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들 여름휴가는 다녀오셨는지요? 바빠서 휴가는 엄두도 못 낸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올해 국제공항 이용객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니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분들도 꽤 많은 듯합니다.

해외여행 하면 머릿속에 비행기와 공항의 설렘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공항에서 여행객들을 지켜보면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여행가방을 열고 짐을 덜어내는 진풍경도 많이 연출되죠. 예전보다 항공 수화물 허용 무게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대체로 이런 분들은 해외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런 분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인생이 여행과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여행을 앞두고 짐을 쌀 때 중요한 것은 '챙기기'가 아니라, 어쩌면 '버리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쓸 데 없는 무거운 짐이 여행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사실 노련한 여행꾼들을 보면 짐이 단출한데도 꼭 필요한 것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도 이런 프로 수준의 여행객처럼 사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미니멀리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미니멀리스트라고 해서 다 같은 부류는 아닙니다. 저는 이들을 속성에 따라 각각 '민슈머', '리빙 푸어', '없어빌리티'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최소한의 수준으로 소비를 절제하는 '민슈머' 집단이 있습니다. 민슈머 운동은 <단순함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펴내 유명해진 프랜신 제이가 이끌고 있는 일종의 소비자 불복종 운동입니다. 물질적 소비를 줄이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과 경험적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 지구환경에도 좋고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고 실천하는 거죠. 이들은 심지어 매년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까지 제정해 소비로부터 독립하자는 주장을 펼 정도로 미니멀 라이프에 철학적 신념이 강합니다. 대량생산과 소비를 미덕으로 생각해온 기존의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가장 위협적인 자본주의의 적'으로 보일게 분명합니다. 과연 민슈머 운동은 앞으로 인류 보편의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부류는 미니멀 라이프가 선택사항이 아니라 그저 현실일 뿐인 경우입니다. 일이나 생활형편 때문에 가정을 이루지 못했거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보니 살림살이가 간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른바 '리빙 푸어'라고 할 수 있죠. 정규직 채용이 되지 않아 인턴만 반복하는 청년들을 가리키는 '호모인턴스’, 직장이 있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아 아무리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 저소득 1인가구가 다 여기에 포함됩니다.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가 이들에게는 엄혹한 현실을 적당히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죠. 아이러니하지만, 리빙 푸어는 소비를 할 여건이 안 되는 것이지 소비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저가의 생활용품과 인테리어 소품 시장의 주요 고객이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추었지만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기꺼이 버리기를 선택한 능력자들입니다. 트렌드에 민감하며 남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전문직 종사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깨알팁'과 '꿀팁'처럼 남들에게 있어 보일 수 있는 요령을 많이 아는 것이 능력이라고 해서 '있어빌리티'가 유행한다지만, 반대로 살림을 줄여서 있는 듯 없어 보이는 능력, 즉 '없어빌리티'도 하나의 과시 대상이 되고 있는 거죠. 자신의 미니멀 라이프를 SNS에 자랑하거나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버리기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는 것을 보면 미니멀 라이프가 또 다른 연극적 소비의 한 유형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쇼핑을 하고 물건을 들일 때 행복한가요, 버릴 때 행복한가요? 아마도 우리는 당분간 사기 위해 버리기도 하고, 또 살기 위해 버리기도 하면서 행복을 저울질하겠지요?

김해뉴스 배성윤 인제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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