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발굴단 회원들이 심야학교를 진행하기 앞서 즐거운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소년·청년 모임 ‘행복발굴단’
심야학교서 인생공부·특강 진행
‘학폭 제로 김해’ 자발적 활동도



"우리가 사는 김해를 전국에서 학교 폭력이 가장 낮은 도시, 전국 최초로 학교 폭력 0%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외동의 한 건물 사무실에 불이 환히 켜져 있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직장인 10여 명이 모여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다.

"어른들이 과연 학교 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까?"

"피해 학생이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해결해 주려 해도 법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피해자 옆에 있는 친구가 되어 주고 그 마음까지 치유해줄 수 있을 거예요."

"학교에 다니는 회원이 각 학교의 보안관이 되면 어떨까. 다른 학교는 몰라도 우리 학교 안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있는지 잘 살펴보는 걸 먼저 해 보자."

김해의 청소년, 청년 들이 '김해 학교 폭력 0%'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학교나 경찰, 학교폭력예방단체에서 마련한 자리가 아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은 청소년, 청년들이 놀면서 자연스럽게 만든 모임, 이른바 '행복발굴단'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름에서부터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행복발굴단'은 특이한 모임이다. 이 모임은 김해는 물론 서울, 부산에도 있지만 어딘가에 등록돼 있지도, 어떤 기관이나 단체로 연결돼 있지도 않다. 구성원들도 특정 계층으로 한정돼 있지 않다.

행복발굴단 박요엘(29) 대표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노래를 하다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저절로 오빠, 형,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부터 금요일 저녁마다 삼계동 수리공원에서 버스킹 공연을 했다.

"지치고 힘들 때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잡아 줄게~" 박 대표가 가장 많이 했던 곡 중 하나는 GOD의 '촛불 하나'였다. 그의 노래에 마음의 위안을 받았는지 주위에 청소년, 청년 들이 모여 들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자 버스킹을 하다가 '촛불들이 하나씩 모이게 됐다'.

신학교 출신인데다 상담자격증, 교원자격증을 갖고 있는 박 대표는 평일에도 이들을 만나 밥을 사주고 상담을 했다. 처음에는 수십만 원 정도였던 월 지출이 100만 원을 넘어서자 그는 택배 일을 하기도 했다. 그가 자기 돈을 들여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 청년에의 애정 덕분이었다. 그는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보다 학교 밖에 있는 소외된 아이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청소년·청년 모임은 지난해 4월 장유 삼문동에 28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빌려 '행복발굴단'이라는 정식 이름을 갖게 됐다. 행복발굴단 회원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단체채팅방에 오는 회원은 100명 정도다. 행복발굴단에는 4가지 규칙이 있다. '서로 사랑하기, 행복하기, 아픈 사람이 주인공이다, 합법적인 범위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기'다.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면서 '함께 놀던' 이들은 2~3개월 전부터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버스킹 공연을 했던 이들은 버스킹 후 '꽃길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꽃을 들고 거리를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꽃을 나눠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아이들이 꽃을 나눠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용기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받는 사람들 역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요즘 '꽃길을 걷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함께 행복하자는 뜻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 달 전부터는 '심야학교'를 열고 있다. 오후 8시 30분~9시 꽃길 퍼레이드, 9~11시 버스킹, 11~12시 심야학교로 이어진다. 심야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과목이 아니라 인생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교다. 외부 강사를 초청해 짧은 강의나 그림책 강연 등을 하기도 한다. 행복발굴단은 심야학교에서 학교폭력 이야기를 하게 됐고, 학교폭력예방팀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최근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첫 회의 때는 '우리가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할 수 없다', '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은 다함께 '해 보자'며 마음을 모았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5~10회까지 회의를 통해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할 예정이다. 그 사이 박 대표는 김해교육지원청 관계자와 학교폭력예방 단체를 만나 협력 방안들을 의논했다.

오세윤(28) 씨는 "저도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직접 겪은 아픔을 바탕으로 다른 피해자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목표대로 학교폭력을 아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최근 발생한 폭력 참사들이 지역에서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민재(19) 양은 "친구를 따라 행복발굴단에 오게 됐다. 학교폭력을 다루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함께이기에 힘을 모아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행복발굴단 회원들은 학교의 보안관을 자처해 피해 학생을 살피고, 학교폭력예방 단체들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폭력보다 더 큰 두려움은 외로움이다. 행복발굴단이 함께 모여 가족, 친구가 됐듯 우리가 피해자, 가해자에게 가족, 친구가 돼 주고 싶다. 앞으로 고독사, 가출 청소년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갖고 청소년, 청년들이 나서서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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