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훈 군이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 외스케멘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계곡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카자흐스탄인 소개받아 지름길로 도착
초라한 여행객 행색 덕 국경 통과 수월

외스케멘서 유심카드 사려다 거절 낭패
낯선 여성이 자신 이름으로 대신 사 줘

알마티에서 어렵게 한인민박집에 숙박
자원봉사 대학생들 휴대폰만 봐 아쉬움


우리는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국경을 넘어왔다. 육로를 이용해 국경을 넘는 것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오는 길에 러시아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아저씨들이 우리가 가려고 했던 길보다 훨씬 빠른 지름길을 알려줬다. 아빠와 나는 그들이 안내해준 길을 따라 달렸다.

처음에는 깨끗한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그러나 갈수록 길은 점점 울퉁불퉁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비포장도로로 변해버렸다. 다시 몽골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모래, 자갈길을 한참 달리니 저 멀리 카자흐스탄 국경이 보였다. 안심이 됐다.

국경 앞에 선 우리 모습은 참 꾀죄죄했다. 세수를 안 한 듯 까만 얼굴에 먼지를 뒤집어 쓴 옷·가방·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달린 오토바이. 딱 봐도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일까. 원래 국경에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짐 검사가 비교적 간단한 편이긴 하지만, 이날은 특히나 가방 한 번 열지 않고 국경을 통과하는 배려(?)를 받게 됐다. 짐을 풀었다 다시 묶는 수고를 덜어 좋았다.

국경에서 100㎞를 달려 외스케멘이라는 제법 큰 도시에 닿았다. 다른 나라로 넘어가면 가장 먼저 은행 현금인출기를 찾아 현지 돈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먹을 것을 사고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을 수 있다. 또 휴대폰 유심카드도 구매해야 한다. 러시아와 몽골에서는 여권만 보여주면 쉽게 유심카드를 살 수 있었다. 당연히 카자흐스탄에서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가 들르는 휴대폰 가게마다 "외국인은 안 된다"고 말하며 판매를 하지 않았다. 아빠는 "휴대폰 인터넷이 안 되면 지도 보기가 어려워 길을 찾기가 힘들다"며 난처해했다.

▲ 최지훈 군과 최정환 씨 부자를 도와준 라일라 아주머니.

그 때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아주 젊고 예쁜 분이었다. 이름이 '라일라'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신분증을 이용해 우리가 유심카드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말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관광객이기 때문에 나쁜 사람들에게 속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을 달라"며 당부했다. 아빠는 라일라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아주머니가 안내한 식당으로 가 카자흐스탄 전통음식을 먹었다. 맛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에도 라일라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외스케멘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고 전통시장에서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만 만나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들른 나라에는 좋은 사람들만 사는 건지도 헷갈렸다. 어쨌든 나도 한국에 가면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좋은 사람이 돼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다시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를 향해 출발했다.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다. 앞뒤, 양옆으로는 오직 지평선만 보일 뿐이었다. 정말 끝이 없었다. 수백㎞를 달렸다. 같은 장소가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는 어지럽고 지겹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땐 한국이 매우 넓은 나라인 줄 알았다. 아빠는 "이곳에 비하면 서울과 부산은 옆 동네 수준"이라며 웃었다. 몇백㎞를 가야 시골마을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긴 시간을 달려 드디어 알마티에 도착했다. 아빠는 알마티에는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음식도 먹을 겸 지도를 보며 어렵게 한인민박집을 찾았다.
 

▲ 최정환 씨 부자가 경북대 자원봉사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온 형, 누나 여러 명이 숙박을 하고 있었다. 경북대 학생들인데 자원봉사를 하러 이곳에 왔다고 했다. 알마티농대에서 한글수업과 태권도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또 한국이민자의 농장을 방문해 농사일도 도왔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2주가 됐다는데,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두 힘이 없어 보였다. 앞서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보통 밝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여행일정을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형, 누나들은 각자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왠지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그동안의 여행지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싶었다.

▲ 고느로 알타이스크~카자흐스탄 알마티 지도.

좋은 점도 있었다. 우리가 한인 민박집에 도착한 다음날은 형과 누나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형, 누나들은 여기에서 생활하고 남은 라면과 햇반, 참치, 통조림, 음료수 등을 커다란 상자에 가득 채워 우리에게 선물로 줬다. 아빠는 타지키스탄 파미르고원을 여행할 때 먹을 비상식량이 생겼다며 아주 좋아했다. 여행을 하며 느낀 건데, 한국음식은 아주 귀하다. 내일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출발한다. 파미르고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김해뉴스 최정환 최지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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