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고성의 중심지가 된 서양인거리 '양인가' 입구에 관광객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옛부터 미얀마~인도 남방실크로드 중계지
빼어난 자연경관에 고풍스러운 건물 즐비

관광객 배려해 영어, 한글, 일본어 표기도
공안 제외한 차량 통제하며 보행자 우선시

토산품 가게에 피자·클럽·펍·카페도 부지기
변해가는 전통모습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



중국 윈난성 북서부에 위치한 다리(大理)는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이곳은 과거부터 미얀마와 인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여서 남방 실크로드의 중계기지로 활용된 덕분에 지역 주민들은 풍족한 삶을 살았다. 꾸준한 무역으로 큰 도시를 형성한 다리는 여러 성을 건립하며 윈난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이름을 알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행정의 중심지는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이 됐지만 다리는 여전히 해외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여행지다.

다리에 있는 고대마을인 다리고성은 송나라(960∼1279) 때 축조된 성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수많은 해외 배낭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자연경관도 한몫 한다. 히말라야 줄기인 해발 4200m의 창산(蒼山)을 병풍처럼 거느리고 있으며 시가지 동쪽으로는 얼하이호수가 흐르고 있다. 산과 호수, 탑과 고성이 어우러져 오래된 돌길을 걷기만 해도 다리왕국의 역사를 마주보고 선 느낌이다.
 

▲ 한글 표기도 있는 양인가 이정표.

성 안에는 1~2층 규모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특히 성 안에 위치한 양인가(洋人街)는 고성에서도 가장 붐비는 중심지다. '양런지에'로 불리는 양인가는 직역하면 서양인거리다. 뜻처럼 외국인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다. 거리 중심에는 '양인가'라고 새겨진 큰 패방이 우뚝 서 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다리 관광해설사 리웨이 씨는 "1980년대 양인가에는 외국인 여행객이 묵을 수 있는 큰 호텔이 있었다. 장기 투숙하던 서양인들이 현지인들과 교류하며 변화한 끝에 지금의 거리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거리의 이름은 호국로였지만 여행명소로 알려지며 양인가로 개명했다. 지금은 외국인 못지 않게 현지인들도 많이 찾을 만큼 인기 있다"고 자랑했다.

다리고성으로 가려면 다리공항을 이용해도 되지만 워낙 공항 규모가 작아 비행편이 많지 않다. 대중적인 방법은 쿤밍공항에서 내려 쿤밍서부터미널로 이동한 후 5시간 동안 다리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다. 쿤밍에서 기차를 타고 가도 된다.
 

▲ 제철과일을 판매하는 거리의 상인들(위 사진), 골목길을 빼곡히 메운 기념품 상점.

대부분 중국의 이정표는 여행자를 배려하지 않지만 다리고성은 다르다. 영어와 더불어 한글과 일본어도 표기해 놓았기 때문이다. 약 2㎞인 양인가에는 한글 간판도 종종 눈에 띈다. 한자와 병기된 엉터리 한글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잔디를 밟지 말라는 표시는 '화초를 아끼고 보호하다'로 적어 놨다. 창산의 눈이 녹아 흘러들어오는 수로 주변 안내석에는 발밑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조심해 물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넓은 거리에서 한글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웨이 씨는 "세계 각국에서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만큼 이정표 교체작업은 필수다. 특히 한국인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어 한글은 당연히 넣어야 한다.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과 한인 게스트하우스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양인거리는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여행객의 쉼터다. 보행자를 우선시해 공안 차량을 제외한 이륜차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고즈넉한 돌담길을 배경으로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 토산품 상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가게 문 앞에 선 상인들은 저마다 능청스러운 몸짓으로 눈길을 이끈다. 엿가게 직원들은 절구를 이용해 질금을 빻으며 엉덩이를 흔든다. 덕분에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손님까지 불러 모은다. 소수민족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도 흔하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맥주와 커피를 팔고 있는 카페와 서양식 피자가게, 클럽, 펍이 즐비하다. 영어로 어지간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파란눈의 외국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거리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른다. 고풍스런 기와집 벽에 그려진 캘리그라피는 이색적이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흥얼거리다가도 K팝과 중국전통음악이 뒤섞여 들려오는 곳이 양인가다.

호주에서 왔다는 린다 그리어 씨는 "옥과 보이차, 은세공품 등 중국을 대표하는 기념품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오래된 고성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번화한 거리를 볼 수 있어 색다르다"고 미소 지었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많은 고대 건물이 보존된 도시지만 생각보다 서양식으로 많이 변한 것 같다. 상가 때문에 다리고성의 고즈넉한 색채가 흐려질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 외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양인가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토산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 팅난 씨는 "바이족과 나시족 등 소수민족이 만든 차와 팔찌, 목걸이는 최고 인기상품이다. 다만 상인들이 잘 팔리는 상품만 취급하려고 해서 가게마다 똑같은 물건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가격 경쟁도 치열한 편"이라고 말했다.

큰 도로에는 관광객을 위한 미니버스와 택시, 오토바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닌다. 다리의 관광명소를 돌아볼 수 있는 여행상품을 홍보하는 여행사 호객꾼과 택시기사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관광안내원은 20~30명의 관광객들을 인솔하며 고성 구석구석을 훑는다.

양인거리를 벗어나도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고성의 남문 성벽에 올라서면 다리고성의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이외에도 남조 후기(824~859년)에 창건된 숭성사 삼탑(崇聖寺 三塔)은 다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윈난 고대 역사문화의 상징이다. 걷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창산에 오르면 다리 시내와 얼하이 호수를 조망할 수 있다.

리웨이 씨는 "양인거리는 다리고성의 일부분이었지만 어느덧 가장 번화한 거리로 성장했다. 다리고성은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문화유적지임에는 틀림없지만 상점으로 빼곡한 고성의 거리에 실망하는 관광객도 더러 있다. 이색적인 관광콘텐츠를 개발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해뉴스 /다리(중국 윈난성)=배미진 기자 bmj@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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