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요디아 왕손 미쉬라 씨가 사는 왕궁 정문 시계탑에 '악귀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쌍어가 새겨져 있다.

 

허황옥(허왕후)의 흔적과 가야불교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보름 동안 인도 북부와 남부 지역을 찾았다. 일연 스님이 허황옥 이야기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쓴 지 1000년 만에 그 실체를 추적하는 여정이었다. 김해시의 자매도시이자 힌두교의 성지인 아요디아(아요디야), 인도의 젖줄 갠지스강의 도시 바라나시, 아쇼카 대왕 시절 찬란했던 불교 유적을 자랑하는 사르나트, 부처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전해지는 보드가야, 한국어와 유사성을 갖고 있는 타밀어를 쓰는 남부도시 첸나이를 차례로 둘러봤다.


 

비행기서 만난 과학기술원 근무 인도인
“천축 공주 이역만리 한국행 가능성 충분”

소도시 아요디아, 힌두교 성지 널리 유명
왕손 미쉬라 저택 입구 ‘물고기 두 마리’

사라유강변 조성 허황옥 기념공원 방치
현지 정부, 정비 통해 관광특화 개발 방침


 

한국은 인도에 이미 친숙한 나라가 돼 있었다. 10년 전 노키아의 자리를 삼성 휴대폰이 차지했고, 일본과 유럽기업이 휩쓸던 프리미엄 백색가전 분야에서는 LG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거리에는 현대자동차가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적으로는 아직 낯설었다. 인도에서 만난 평범한 인도 국민들은 허황옥 이야기를 몰랐다. 인도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인도인 고라크스나트는 부인과 함께 한국에 와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약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허황옥 이야기를 한국에 온 뒤 주한인도문화원에서 처음 들었다고 했다. 아직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에겐 낯선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기원전 아쇼카 대왕 시절을 전후로 세계 최초의 대학인 탁사쉴라가 세워져 세계 도처에 학자를 파견한 만큼 인도 공주가 이역만리 한국에 갔다는 이야기도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수도 델리를 거쳐 럭나우 공항에 내려 아요디아로 가는 고속도로에서는 낯선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세발택시 '톡톡'이 옆을 달리고,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소들이 중앙분리대 위에서 쉬고 있었다. 버스 지붕 위에 승객들이 앉아서 갈 정도로 대중교통은 열악했다.

"아요디아에 가면 힌두교밖에 없다." 인도 현지에서 허황옥과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겠다고 했을 때 이미 아요디아를 방문해 현지 분위기를 아는 김해시 관계자들과 교수들이 수없이 해 준 말이었다.

▲ 사라유강변에서 휴식하는 아요디아 시민들(위 사진). 아요디아연구센터 안에 있는 허황옥 관련 벽화.

그들의 우려처럼 현재의 아요디아는 낯선 힌두교의 도시였다. 아요디아는 파이자바드의 한 지역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군에 불과하지만 인도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아요디아는 힌두 성지 가운데 한 곳이며, 힌두교의 제1신인 라마의 도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요디아에 갔을 때도 힌두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두 번째로 치는 '나샤라 페스티벌'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아요디아의 힌두사원과 사라유 강을 찾고 있었다.

힌두의 도시 아요디아는 김해, 가락종친회와 인연이 깊다. 1999년 미쉬라 왕손 내외가 한국을 방문한 이후 2000년 김해시와 아요디아시는 자매결연을 맺었다. 김해김씨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인도를 방문해 아요디아와의 인연을 강조한 덕에 아요디아에 허황옥 기념공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허황옥 기념공원은 갠지스강으로 흐르는 사라유강변에 세워졌다. 현재 기념공원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방치된 상태다. 정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고 공원 안에는 원숭이만 뛰어놀고 있었다. 무성한 수풀, 녹슨 정문과 담벼락은 정비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가락종친회와 김해시 관계자들이 방문해 기념행사를 열지만 그 때뿐이다. 기념공원 주변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기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모인 빈민촌이다. 1970년대 "허황옥의 출신지 아유타국이 아요디아"라고 처음 주장한 아동문학가 이종기 씨와 1980년대부터 수 차례 아요디아를 방문한 한양대 김병모 명예교수는 아요디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맑고 큰 눈을 가진 소녀들에게서 허황옥의 모습을 떠올렸다.

소녀들은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전기도 갖춰지지 않은 오두막에 살면서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도 안 되는 10루피를 구걸한다. 바라나시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살비지 씨는 "아요디아에는 제대로 된 산업이 없다. 종교와 관광이 이 도시를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먹거리"라고 말했다. 아요디아 일정 동안 기자를 안내한 그는 인도 학계에서는 최초로 2000년 전 아요디아와 가야의 국제교류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사람이다.

가난한 도시 아요디아를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려는 미래 청사진에 허황옥과 한국이 있었다. 인도의 유피 주정부가 세운 아요디아 개발계획에 한국과 인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허황옥 기념공원이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념공원이 정비되면 주변지역은 특산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특화지구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지 관리들과 사회복지 관계자들은 구걸로 하루를 연명하는 빈민촌의 사람들에게 기념공원과 연계한 개발사업이 일자리를 창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사라유강변에 조성된 허황옥 기념공원. 유피 주정부는 이곳을 중심으로 관광특화지구를 개발할 예정이다.


아요디아 왕손인 미쉬라 씨를 만나러 왕궁을 찾았다. 그는 김해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을 수 차례 방문했고, 기념공원 행사를 현지에서 지원하고 있다. 왕궁 입구에 쌍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정문부터 안쪽 여러 문에 이르기까지 좌우로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쌍어 문양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 이종기 씨와 김병모 교수 등은 이 쌍어 문양이 허황옥이 인도에서 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쌍어는 특히 아요디아가 있는 유피 주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인도는 19세기 영국이 식민지배를 하기 이전 수십 개의 가문이 지역을 나눠서 통치했다. 유피 주 지역 왕족들의 문양은 물고기다. 쌍어가 악귀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신성시됐다. 유피 주 지역에서는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유피 주의 공식문서와 관공서에서 볼 수 있는 상징도 쌍어다.

▲ 유피 주 문서에 쌍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미쉬라 씨는 허왕후의 흔적을 찾아 온 김병모 교수와의 인연으로 허황옥 이야기를 알게 됐고, 김종필 전 총리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미쉬라 씨는 "1990년대 말 한국을 방문했고, 이후에도 수 차례 김해를 찾았다. 우리 가문은 19세기 중반부터 이 곳을 지배했기 때문에 허황옥의 직접적인 후손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책에 나오는 아유타국과 아요디아가 같은 지역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황옥을 향한 한국와 인도의 관심이 두 나라 관계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해뉴스 /아요디아(인도)=심재훈 기자 cyclo@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