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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후에 살인범 얼굴을 확인하게" 진실의 열쇠 쥔 국왕의 꼼수(80) 카베자 델 레이 돈 페드로
  • 수정 2017.08.09 09:43
  • 게재 2017.08.09 09:27
  • 호수 334
  • 9면
  • 남태우 김해뉴스 사장(leo@gimhaenews.co.kr)
   
▲ 세비야 알카사르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처녀들의 정원'.


형제 10명 제치고 왕위에 오른 돈 페드로
도시 치안 살피려 경호원 없이 왕궁 나서

인적 드문 주택가서 마주친 술취한 사내
왕 알아보곤 '썩을 녀석' 비꼬며 행패 부리자
칼로 찔러 죽인 후 서둘러 알카사르 돌아가

상자에 자신 흉상 넣고 "범인은 이 안에"
뒤늦게 살해범 얼굴 확인한 유족 '탄식'

 

스페인의 가을날씨가 늘 그렇듯 11월 세비야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짙게 끼어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이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로 제법 쌀쌀한 바람도 불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촉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땅 색깔을 바꿀 정도의 양은 되는 비였다.

'나처럼 감성적인 사람의 마음을 저미게 만들기에 딱 어울리는 날씨로군.'

카스티야왕국의 돈 페드로 국왕은 왕궁인 알카사르의 '처녀들의 정원' 한쪽 모퉁이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반대편에는 시종들과 경호원들이 기둥 뒤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다. 알카사르는 원래 이슬람 알모하드 왕조가 지은 왕궁이었다. 그는 왕궁을 허물고 무데하르 양식의 새 건물을 지어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었다.

돈 페드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오렌지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 넓은 야외 정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가 왕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예술적 감흥이 일 때면 그는 이곳을 찾곤 했다.

돈 페드로는 키가 183㎝로 매우 컸다. 온 몸이 근육질이어서 덩치가 더 크고 강인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외모와는 달리 책을 많이 읽었고, 문화와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음악과 시를 매우 즐겼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천천히 산책하면서 혼자서 시흥을 돋우거나 콧노래를 부르기에 정원은 가장 알맞은 장소였다.

'불쌍한 어머니!'

돈 페드로의 머리에 갑자기 포르투갈에 돌아간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포르투갈의 공주였던 마리아였다. 그녀는 스페인의 알폰소 11세 국왕과 결혼했지만 남편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남편에게는 당대 '스페인 최고 미녀'라는 칭송을 받던 애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했다가 1년 만에 남편을 잃고 알폰소 11세의 정부가 된 엘레노어였다.

마리아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큰 아들은 일찌감치 죽고 돈 페드로만 살아 남았다. 반면 엘레노어는 알폰소 11세와의 사이에 10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다. 남편은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돈 페드로에게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반면 엘레노어와 그녀의 자녀들에게만 애정을 쏟아 부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알폰소 11세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신들끼리 편이 갈라졌다. 대다수 귀족 가문들은 왕의 총애를 받는 엘레노어 편을 들었다. 아주 극소수만 '투자를 하는 셈 치고' 마리아와 돈 페드로를 지지했다. 그런데 알폰소 11세가 이슬람과 전쟁을 하러 갔다가 그만 흑사병에 걸려 졸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16세였던 돈 페드로는 그 덕분에 갑자기 왕위에 오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리아가 섭정을 했지만, 그는 20세 무렵부터 직접 국정을 운영했다. 마리아는 이런 아들과 불화를 겪다 포르투갈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머니가 욕심을 조금만 버렸어도 지금 이 궁전에서 아름다운 삶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 오렌지, 라임, 레몬 등 온갖 나무들이 즐비한 알카사르의 야외 정원.

어느 새 날이 어두워졌다. 알카사르의 정원 나무들 사이에도 밤의 여신 뉙스의 차가운 입김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돈 페드로는 왕궁으로 돌아가 시종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옷을 갈아 입었다. 이날 밤에는 다녀올 곳이 있었다. 바로 세비야 뒷골목이었다. 그는 며칠 전 세비야 시장 도밍고 세론을 만나 도시의 치안이 어떤지를 물었다. 세론은 세비야에서는 밤에도 범죄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돈 페드로는 시장의 말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이라면 당장 시장을 내쫓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돈 페드로는 시종이나 경호원을 데리고 가지 않고 혼자서 왕궁을 나섰다. 주변에 따라 다니는 사람이 많으면 괜히 시선을 끌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도시의 정확한 사정을 알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도시 골목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까지 가게 됐다. 맞은 편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돈 페드로는 이곳이 어디인지, 치안이 어떤지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실례하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가르쳐줄 수 있겠소?"

사내는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돈 페드로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훑어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닌 모양이구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니 말이오."

돈 페드로는 사내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그저 빙긋 웃으며 대답만 기다렸다. 사내는 돈 페드로를 빙빙 돌며 다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당신! 분명히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

사내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사내는 눈을 번쩍 뜨며 돈 페드로를 쳐다보았다.

"맞아! 그렇군. 돈 페드로. 그 망할 놈의 돈 페드로를 닮았군."

사내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돈 페드로는 속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사내가 아직 자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빙긋 웃고만 있었다.

"당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돈 페드로를 쏙 빼 닮았군. 그 썩을 녀석 때문에 우리 구스만 가문은 벼슬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 나처럼 큰 역할을 맡아야 할 인물은 매일 술만 마시게 됐고 말이야. 혹시 당신 진짜 돈 페드로 아냐? 소문에는 그 놈이 수시로 밤마다 세비야 시내를 헤메고 다닌다더니만."

돈 페드로는 가슴이 뜨끔했지만 여전히 모른 채 다시 길을 물었다.

"내가 이 지역 지리를 잘 모른다오. 여기가 어딘지,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어딘지를 좀 가르쳐주시오."

돈 페드로가 딴청을 부리자 사내는 갑자기 그에게 다가가더니 손으로 가슴을 툭 쳤다. 돈 페드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사내는 재빨리 다가가 다시 한 번 그의 가슴을 툭 쳤다.

"푸른 눈에 금발 머리, 창백한 얼굴, 큰 키에 강인한 덩치. 자세히 보니 존~경하는 국왕 돈 페드로가 맞군. 내가 먼발치였지만 당신을 왕궁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 어디 아니라고 내게 말해보시지."
돈 페드로는 뒤로 한두 걸음 물러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칼에 손을 대었다. 사내가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 칼을 꺼내 베어버릴 작정이었다. 사내는 돈 페드로가 칼을 건드리자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술을 즐기신다는 대~단한 국왕폐하, 어디 칼을 한 번 빼 보시지. 칼을 휘두를 용기나 있는지 모르겠군."

사내가 계속 비꼬는 말을 던지자 돈 페드로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평소 참을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였지만, 순간적으로 '인내'라는 단어는 이미 그의 머리를 떠나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불화와 분노의 여신 '에리스'가 그의 귀에 계속 칼을 휘두르라며 속삭이고 있었다. 돈 페드로는 순식간에 칼을 빼들어 사내의 배를 찌르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 공격을 받은 사내는 억, 하는 비명을 짧게 지르더니 칼날을 잡고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사내가 골목길에 넘어지자 돈 페드로는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돈 페드로 국왕이 구스만 가문 청년을 찔러죽인 '카베자 델 레이 돈 페드로' 골목길.

'큰일났군. 저 자는 구스만 가문인 모양인데 내가 칼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겠군.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어서 여기서 달아나야겠어.'

돈 페드로는 칼에 묻은 피를 사내의 옷에 깨끗이 닦은 뒤 주위에 누가 없는지를 휙 둘러보고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골목길 순행을 마치고 그대로 알카사르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게 하나 있었다. 그가 사내를 칼로 찌르는 장면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골목길 맞은편 주택 2층에 사는 노파가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는 양초에 불을 붙여 발코니로 나와 돈 페드로와 사내의 다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던 것이다. 돈 페르도에게 다행인 점은 노파가 그의 얼굴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구스만 가문 사람들이 알카사르로 몰려왔다. 그들은 돈 페드로가 죽인 사내의 시신을 관에 넣어 들고 있었다. 돈 페드로는 혹시 자신이 살해범인지를 들킨 게 아닌지 가슴이 뜨끔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공들이 꼭두새벽부터 이렇게 왕궁에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오? 저 관은 왜 들고 온 것인가?"

구스만 가문의 최고 어른인 후안 디에고가 돈 페드로 앞에 나서 무릎을 꿇고는 입을 열었다.

"저 관에 누워 있는 아이는 저의 5촌 조카입니다. 어젯밤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괴한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인근 저택의 노파가 현장을 봤다고 하는데 범인 얼굴은 모른다고 합니다. 저희 구스만 가문의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범인을 잡아주시기를 간청드리옵니다."

돈 페드로는 후안 디에고의 5촌 조카를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구스만 가문이 아직 모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후안 디에고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짐이 일주일 안에 범인을 잡아 그의 머리를 성벽에 걸어놓겠소. 조금만 기다리시오."

돈 페드로는 구스만 가문 사람들을 돌려보낸 뒤 고민에 빠졌다. 왜 괜히 범인을 잡아주겠다고 약속했는지,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한은 왜 정했는지 후회가 됐다. 그는 며칠 밤낮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던 그의 머리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는 알카사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자신의 머리를 조각한 흉상 하나를 발견하고는 침실로 들고 갔다. 그리고 시종에게 큰 상자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시종이 밖으로 나가 상자를 들고 오자 돈 페드로는 흉상을 상자에 집어넣고는 튼튼한 자물쇠로 잠궈 버렸다.

며칠 뒤 돈 페드로는 구스만 가문 사람들을 불렀다. 그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후안 디에고는 돈 페드로 앞에 놓인 큰 상자를 보고는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 페드로는 옥좌에서 일어나더니 구스만 가문 사람들과 시종, 경호원들에게 큰 소리로 일렀다.

"구스만 가문의 청년을 살해한 범인의 머리가 이 상자에 들어 있소. 머리를 성벽에 걸어놓으면 오가던 백성들이 보기에 너무 끔찍할 것이오. 그래서 이 상자에 넣어둔 것이오. 상자를 범행이 벌어진 골목에 가져다 놓도록 하겠소. 병사들이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상자를 지킬 것이오. 내가 죽은 뒤에 상자를 열어 범인의 머리를 확인하도록 하시오."

구스만 가문 사람들은 돈 페드로가 범인을 잡았다고 하는 이야기에 기뻐하면서도 왜 범인의 머리를 공개하지 않고 상자에 넣어 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왕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밝힌 내용인 만큼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한 그들은 돈 페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위기에서 벗어난 돈 페드로의 앞에는 새로운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밀려 왕위에 앉지 못한 이복동생 엔리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미 돈 페드로의 즉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상당수 귀족 가문들이 엔리크 편을 드는 바람에 돈 페드로는 밀리기 시작했다. 구스만 가문도 그를 배신한 귀족 가문 중 하나였다. 그는 결국 내전에서 패한 뒤 엔리크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돈 페드로가 왕위에서 밀려나고 목숨까지 잃자 구스만 가문 사람들은 골목에 놓여 있는 상자로 달려갔다. 그들은 상자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에게 당장 자물쇠를 부수고 상자를 열라고 지시했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구스만 가문 사람들의 입에서는 똑같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이런, 돈 페드로의 흉상이…."

이후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세비야 사람들은 돈 페드로가 구스만 가문의 사내를 칼로 찔러 죽인 골목길을 '카베자 델 레이 돈 페드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돈 페드로 국왕의 머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노파가 촛불을 들고 범행 현장을 지켜본 주택이 있던 골목에는 '칸딜레호(촛불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카베자 델 레이 돈 페드로' 골목길에 있는 한 주택 창가에 돈 페드로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김해뉴스 /남태우 사장 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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