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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 성냥공장 ‘마지막 불씨’마저 꺼졌다
  • 수정 2017.08.16 11:10
  • 게재 2017.08.09 10:12
  • 호수 334
  • 4면
  • 김예린 기자(beaurin@gimhaenews.co.kr)

 

   
▲ 지난달 31일 가동을 중단한 경남산업공사 공장 안의 기계들이 하릴없이 멈춰서 있다.


‘기린·신흥표’ 진영 경남산업공사
설립 70년만에 지난달 가동 중단
직원 등 6명 눈물의 마지막 회식



옛 진영역 앞. 파이프 등 온갖 공사 자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회색 담장으로 둘러싸인 옛 진영역을 지나 김해대로로 향하는 골목길 중간에 오래된 공장 하나가 있다. 시멘트가 벗겨진 연 노란색 건물에는 검은 때가 자욱하다. 회색 철제문에는 주황색 녹물 자국이 군데군데 있다.

'경남산업공사'. 한자로 쓰인 초록 현판을 지나 계단을 따라 2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올라갔다. '낙타표', '유엔', '기린표', '아리랑' 등 눈에 익은 이름의 성냥갑들이 선반 위에 너부러져 있다. 색 바랜 버티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성냥갑 아래 사진 액자를 비춘다. 옛 사진 속 직원들은 장발에 한껏 멋을 부렸다.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들은 흥에 겨운 듯 어깨춤을 추고 있다.

'귀하께서는 평소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본 부락의 복지새마을 사업 및 동회관 건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 높은 뜻을 깊이 보존코저 감사패를 새겨드립니다. 1983년 3월 28일 새마을북구개발위원회 위원장'

텅 빈 사무실을 지나 들어간 사장실에는 뽀얀 먼지가 묻은 장식장 안에 각종 상패와 감사패가 진열돼 있다. '신흥표', '기린표' 성냥을 만드는 경남산업공사를 이끌어온 조창순(89) 대표에게 전달된 감사패들이다. 1983년과 1989년의 일이다. 감사패의 나이는 적어도 34세(?)가 넘었다.

부산에서 성냥공장을 운영하던 고 조병철 씨는 1948년 진영읍 진영리 275-30에 경남산업공사를 세웠다. 그는 당시 친분관계가 있던 한얼중 학교법인 삼일학원 이사장으로부터 재단 운영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회사를 진영에 옮겼다. 조 씨의 딸 조창순 대표는 1987년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해 왔다. 낡은 목조건물인 공장은 양조장이나 정미소를 제외하면 김해에 가장 먼저 세워진 공장이다. 2014년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이 문을 닫는 바람에 경남산업공사는 전국에 유일하게 남은 성냥공장이 됐다.

김해시가 추진하는 '진영소도읍 가꾸기 사업' 지역에 공장 일부가 편입되는 바람에 70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공장은 지난달 31일 가동을 멈췄다. 젊은 날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일흔을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그날 마지막 회식에서 조 대표는 가족 같았던 직원 5명과 이별의 술잔을 기울였다.

"허전하고 아쉽죠." 조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1970년대만 해도 경남산업공사는 김해지역 공장들 중에서 전기요금을 가장 많이 내는 회사였다. 공장 안 기계는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갔다. 면적 1980㎡ 인 공장에서는 직원 280명이 성냥을 만들었다. 6t 트럭 다섯 대가 성냥을 싣고 전국을 돌며 납품했다. 영남권과 전국 사찰에는 화로가 그려진 사각형 성냥갑 '신흥표'가, 수도권에는 동그란 성냥갑 모양의 '기린표'가 팔려나갔다.

   
▲ 경남산업공사 전경. 완성되지 못한 갑성냥이 컨베이어벨트에 남겨져 있다. 수도권 등지에 납품됐던 기린표 갑성냥. 경남산업공사의 대표적 성냥들(사진 위부터).

"신흥표는 부친이 살아 계실 때부터 만들던 성냥입니다. 기린표 통성냥은 제가 대표를 맡으면서 실용신안을 낸 후 주로 수도권에 보급했습니다."

한국에 특별한 공산품이 없던 시절 공장에서 생산된 성냥은 배에 실어 중동과 아프리카로 수출하기도 했다. 공장 외벽 우거진 초록 나뭇잎 사이에 빨간 글씨로 '증산 수출'이 적혀 있다. 흔적만 남은 채 색 바랜 글귀가 화려했던 과거를 말해주는 듯 했다.

1980년대 라이터가 보급되면서 성냥사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300군데에 이르던 성냥공장들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붉은 불씨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타버리는 성냥 한 개비처럼 성냥 사업도 한 순간에 활활 타오르다 서서히 꺼져갔다. 경남산업공사는 전국 성냥공장의 마지막 불씨였다.

조 대표는 성냥 산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음식점, 모텔, 다방의 개업 선물용 성냥을 주문 받아 만들어왔다. 가로, 세로 10㎝ 안팎의 갑성냥은 기계화 공정으로 생산했지만, 신흥표, 기린표 등 통성냥은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담아야했다. 하지만 수익은 한 달 1400여만 원에 그쳤다. 직원들 인건비에도 턱 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수익을 따졌다면 1980년대 후반 공장 문을 닫았어야 했어요. 그때 마지막 남은 직원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적자를 보면서도 운영한 세월이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직원들 월급 한 번 밀린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세운 가업을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어요."

'지켜내고 싶다'는 조 대표의 의지는 지역개발 앞에서 멈춰야만 했다.

"시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제가 지역발전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네요."

지난 1일 더 이상 직원들이 찾지 않는 공장 안에는 기계가 멈춰 있었다. 바닥에는 길을 잃은 성냥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성냥을 만들었던 기계 일부는 소도읍재활사업으로 만들어지는 진영레일파크 부지 안에 설치될 예정이다. 경남산업공사의 현판도 옛 진영역을 활용한 박물관에 전시된다. 공장 한 쪽 층층이 쌓인 성냥갑들을 정리하는 대로 경남산업공사는 폐업 신청에 들어간다.

"각오해야지."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듯 담담하게 뱉은 조 대표의 말이 참 썼다. 세월의 생채기가 곳곳에 나 있던 경남산업공사를 나오자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졌다. 지역개발 앞에 마지막 남은 성냥공장의 불씨가 검은 재로 타들어가다 결국 꺼져버린 현실이 아쉬웠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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