰다. 그 결과 마침내 고도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가야사 복원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고분 유적 연구중심에서 벗어나 일정한 공간 내 유적들을 상호 연계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예산 확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종합적인 가야연구를 위해 고도지정을 하고, 고고학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 가야유산학 관련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
 

■ 올바른 가야사 복원을 위한 경남의 과제 /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 교수
현재까지 가야사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가야가 점유한 영역은 경상도의 낙동강 유역과 그 서쪽 일대를 포함한다. 최대 판도를 이루었을 때는 전라도의 동부지역을 포괄했다. 이는 백제, 신라의 최대 판도에 버금간다. 개별 소국들의 생산력, 기술수준이 높아 이를 바탕으로 700여 년 동안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서 대외적으로 독자적인 역사를 지속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중첩돼 끝내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완성하지 못하고 멸망했다. 가야의 유민들은 멸망 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문무 양 측면에서 크게 공헌했다.
 
가야사 연구의 한계는 여전하다. 가야사회의 발전단계가 삼국에 비해 저급했다고 인식되고 있다. 가야 각국의 개별적 연구는 미흡하다. 종래 지역적으로 편중됐던 발굴조사를 평면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문헌자료에 의한 끊임없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연구의 다양성이 이뤄져야 한다.
 
가야유적은 현재 총 642곳에 분포돼 있다. 경남 521곳, 경북 21곳, 전라도 100곳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의 사적, 시·도지정문화재의 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발굴조사·지표조사를 통해 거의 분포만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유적은 고분, 생활유적, 패총, 성지, 추정 왕궁지 등 매장 문화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야사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복원을 위해서는 가야지역 문화유산의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야문화권 유적 보존을 위한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행정조직 확대와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 경남도는 가야문화유산이 밀집된 지역이므로 경북도처럼 문화재과를 신설해야 한다. '위원회' 같은 임시 기구가 아니라 정규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해당 공무원의 수나 전문직 직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별로 문화재 전담 전문직을 뽑아야 한다. 성급한 복원계획은 지양해야 한다. 가야의 경우 훼손되거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그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복원사업은 신중해야 한다. 
 

김해뉴스 /창원(정리)=이경민 기자 m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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