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도로 달리다 만난 슬로바키아인
바이크 펑크 탓 발 묶인 난처한 신세
여분 타이어 빌려주자 “유럽 꼭 들르라”

오시 시내서 ‘한국 근무’ 현지민 조우
종일 함께 다니며 시장 구경에 식사까지
우즈베크 까다로운 입국 절차가 관건




키르기스스탄의 송쿨은 해발 3500m에 있는 호수다. 이곳은 낮엔 기온이 33도까지 올라 햇볕이 따갑지만 밤엔 3도까지 떨어져 너무 춥다. 낮이면 한여름이 되고, 밤이면 한겨울이 된다. 일교차가 엄청났다.

우리는 주르마 형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산을 내려와 남쪽 도시인 오시로 향했다. 계속해서 포장이 안 된 도로가 이어졌다. 얼마쯤 달렸을까. 앞쪽에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슬로바키아에서 온 아저씨가 펑크 난 타이어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는 오는 길에 여러 번 펑크가 나서 여분의 타이어도, 수리 도구도 모두 다 써버렸다고 했다.
 

▲ 최정환 씨 부자가 키르기스스탄 오시로 향하는 도중에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빠는 잠시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꼼꼼히 살피더니 "더 이상은 달릴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우리가 여분으로 싣고 다니던 타이어를 아저씨에게 선물했다. 아저씨는 하늘이 도왔다며 많이 고마워했다. 그리고 유럽에 오게 되면 꼭 자기 집에 들르라고 했다. 재워주고 슬로바키아 관광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렇게 우리도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앞으로의 경로에 슬로바키아가 또 추가됐다.

▲ 최정환 씨가 슬로바키아인의 타이어를 살펴보고 있다.

사흘 간 깊은 산속을 지나자 드디어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기분 좋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열린 차 창문을 통해 한 아저씨가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그는 나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현지인이었다. 과거 3년 간 한국에서 아파트에 창문 다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아빠는 나술 아저씨에게 "낮술?"이라며 장난을 쳤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라서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나술 아저씨는 한국에서 일을 할 때 힘이 들긴 했지만, 월급이 이곳에서 벌 수 있는 돈보다 3~4배 많았기 때문에 그 때가 좋았다고 했다. 다시 한국에 가고 싶지만 비자를 낼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아빠는 지금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혹시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찾아오라며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나술 아저씨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를 오시 시내 시장으로 데리고 갔다. 수도 비슈케크에서보다 얼굴에 천을 두른 여자들과 베레모를 쓴 남자들이 많았다. 남쪽으로 갈수록 사람들의 신앙심이 깊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나라 이름에 '스탄'이 들어가면 이슬람국가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술 아저씨랑 시장에서 홍차 비슷한 '차이'를 마시고 러시아 전통 꼬치구이 '샤슬릭'을 먹었다.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작은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보통 여행자라면 가보지 못할 곳도 우리는 우연히 만난 현지인들 덕분에 구경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오토바이 뒤에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데, 그 때문인지 한국에서 일했던 현지인들이 많이 알아보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오랜만에 호텔에서 잠을 잤다. 호텔에 야외수영장도 있어 즐겁게 물놀이도 했다. 물놀이를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 오시 전통시장을 찾은 최정환 씨(왼쪽). 최지훈 군이 송쿨호수 인근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 가려는 타지키스탄은 비자와 파미르 통행증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인터넷으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돼 우리는 휴대폰을 이용해 쉽게 허가를 받았다.

아빠 말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 입국하는 과정은 조금 복잡하다고 한다. 현지에서 보내준 초청장이 있어야 비자가 발급되기 때문이다. 아빠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을 때 미리 여행사에 초청장을 부탁해 뒀는데, 그게 될지 안 될지는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했다. 타지키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가로질러야 유럽으로 가기가 한결 편하다며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꼭 나와야 한다고 걱정했다. 아니면 오시로 되돌아와 한참을 둘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 키르기스스탄 송쿨호수~ 오시 지도.

아빠의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은 모두 옛소련 땅이었다고 한다. 옛소련이 붕괴돼 러시아로 바뀌면서 여러 개의 나라로 나뉘어졌는데, 당시 정치인들이 국경선을 조금 이상하게 그었단다. 그래서 주변 나라들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고 했다. 사실 예전엔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은 정말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자, 이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타지키스탄 파미르고원을 향해 떠날 시간이다.
김해뉴스 최정환 최지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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