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은 생산물이 아니라 기호다."

2007년 타계한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자신의 저서 <소비의 사회(1970)>에서 한 말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성이라 불리는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가 사용가치에 의해 이뤄진다는 기존 경제학 이론을 비틀어 '행복', '현대성',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소비에 주목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생산된 물건의 기능을 따지기보다는 상품이 상징하는 권위와 의미, 즉 기호를 소비한다는 주장이죠.

이러한 기호소비가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기는 하지만, 특히 픽미(Pick-Me) 세대에서는 조금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로서의 지위와 세련미, 나만의 행복 추구 성향을 '나성비'라는 키워드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 지난 6월 Mnet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프로듀스 101 시즌2’ 프로그램에서 국민투표로 선발된 워너원. 사진 출처=프로듀스 101 시즌2 공식 홈페이지

지난 시간에 소개한 것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뽑혀야 살 수 있는 요즘 세대를 픽미 세대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세대이지만, 저성장 시기에 무기력을 학습하며 어른이 되었지요. 계속되는 경쟁의 악순환을 겪으며 언제 탈락할지 모른다는 초조함은 이들을 지배하는 정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프로듀스 101'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비슷한 또래의 공감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오디션 참가자의 실력과 개성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합격자를 결정하는 시스템에서는 전문가의 평가 못지않게 시청자의 감성적 선택이 중요한 거죠.

이런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라난 20대 픽미세대에게는 어쩌면 객관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주관적 감성을 충족시켜 주고 차별화된 경험적 가치를 가져다주는 소비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20대는 '개인'과 '개성'을 대표하는 세대이고, 20대에게 '트렌디하다'는 것은 일종의 훈장이니까요.

한때는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느냐가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고, 최근에는 저성장 시대에 '가성비' 좋은 소비를 해야만 똑똑한 소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기에는 지갑 사정이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싸구려만 사기에는 너무 사는 재미가 없다고 할까요?

사실 쇼핑하는 재미와 살아가는 재미 둘 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픽미세대는 브랜드나 가성비에 의해서만 소비하지는 않습니다. 가격, 시간, 성능, 효율, 트렌드, 순간의 즐거움 같은 다양한 조건이 개인이 원하는 비율로 어우러졌을 때 소비의 만족을 느끼는거죠. 이른바 가격대비 성능의 비율이 좋은 '가성비'보다는 100명 중 99명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 한 명이 원하는 성능의 비율이 극대화된 '나성비'를 따지기 시작한 겁니다.

▲ 카카오프렌즈 스토어 현대백화점 신촌점(위쪽)과 상품 파우치와 컵. 사진 출처=카카오프렌즈 스토어 홈페이지

'나성비'를 따지는 20대 소비 트렌드의 대표적인 사례가 캐릭터 상품에 대한 소비 증가입니다. 20대들은 스마트폰이나 디지털기기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충전을 위해 휴대용 보조배터리를 갖고 다니는 경우가 흔한데요. 요즘은 캐릭터가 그려진 고가의 보조배터리가 아주 잘 팔린다고 합니다.

성능이 비슷한 두 제품이 있고, 어차피 필요한 것이라면 그 중에서 더 예쁜 것, 소장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이들의 소비법인거죠. 그래서 이들에게 익숙한 캐릭터와 메신저 이모티콘이 전시된 매장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하는가 하면, 일반 상품에 비해 고가인 캐릭터 상품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픽미세대는 누가 뭐래도 내가 좋으면 최고인 소비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른바 '취향저격' 상품의 전성시대입니다.  김해뉴스/ 배성윤 인제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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