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국 김해문화의전당 사장

김해문화의전당은 오는 10월 말 개최되는 '허왕후 신행길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수로왕 부부의 그 옛날 신비스럽고도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오늘에 불러내 함께 즐기는 축제마당은 우리 가슴에 또 하나의 추억으로 새겨지리라 기대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근거한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이야기를 놓고 역사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가야시대 지배계층의 묘지인 대성동고분군 유적에서 인도 유물이 나오지 않았기에 허왕후 일행이 인도에서 건너오지 않았다며 신행길축제 개최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는 역사학자도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가 깊이 있게 진행되면서 역사학계의 상황이 조금 바뀌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유리구슬과 금관가야의 유리구슬 성분이 비슷하고, 철기 제작기술이 인도문화와 관련성이 있다고 언급되고 있다. 김해의 가야 유적이나 유물에서 중국 등 북방문화와의 교류뿐 아니라 동남아 등 남방문화와의 교류 흔적도 자주 발견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가야시대 '조개장식 말갖춤새'가 일본 오키나와 인근 바다에서 잡힌 조개류의 껍질로 만든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김해가 고대 해양실크로드의 종점이라는 학설도 등장하고 있다.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 설화가 허구가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설화와 전설이 전하는 고대 이야기의 상징과 은유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기록이 없던 고대의 실상을 설화와 전설이 구전과 상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유물 출토나 재질 분석 등으로 훗날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으니, 허구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입증되기까지 유보적 태도로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설화와 전설이 당장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 잘라버린다면 전통문화 자산에 어떤 것이 남을 수 있을까.

물론, 역사적 사실을 하나라도 더 캐내고 이를 정확하게 입증하려는 학자들의 진지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고대의 설화와 전설이 허구로 판명나지 않는 이상 존중받고 보존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역사적 사실과 설화는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설령 설화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축제를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설화나 전설을 소재로 예술작품이나 축제 등 문화콘텐츠를 창작 제작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는 중세시대의 전설을 토대로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창작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바이로이트 축제의 단골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다. '니벨룽겐의 반지'에는 현실을 뛰어넘는 마술적 변신과 마법의 몰약이 등장하기도 한다. 밀양 영남루에 얽힌 '아랑' 전설은 소설과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감동을 주었고, 전북 김제에서 열리는 지평선축제의 '쌍룡놀이'는 전설을 소재로 한 들판민속놀이로 오늘날까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김해는 2000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답게 풍부한 전통문화자산을 자랑한다. 길을 걷다 보면 도처에서 유적지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밋밋한 뒷동산도 구지봉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면 오랜 역사와 마주친다는 설렘이 있다. 봉황동 황세바위 앞을 지날 때는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저려온다. 설화와 전설로 만들어지는 풍부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이를 근거로 창작 제작하는 문화콘텐츠는 김해가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문화자산은 우리 미래의 보고인 셈이다.

10월 말 김해 일원에서는 서울의 예술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김해문화의전당이 공동 주최하는 '가야사 테마 창작 워크숍'이 진행된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김해에 와서 가야사 유물유적 탐방과 설화 연구 등을 통해 가야사 관련 예술작품 창작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야사를 소재로 탄생할 소설과 뮤지컬, 그림과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기대된다. 신행길축제 도중에 허왕후가 이 예술가들을 만난다면 어떤 미소를 보낼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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