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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하고 느릿하고 조용한 한옥마을
(14) 산청 단계마을
수정 : 2017년 07월 26일 (09:37:47) | 게재 : 2017년 07월 26일 09:28:43 | 호수 : 333호 10면 배미진 기자 bmj@gimhaenews.co.kr
   
▲ 독특한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권씨고가. 전통가옥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러 모로 바쁜 세상 떠나고 싶어질 때
 진공같은 고요함 속 흙밟는 소리 어떤지

“학교 교문이 왜 저래”라고 놀라지 말길
 파출소·다방·식당까지 모조리 기와 지붕

 토석으로 만든 돌담길 산책삼아 걷다보면
 조선후기 가옥 전통주택 “정말 대단하군”



사람들은 늘 길을 걷는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거나, 방향을 잃어 헤매기도 한다. 정신없이 길을 걷다 문득 멈춰 섰을 때 주위의 모든 것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승객을 태운 버스는 배차시간을 맞추려 도로를 질주하고, 이어폰을 꼽은 대학생은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었는지 걸음을 재촉한다. 하다못해 개미와 비둘기까지 먹이를 찾으러 종종 걸음질치니 여러 모로 바쁜 세상이다.
 
경남 산청 단계마을 돌담길은 한적하고 느릿하고 조용하다. 참고로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다. 매일 걷는 투박한 아스팔트길도 아니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한옥과 까끌한 흙이 전부다. 고즈넉한 돌담길이 멋스러운 장소다. 흔히 산청 한옥마을이라고 하면 남사예담촌을 떠올리지만, 이곳은 진공과도 같은 고요함 속에서 흙 밟는 소리만 조용히 들려오는 소박한 마을이다.
 

   
▲ 한옥 형태로 꾸민 단계초등학교 정문.

김해에서 단계마을이 있는 산청 신등면 단계리까지는 약 1시간 30분 걸린다. 단계마을에 들어서자 이색적인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린이집과 면사무소, 다방, 식당, 초등학교, 파출소까지 건물마다 기와 지붕이 얹혀 있다. 김효영 문화관광해설사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단계마을을 한옥 보존단지로 조성하면서 모든 건물에서 기와지붕 공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마을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에는 붉을 단(丹), 시내 계(溪)를 쓴다. 신등면과 신안면의 경계에 있는 둔철산은 예로부터 쇠가 묻힌 산이라고 전해진다. 마을 앞 '계천' 암반도 붉은색을 띄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세도가와 부농이 모여 살아 부자마을로 잘 알려졌다. 그래서 마을이 있는 신등면은 등 따뜻하고 배부른 마을로 손꼽혔다.
 
단계마을은 역사가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1862년 철종 13년 때 단성현(산청지역의 옛 지명)에서는 대여한 곡식을 환수하는 환곡제도 때문에 백성과 관리 간에 갈등이 극심했다. 억압과 수탈을 참지 못한 김령, 아들 김인섭과 단성 농민들은 봉기했다. 우발적인 민란이었지만 이는 각 지방으로 확산됐다. 농민항쟁인 임술민란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김인섭 선생의 고택은 단계천 제방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김 선생의 후손인 김동준(89) 씨가 친절한 미소로 맞이한다. 김인섭 선생은 17세 때 진사에 합격하고 20세에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 정언이 된 인물이다. 벼슬을 시작하자마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일생을 후학 양성과 저술 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는 1849년부터 53년간 일기를 쓰며 29권의 책을 남겼다. 제자들의 문집을 널리 알리고자 1908년 목판으로 제작했다. 문집에는 시와 상소문, 편지, 기행문 등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단성민란 당시 정황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도 남아 있다.


 

   
▲ 이색적 풍경의 단계마을 돌담길.


신등면사무소 뒤쪽은 돌과 흙이 뒤섞인 돌담길로 이뤄져 있다. 옛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농촌가옥과 어울려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등록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돼 있는 옛 담장길은 유유히 산책하기 좋다. 담 위쪽에는 넓고 평평한 돌을 담장 안팎으로 내밀어 쌓았다. 기와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담 높이는 2m 정도여서 발뒤꿈치를 들어도 집 내부는 보이지 않는다.
 
담장 안 전통주택들은 조선 후기부터 건립된 부농가옥으로, 규모가 크고 권위적이다. 대표적인 곳은 권씨고가, 박씨고가 등을 들 수 있다. 
 
권씨고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문객을 경계하는 덩치 큰 개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가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이뤄져 있다. 사랑채를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100년도 더 된 목욕탕을 구경할 수 있다. 목욕탕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밖에서 땔감을 이용해 불을 지피면 안쪽 욕탕이 데워지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변기 아래 분뇨 저장공간에 돼지 우리를 만들어 놓은 친환경 화장실도 볼 수 있다. 인분을 먹는 '똥돼지'를 키웠던 현장이다. 안채 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껴본다. 살갗에 와 닿는 선선한 공기가 기분을 맑게 한다. 집 주인은 마루 안쪽의 방문을 천장 쪽으로 들어 올렸다. 뒷마당이 보이는 탁 트인 구조가 단연 돋보인다.
 

   
▲ 마루 안쪽의 방문을 천장으로 들어올려 시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택 대문 앞에는 폭 2m 정도의 낮은 일자 벽이 설치돼 있다. 이 또한 특이했다. 김 해설사는 "이 벽은 방문객과 바로 마주치지 않고 서로 예의를 갖추자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권씨고가의 독특한 건축구조를 구경하러 일본에서 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돌담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 보면 용담 박이장(1547~1622) 선생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용담정사가 나온다. 용담은 조선 중기 경북 고령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가 저술한 <용담선생문집>은 규장각에 소장돼 있을 정도로 문학적 가치가 높다. 자손들은 단계리로 이주해 정사를 지었다. 대지가 옆으로 긴 형상이라 사당과 사당협문이 병렬로 배치돼 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다소 을씨년스럽지만 옆으로 길게 이어진 독특한 건축물이라 구경해 볼 만하다.
 
단계마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단계천 시냇가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행로 유적지로 지정돼 있다. 1597년 선조는 거듭된 승전으로 위세가 커지는 이순신 장군을 견제하고자 꼬투리를 잡아 사형을 선고한다. 서울로 압송된 충무공은 판중추부사 정탁의 청원으로 간신히 출옥하게 된다. 대신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합천으로 향한다. 이순신은 합천으로 가던 길에 산청에서 사흘간 휴식했다. 그는 민폐를 끼칠까 걱정해 단계마을을 직접 통과하지 않고 단계천 시냇가를 선택했다고 전해진다. 단계리에 들어서는 지마고개를 넘으면 이순신추모공원이 보인다. 이순신동상과 추모비, 거북선 모형이 전시돼 있다.
 
마을을 돌아보는 데는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세월이 빚어낸 돌담길과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한옥을 구경하다 보면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근심과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겹겹이 쌓인 시간 속을 한가로이 거닐다보면 나만의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산청= 김해뉴스 /배미진 기자 bmj@gimhaenews.co.kr


▶산청 단계마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556-1.
가는 방법 = 부산서부버스터미널 이동 후 산청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 '산청-원지(차황)' 농어촌 버스타고 단계정류장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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