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이태원'. 김해 로데오거리(종로길)의 별칭이다. 김해의 외국인 수는 지난 6월 기준 1만 7948명으로 전국 시·군·구 중 14번째로 많다. 꾸준한 제조업체 증가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가 계속 유입돼 이주민 밀집지역인 동상동과 서상동에는 각국 이주민이 한 데 모여 외국인거리를 형성했다. 그러나 선주민, 이주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던 옛 '김해 일번가'는 신도시 개발 탓에 상권이 다른 곳으로 대거 이탈해 썰렁해진 지 오래다. 설상가상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치안이 위험한 거리'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 지난해 동상동 로데오거리에서 열린 세계크리스마스트리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행사를 즐기고 있다. 김해뉴스DB


 


다양한 외국인 붐비는 이색 분위기에
세계 각국 식당 많아 눈길 끄는 장점

시설 부족하고 거리 단순해 쉽게 싫증
경기 불황에 단속도 심해 영업 지장

문화체험관 마련, 시설 개선 서둘러야
‘기획력’ 20~30대 끌어들여야 성공 가능



 


■ 볼거리·즐길 거리 없어 발길 '뚝'
로데오거리로 가려면 동상동 김해중앙상가를 찾으면 된다. 거리를 안내하는 별도의 안내 표지판이 없지만 길거리에 외국인이 자주 눈에 띄어 금방 알 수 있다. 정교하게 말아 올린 터번이 멋스러운 무슬림 남성과 길거리 가판대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우즈베키스탄 여성, 유창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중국인까지 얼굴색도 옷차림도 각양각색이다. 동남아에서 맡아본 듯한 이국적인 음식 냄새가 코끝에 맴돌고, 할랄(무슬림에게 허용된 제품) 식료품점과 동남아 현지 채소를 파는 가판대 너머로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 출입국민원대행센터가 보인다.

다문화거리답게 인도, 미얀마, 필리핀, 모로코, 스리랑카 등 세계 각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도 고르게 분포해 있다. 이곳은 자연스레 '글로벌 푸드타운'으로 불리고 있다. 김해시 관광마케팅팀은 식당 29곳을 소개하는 글로벌푸드타운 지도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인근에 동상동전통시장이 있고 꼬지와 토스트, 떡, 분식을 파는 한국음식점도 있어 내국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방글라데시 식료품점과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심동민 씨는 원주민들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볼 정도로 누구보다 이 거리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로데오거리만의 특색을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옛날에는 로데오거리에 와야 각국 식자재를 살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저마다 가게를 차리는 바람에 이제는 김해 지역 어디에 가도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블로그 글을 읽고 호기심에 로데오거리를 방문한 김 모(25·내외동) 씨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외국인은 많지만 즐길 게 아무것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 씨는 "단조로운 거리를 걷다 보면 이목이 집중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다문화체험관이 있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고 말했다.

▲ 동상동 로데오거리 전경.

주말·평일, 밤낮 할 것 없이 로데오거리는 한산하다. 빈 점포 곳곳에 붙은 임대 종이도 갈수록 늘고 있다. 경기불황에 외국인 수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 건물 월세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라고 한다.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외국인들 덕분에 먹고 산다. 이들마저 없으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시의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난 2월 시는 종로길 120여 상가를 대상으로 불법 옥외광고물을 자진 정비(철거)하도록 해 상인들의 불만을 샀다. 한 음식점 대표는 "말도 안되는 탁상행정이다. 음식사진이 없으면 손님들이 무엇을 보고 들어오겠나. 볼 게 없어 가뜩이나 발길도 뜸한데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광고물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해문화의전당과 동상동 무지개마을협의회는 로데오거리 유휴공간을 활용해 '모두의 공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말만 공원이지 알록달록한 벽화 아래 작은 무대뿐이다. 언제 어디서든 공연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은 주차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 거리의 특색 찾아야
동네 일대가 낙후하다 보니 내국인의 발길이 뜸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 때문에 동상동·회현동·부원동 등 원도심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도시재생사업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시는 2020년까지 동상동주민센터 옆 1000㎡ 부지에 다어울림센터를 설립하고 분성로에는 다어울림광장을 만들어 휴게공간과 마을쉼터로 활용할 예정이다. 광장에서는 각국 면요리를 맛볼 수 있는 월드 누들 빌리지와 프리마켓, 다문화놀이터가 운영될 계획이다. 

김해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는 "종로길은 지역 역사·문화를 연계한 투어코스를 발굴해 가로시설물을 조성하는 도시재생 세부사업인 '하이스토리 문화가로' 예정지에 들어간다. 외국인거리는 내국인이 돌아다니기에 위험하다는 편견이 있는 장소다. 누구나 걷고 싶어하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거리 활성화를 위해 크고 작은 축제도 매년 열린다. '김해세계크리스마스 축제'와 '종로난장' 등 원주민과 이주민이 서로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든 행사들이다. 상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에 행사도 개최한다.
 

▲ 지난 3월 만세운동에서 외국인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왼쪽). 외국인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해 각국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심 씨는 "각국 문화를 배울 수 있고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문화체험관이 들어서야 한다. 외국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모두의 공원' 공연장 무대가 좁아 행사를 해도 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국인의 발길을 사로잡을 만한 가게가 없다. 볼거리도 없어 가족단위 방문객이 이곳에 놀러올 이유가 없다. 외국음식은 철저히 현지화하되 한국인들의 발길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한국 음식점도 꼭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상동 김해외국인도움센터 '프랜즈'의 양관석 센터장은 "지역에서 외국인 음식점이 밀집된 곳은 로데오거리밖에 없다. 이곳을 세계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의거리로 특화해 색깔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건물이 노후화되고 상인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도 낙후의 원인으로 꼽힌다. 양 센터장은 "청년들이 들어와 사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재래시장과 연계돼 활성화된다. 거리의 활성화는 내국인들의 재방문율에 달려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도록 홍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6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고블앤고'의 소유상 대표는 "상권이나 문화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간다. 즐길거리가 많아 재미있고 음식이 맛있어야 상권이 만들어진다. 이태원에는 식당가, 유흥주점, 문화공간 등 놀거리가 많다. 자연스레 서울에 있는 외국인들의 집결지가 됐고 입소문을 타고 내국인의 방문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먹자골목의 경우 젊은 사람들의 힘이 중요하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건 20~30대의 기획력에서 나온다. 청년이 움직여야 문화가 생긴다. 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뒷받침해준다면 상권은 커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끝)
 
김해뉴스 /배미진 기자 bmj@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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