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시마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건물 벽에 직접 가꾼 녹색커튼 앞에서 환호성을 외치고 있다.

 

2003년 구키모토 교사, 수세미 심어 창안
학생들과 힘 합쳐 학교에 사업 진행 성공

교육위, 보육원 등 각종 시설에 설치 지원
비영리법인도 생겨나 전국 운동으로 확산

무더운 여름 건물 벽은 52도, 내부는 29도
단열효과 80% 이르러 나무 그늘처럼 시원




일본 도쿄의 여름은 한국보다 습도와 기온이 높아 후덥지근하다. 도쿄 이타바시 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월 이타바시 구의 기온은 30도 이상을 기록했다. 뜨거운 태양은 도로의 아스팔트도 녹여버릴 기세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온도에 연신 부채질을 하며 걷는 길목 곳곳 학교와 문화센터 등 공공시설 담벼락에는 덩굴식물이 벽면을 따라 부지런히 오르고 있었다.

이타바시 구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녹색커튼운동을 실시한 대표적 환경 지역이다. 1990년 일본 최초로 '에코폴리스 이타바시'라는 환경도시 선언을 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녹색커튼운동은 건물 벽면에 오이, 수세미, 포도 등 덩굴성 식물을 키워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건물의 기온을 낮추는 녹화 운동이다. 덩굴 식물이 햇빛을 가려 그늘을 만들고, 식물 잎 속 물이 수증기로 빠져나오면서 시원한 공기를 내뿜는 원리를 이용한다.

▲ 학생들이 녹색커튼을 만들기 위해 흙을 섞고 있다. 이타바시 구청 공무원들이 자동 물공급 기계를 설명하고 있다(사진 위로부터).

이타바시 구청 건물에도 수세미가 커다란 잎을 뽐내며 바람에 따라 녹색 파도를 일으켰다. 구청은 매년 4월 20일을 전후로 해서 3~8층 벽면에 가로, 세로 각 20m 크기의 그물을 치고 수세미 등 덩굴 식물을 화분에 심는다. 녹색커튼은 9월이면 8층짜리 건물 벽면을 다 덮을 정도로 자라난다.

이타바시 구청의 다이고우 시루타 주무관은 "이타바시 구청은 10년 전부터 매년 사업비 2000만 원을 들여 녹색커튼을 건물 외벽에 만들고 있다. 관리를 위해 자동 물 공급 기계를 설치했기 때문에 사업비가 많이 들었다. 무더운 날씨라도 녹색커튼 안에 있으면 시원하다"고 말했다.

이타바시 구의 녹색커튼운동은 2003년 이타바시 구립 이타바시 제7초등학교 교사였던 구키모토 루리코(55) 씨가 처음 시작했다. 공동주택에 거주했던 구키모토 씨는 에어컨 바람을 싫어했다. 에어컨 없이 무더운 여름을 지냈던 그는 베란다에 수세미 등 덩굴 식물을 심어 녹색커튼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학교 6학년 수업 도중 녹색커튼 만들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세미 등 다섯 가지 식물로 시작했다. 냉해, 태풍을 견디지 못해 실패를 거듭했다. 구키모토 씨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실패 원인을 분석하며 녹색커튼 만들기를 이어갔다. 다음해인 2004년에는 여주와 수세미를 학교 건물 3층 높이까지 가꾸는 데 성공했다.

구키모토 씨는 "녹색커튼은 자연의 힘을 빌려 더운 여름날 교실을 쾌적하게 만드는 훌륭한 친환경 장막이다. 학생들은 녹색커튼을 만들면서 물과 흙, 식물, 벌레를 가깝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기후변화, 도시열섬으로 인한 기후의 문제점을 환경 지식과 경험을 터득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녹색커튼의 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다. 여름철에 높은 고온 때문에 열을 받은 건물은 복사열을 내뿜는다. 이 때문에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 높다. 교실의 온도를 측정해본 결과 벽면 온도는 52도였지만, 녹색커튼 안은 29도였다.

구키모토 씨는 "식물이 잎 속의 물을 내뿜는 증산작용을 하는 덕분에 녹색커튼 안의 온도가 밖보다 낮다. 여름철에 사용하는 발이나 유리의 단열효과는 40~60%다. 반면 녹색커튼은 80%에이른다. 나무 그늘 아래 있을 때 시원함을 느끼듯 녹색커튼 안에서는 체감온도가 낮아져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 흙에서 찾은 지렁이를 손에 들고 즐거워하는 어린이.

구키모토 씨는 정년퇴직 후 다카시마초등학교에서 외래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학년별 종합학습 수업시간을 이용해 녹색커튼운동과 기후변화의 문제점을 가르친다. 1학년은 토마토, 오이, 나팔꽃 등을 공부한다. 2학년이 되면 1학년 때 배웠던 식물 재배법을 익힌다. 6학년이 되면 구키모토 씨와 함께 본격적으로 녹색커튼 만들기에 나선다.

학생들은 씨앗 심기, 토양 만들기, 잡초 제거하기, 그물망 설치 등 쉴 틈 없이 녹색커튼을 가꾼다. 가을이 되면 말라버린 녹색커튼을 제거하는 것도 학생들의 몫이다. 6학년 야스다 아리시마 양은 "매일 물을 주면서 쑥쑥 자라는 식물을 보며 놀랍고 신기하다. 여름철에 녹색커튼만큼 좋은 휴식처는 없다. 녹색커튼 덕분에 여름철 에어컨, 선풍기 사용이 줄어들어 전기료도 줄어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타바시 구 교육위원회는 녹색커튼운동이 학교와 지역을 연계하고, 지구 온난화 방지 활동에 높이 기여한다고 판단해 이타바시 구의 보육원, 초등학교, 중학교 등 교육시설에 녹색커튼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NPO(비영리)법인 '녹색커튼응원단'의 지지와 참여 덕분에 녹색커튼운동은 이제는 일본 전국의 공공시설, 가정, 직장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2003년 설립된 녹색커튼응원단은 현재 개인 33명, 기업 30곳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학교는 스스로 시원하게 하자'는 표어를 내세워 초등학교에서 종합학습 수업을 실시하고, 2008년부터는 오키나와 현을 시작으로 매년 일본의 도시를 돌며 녹색커튼 포럼을 열고 있다. 녹색커튼응원단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재민 가설 주택 2만 개에 녹색커튼 보내기 운동을 하기도 했다.

녹색커튼응원단의 오타 다가노부(56) 사무국장은 "녹색커튼은 컨테이너로 지은 이재민의 가설주택들이 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에어컨 역할을 한다. 지난해 회원과 자원봉사자 600여 명이 구마모토 이재민 가설주택 녹색커튼만들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녹색커튼은 한국의 소외된 이웃도 여름을 시원하게 지내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 '녹색커튼응원단' 오타 다가노부 사무국장(왼쪽)과 마츠시마 미치마 간사.

녹색커튼응원단의 마츠시마 미치마(62) 간사는 "녹색커튼운동을 전국에 확산시키는 데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운동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수세미 등 덩굴식물을 심고 바라보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키모토 씨는 "녹색커튼운동은 지구 온난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는 활동이다. 학생, 교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지지와 참여가 함께할 때 확산될 수 있다. 김해도 매년 여름 기온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녹색커튼은 김해 시민들이 더운 여름을 에어컨 없이 나도록 하는 친환경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해뉴스 /도쿄(일본)=김예린 기자 beaurin@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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