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미국 각지 떠돌며 유랑생활
절도, 야반도주, 굶주림 일상사
NY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영화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 애증의 감정은 특별하지 않지만, 좀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여기 있다. 불우한 유년 시절을 거쳐 사회적으로 성공한 칼럼니스트가 된 저넷 월스. 어느 날 미국 뉴욕의 택시를 타고 저녁 파티장소로 향하던 중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엄마를 발견한다. 100만 달러가 넘는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평범한 삶을 거부한 채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인 엄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956년 미국에서 결혼한, 보통 부모와는 많이 다른 가치관을 지닌 월스 부부. 엄마 메리와 아빠 렉스의 둘째 딸로 태어난 저넷 월스는 언니 로리, 남동생 브라이언과 함께 때로는 행복하면서도 때로는 끔찍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가 떠올리는 생의 첫 기억은 세 살 때 '몸이 불타오르는' 장면이다.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며 핫도그를 데우던 중 옷에 불이 옮겨붙어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6주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병에 걸리면 의사가 아닌 주술사에게 데려가야 한다는 아빠의 철학 탓이다. 렉스는 외려 "우리 딸이 불을 이겨냈다"며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녔다. 황금을 찾는 기계라며 '프로스펙터'란 장치 개발에 매달리고, 가슴팍에는 사막 한가운데에 친환경 건물인 '유리성'을 짓겠다는 청사진을 품고 다녔다.

엄마 메리 역시 현실감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기본적인 의식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예술가의 꿈, 화가의 삶만 좇았다. 새 옷을 사는 건 낭비라며 헌 옷만 입히더니 심지어 옷을 훔쳐 오는 일까지 시켰다. '정당방위 절도'는 죄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부모의 생각이 이러하니 생활이 정상적일 리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냉장고는 비기 일쑤였다. 공짜 음식이 생기면 며칠이고 같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빚 독촉을 견딜 수 없을 땐 차에 온갖 잡동사니를 싣고 야반도주를 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네바다·애리조나 주 등 메뚜기처럼 미국 곳곳을 떠돌며 유목민처럼 생활했다. 당연히 학교도 꾸준히 다니지 못했다. 대신 부모에게 수학과 미술, 때로는 총과 활 쏘는 법도 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환경 덕에 저넷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2차 방정식과 2진법을 아는 영재가 됐다. 열일곱 살이 돼서야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저넷. 언니가 사는 뉴욕에 가서 주간신문사에서 부업을 하며 아이비리그인 버나드대학에 진학했다.

<더 글라스 캐슬(유리성)>은 저넷이 용기를 내 털어놓은 자신의 성장기와 가족사를 다룬 에세이다. 책장 구석구석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는 2005년 출간 당시 미국 사회에 화제를 모았다. 7년간 뉴욕타임스 신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올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돼 지난달 11일 북미에서 개봉했다.
이웃이 보기엔 아동학대에 가까운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괴짜 부모'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선 시종일관 온기가 묻어난다. 실상은 술에 찌든 알코올중독자였지만, 저자는 어두운 과거사 속에서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늘의 별을 선물해 주고, 온 가족이 함께 살 보금자리를 꿈꾸며 '유리성' 설계를 포기하지 않는 아빠의 밝은 면을 떠올린다. 동물원 울타리를 넘어가 치타의 얼굴을 쓰다듬고 치타가 혀로 자신의 손바닥을 핥는 경험은 아빠가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추억이었다.

아빠 렉스는 임종을 앞두고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59세의 젊은 나이, 딸에게 불치병을 알리면서도 마약 밀매상과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다 희귀 열대병에 걸렸다고 허세를 부린다. "유리성은 끝내 못 지었네." "그래도 계획을 짜면서 즐거웠잖아." 마지막 만남에서 부녀가 나눈 대화는 애증의 대상인 '유리성'으로 끝맺는다. 저자는 감사의 글에서 고인이 된 아빠를 빼놓지 않는다. 야심차게 꿈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줘서 감사하다고.

부산일보 제공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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