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섭 인제대 교수

지난 5월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국민들의 다양한 시위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과거 유신독재나 전두환 정권 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독재시대의 언론은 권력에 의해 통제돼 국민들의 요구를 사회에 알리지 못했다.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시위는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소문이나 단신으로만 전달됐다. 언론에 나타난 사회의 모습은 평온 그 자체였다.

1987년 6월 29일 이전 국민들의 요구는 대통령간선제를 유지하려는 전두환 정권의 호헌선언 취소 및 대통령직선제였다. 정치민주화를 원하는 목소리였다. 이후 정치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시위는 크게 늘었다. 경제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일부 움직임은 각 사업장에서 노동쟁의로 표출됐다. 부의 분배와 관련해 억눌렸던 노동계의 요구가 한꺼번에 표출됐다. 2011년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통상 수십~수백 건에 불과했던 노동쟁의가 1987년에만 3749건 발생했고, 쟁의참가 인원도 120여 만 명에 달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는 사업장과 파업을 못하는 노조는 경시되기도 했다. 다음해부터 노동쟁의는 다시 줄어들어 통산 수십~수백 건에 불과했다.

1987년 이전에는 학생들의 학내시위나 생산직 노동자들의 쟁의관련 시위가 주를 이루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사무관리직, 지역주민 및 소비자들의 시위도 늘어났다. 시위는 정치적 능력을 갖춘 고학력층이 주도해 왔으며,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소외계층은 시위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정부나 의회에서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해 교육수준이 높고 정치적으로 각성한 중산층과 지식계층이 시민단체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면서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과거 언론은 통상 경제적 측면에서 갑과 을을 다룰 때 갑의 입장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권력이 있는, 광고비를 지불할 수 있는,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매력이 있는 갑의 입장을 다루는 게 언론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하면서 방송의 민주화를 언급했다. 지난 10년간 방송분야에서 무너져 버린 공정보도를 바로잡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방송의 민주화를 위한 틀을 마련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명박 정권 때 시작된 방송언론의 비민주적 행태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겨우 10년만에 정치적 민주화가 후퇴하는 경험을 통해 제도적, 절차적 민주화만이 아니라 내용적 민주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다.

비정상이 일반화되어 있던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로 돌리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비정상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가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직장·학교·군대 등 조직에서의 갑과 을, 거래·계약 등 사회관계에서의 갑과 을….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적 계약관계여야 할 갑과 을의 관계가 주인과 노예 같은 예속관계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국민, 부하, 직원, 피고용인, 어린 사람, 학생을 노예나 하인처럼 생각하는 사회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최근 보도를 통해 알려진 공관병 문제, 원청기업의 하청기업 상대 횡포, 본점의 대리점 횡포, 시민의 의사를 무시한 일방적인 정부의 정책결정 등은 비틀어진 갑과 을의 관계이고, 적폐의 일부다.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시위나 내부고발을 통해 표출되고, 언론을 통해 전달된다. 과거에 비해 언론에 보도되는 시위나 내부고발이 많다. 사회의 병리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인과 증상이 밝혀져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언론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회가 혼란스럽다고 느낀다. 그렇지 않다. 민주적 합의 과정에 훈련되지 못한 탓이다. 상대를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고, 합의를 통하여 혼란스러움을 극복해내는 민주적 과정에 믿음이 필요하다. 언론도 사건과 관련해 혼란스러운 외양만을 사실적으로 보도할 게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들이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심층 내용을 비판적으로 보도하여야 한다. 정당한 비평은 언론이 지녀야 할 당연한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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