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월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 정취가 묻어나는 요즘입니다. 새학기가 시작하면서 대학캠퍼스에도 다시 활기가 느껴집니다. 연구실에 인사를 하러 오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방학이 끝나서 아쉽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쉬운 이유가 더 놀지 못해 아쉽다는 게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다 하지 못해 걱정이라는 겁니다.

저도 방학 때 여전히 바쁘지만 이 친구들에게도 방학은 사실상 학기의 연장선일 뿐 방학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학기 중에는 수업과 과제 때문에 미뤄두었던 영어시험과 자격증 공부, 인턴십 등 '스펙'을 쌓느라 여전히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하기 때문이죠.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일상을 지켜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혹시 '프로듀스 101'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2016년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이름입니다. 크고 작은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 101명이 참가해서 실력을 뽐내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인기투표를 해서 최종 그룹 멤버 11명을 선출하는 방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입니다. 인기에 힘입어 올해 초에는 시즌2까지 만들어졌지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습생들의 모습은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는 대한민국 청춘들이 처한 현실의 축소판 같습니다.

힘든 연습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데뷔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프로그램 속에서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학벌과 학점,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인턴경험, 공모전 수상경력 등 스펙을 쌓으며 취업전쟁에 뛰어든 청년들의 일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젊은 시청자들에게서 이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비결도 바로 이런 현실 상황의 동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현실 속 청년들도 프로그램 속 연습생들처럼 '나를 좀 선택해 달라'는 간절한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트렌드를 다루는 서적에서는 순위대로 선택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연습생처럼 선택받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스펙을 갖췄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오늘날의 고단한 청년 세대를 '픽미 세대(Pick-Me Generation)'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픽미세대는 대체로 20대와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30대 초반까지를 지칭합니다.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요.

이른바 '디지털 세계의 원주민'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2001년 작가이자 교육학 권위자인 마크 프렌스키가 처음 쓴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살아온 세대로, 디지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이들 세대는 아날로그 세상에서 태어난 기성 세대와는 많이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합니다.

픽미 세대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비교적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보내면서 자녀의 교육은 물론 폭넓은 경험에 아낌없이 지원했던 세대입니다. 그래서 픽미 세대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세대이지만, 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기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픽미 세대는 부족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아끼고 빌리거나 때로는 가상으로 실속 소비를 하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즐겁게 보내자는 현실지향주의자가 되기도 합니다.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가 하면, 또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고 개성 넘치는 삶을 실천하는 용기 있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소비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역인 동시에 사회변화의 중심 세력으로 진화하고 있는 픽미세대,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마이크로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다음번 칼럼을 기대해주세요.  김해뉴스 /배성윤 인제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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