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환 씨 부자가 해발 4100m 높이에 있는 카라쿨 호수를 배경으로 서 있다.

 



키르기스~타지크 국경서 출국도장 받은 뒤
당나귀 타고 가던 아저씨 “우리집서 차 한잔”

인적 드문 동네서 야크 키우는 가족 일곱 명
친구와 산, 계곡 놀러다니다 물에서 뿔 발견

밤새 늑대 걱정하며 거실서 침낭 펴고 수면
설산 둘러싸인 호수 발견하고 깜짝 놀라






키르기스스탄 오시에서 우리가 묵었던 호텔 사장과 우연히 인사를 나눴다. 여자 사장이었는데 한국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 성씨도 '김씨'라고 했다. 다만 한국말을 못했다. 아빠는 고려인 2세쯤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득 지난 번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관에서 본 내용이 생각났다.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인 오시에서 큰 호텔을 경영하는 것을 보니 성공한 사람 같았다. 같은 한민족이 잘 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 최지훈(왼쪽) 군이 당나귀를 끄는 부호메달리를 쳐다보고 있다(위). 최지훈 군이 국경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호텔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우리는 파미르고원으로 가기 위해 타지키스탄 국경을 향해 출발했다.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따라 달렸더니 어느새 해발 4000m까지 올라와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에서 출국도장을 받고 다시 타지키스탄으로 가려는데 당나귀에 어린이 3명을 태우고 가는 아저씨가 보였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스톱, 스톱"을 외치며 우리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아빠가 오토바이를 세우자 아저씨는 '차이'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가라고 했다. 망설이던 아빠는 곧 아저씨를 따라 갔다. 아저씨 집에는 총 5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빠는 준비해 간 색연필과 연필깎이를 선물로 내놓았다.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다. 이중 가장 큰 아이가 나와 동갑인 열두 살이었다. 이름은 '부호메달리'라고 했다.

아저씨는 집 뒤편에서 소와 비슷하게 생긴 야크를 키우고 있었다. 아빠와 여행을 하며 소, 양, 말은 많이 봤지만 야크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덩치가 소보다 더 컸고 털은 복슬복슬했다.

아저씨는 여기가 해발 4200m 지점이어서 인적이 드물고 근처에 마을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실제로 국경과 국경 사이 20㎞를 달리면서 본 집은 부호메달리 집뿐이었다. 또 가끔은 뿔이 동그랗게 말린 커다란 산양인 마르코폴로와 늑대가 나타난다고 알려주었다. 아빠는 내게 한국에 있을 때 마르코폴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그 수가 점점 줄고 깊은 산속에서만 살아서 보기 힘든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 국경지역 계곡에서 눈이 녹아 흘러 내리고 있다(위). 부호메달리가 계곡에서 찾은 마르코폴로 뿔을 자랑하고 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부호메달리와 함께 노는 게 좋았다. 우리는 집 근처 산과 계곡으로 놀러 다녔다. 큰 개 2마리가 항상 옆에 붙어 있어서 든든했다. 무릎 깊이의 물에 들어갔을 때였다. 뭔가를 발견했는데, 바로 마르코폴로 뼈였다. 봄에 눈이 녹으면서 흘러내린 건지 비가 올 때 휩쓸려온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머리에 붙어 있는 뿔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모습이었다. 신기했다. 부호메달리는 금새 달려가 마르코폴로 뿔을 가져다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우린 아주 신이 났다.

아빠와 나는 부호메달리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부호메달리 식구들은 방 안에서 자고 우리는 부엌 겸 거실에서 침낭을 펴고 잤다. 국경과 국경 사이에서 잠을 자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한밤에는 '늑대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잠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문 앞에 놓아 둔 마르코폴로 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늑대 생각은 금방 잊게 됐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이 해보게 되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부호메달리 아주머니에게 러시아 알타이에서 사온 자연산 꿀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친구야, 여긴 추운 곳이지만 항상 건강하게 잘 지내. 마르코폴로 뿔 고마워. 잘 간직할게."

우리는 다시 산을 넘어 전날 가지 못한 타지키스탄 국경을 통과했다. 이곳 국경지역은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만 통행이 된다고 했다. 4200m의 높이여서 눈이 많이 쌓이기 때문에 차들이 오갈 수 없다고 했다.

▲ 키르기스스탄 오시~ 타지키스탄 카라쿨 지도.

국경을 지나 30분쯤 달리니 '카라쿨'이라는 호수가 나왔다. 이렇게 높은 곳에 큰 호수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가만히 둘러보니 호수 주위는 모두 눈 덮힌 설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현지에 사는 사람 이야기로는 높이가 7000m나 되는 산도 있다고 했다. 한 여름에 눈 덮인 산을 이렇게나 많이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호수 색깔도 너무 예뻤다. 1500m에 있는 이식쿨도 높다고 생각했는데 3500m 송쿨에 이어 4100m 높이의 카라쿨까지. 파미르 고원이 높기는 정말 높은가 보다. 지금부터는 3500m 높이에 있는 도시, 무르가브로 향한다. 김해뉴스 /최정환 최지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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