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경남도, 경북도, 김해시, 함안군, 고령군은 지난달 28일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에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각 지방자치단체·학계 관계자,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학술대회 결과는 오는 11월 고령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함께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작성에 반영될 전망이다.
등재 추진 대상은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사적 제79호)이다. 가야고분군은 2013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15년 3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됐다.
이날 학술대회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의 고분군과 가야고분군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자 7명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 인제대 이영식 교수가 지난달 28일 김해박물관에서 열린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이영식 인제대 교수
“왕실 보호 위해 왕궁 근처 조성
 왕도 구성 전체 계획 중 하나”

 ■ 강현숙 동국대 교수
“고구려와 매장 부장품 등 비슷
 순장 습속, 입지 경관적 우수”

 ■ 김용성 한빛연구원 조사단장
“후기 목곽묘부터 신라와 분화
 연결되지 않은 독립정치체 증거”




■ 세계유산 OUV에 입각한 가야고분군의 연속성과 대표성 /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선정돼야 하는 것은 가야의 역사·문화는 세계에 단 하나뿐이며,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압축적·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가야고분군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분립돼 있으나 문화적으로 공통성을 유지했던 가야 역사의 전개와 같이 가야고분군 사이에는 '다르면서 또 같다'는 특징이 존재한다. 가야고분군은 목관묘에서 목곽묘로 발전하고 수혈식 석실로 전개되는 공통적인 분묘 형식을 보인다. 출토되는 가야토기는 공통적으로 낙동강 서안의 형식을 띠며 낙동강 동안의 신라 토기와 구별된다. 가야토기는 다시 경남 김해, 함안, 고성, 창녕과 경북 고령 등의 형식으로 나뉜다. 동일한 가야문화권 내부에서도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비화가야 등이 성립, 발전했던 것과 잘 대응하는 부분이다.

가야고분군은 입지적으로는 왕궁 인접지에 조성돼 있다. 대성동고분군은 가락왕궁으로 추정되는 봉황토성에 인접해 있다. 말이산고분군은 <대동지지>에 '가야고성'으로 기록된 성산산성, <함주지>가 전하는 아라국 왕궁지인 '전 왕궁지'와 가깝다. 지산고분군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설명하는 대가야의 왕궁에 접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가야고분군이 왕궁과 함께 가야왕국의 왕도를 구성하는 전체 계획의 하나로 조성됐음을 보여준다.

가야고분군은 중·대형 고분들이 구릉에 군집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왕릉에 묻힌 선조들이 왕실과 국가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기가야를 대표하는 대성동고분군은 고총 출현 이전이라는 중심시기의 문제 때문에 말이산고분군, 지산동고분군과 같은 대형마운드의 군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각각의 분묘가 서로 중복되는 독특한 현상이 발견된다. 전대 고분의 일부를 파괴하고 후대의 고분들을 축조한 양상을 보인다. 이는 사후에도 한 집안을 유지하겠다는 계보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가야고분군은 장축 방향과 침향에서도 특수성이 확인된다. 장축 방향은 물체의 긴 축을 뜻한다. 대체적으로 등고선에 평행하게 나타나는 자연 순응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중국적 방위관념인 '동서남북'과 구별된다. 베개의 방향을 나타내는 침향 또한 북쪽을 향하는 중국과 다르다.

가야고분군이 지닌 공통적 특징에는 순장 풍습도 포함된다. 순장은 금관가야에서 시작됐으며 이후 신라문화권으로 확산됐다.

가야고분군은 가야가 고대 동북아 문화·문물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잘 보여준다.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되는 방격규구사신경, 내행화문경, 칠기부채 등은 한 군현 및 중국왕조와의 교류를 짐작케 한다. 호형대구, 마형대구, 동복 등은 북방 유목민족 문화권과의 교류를 나타낸다. 벽옥제 옥장, 파형동기, 비취제곡옥 등은 일본열도와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가야는 기원 전·후 중국제도술의 영향을 받았으나, 기원후 3세기께 1200도에 달하는 고온에서 훨씬 높은 강도의 도질토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높은 온도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가야가 철을 제련할 수 있는 용광로를 사용한 데서 비롯했다. 이는 가야 문물의 수출과 가야인들의 이주를 통해 일본열도에 전파됐다. 덕분에 왜인사회에서 최초의 경질 토기인 스에키가 만들어졌고 제철기술이 수용되는 등 고대 일본의 국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 고구려고분과 비교해 본 가야고분의 세계문화유산적 가치 /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강현숙 교수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문화유산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6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인간의 창조성으로 빚어진 걸작이어야 한다. 둘째 건축, 기술, 장식예술, 도시계획, 조경분야에서 오랜 시간 인류가치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화전통 또는 문명의 특출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넷째 인류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잘 보여주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 기술적 총체, 경관의 탁월한 사례이어야 한다. 다섯 번째 환경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정주지, 토지·해양 이용의 대표적인 사례이어야 한다. 끝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유한 사건, 전통, 사상, 신념, 문화적 작품과 연계돼 있어야 한다.

고구려고분군은 이중 1~4번 사항에 해당한다고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가야고분은 고구려고분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분구나 매장주체부 구조 등에 차이가 있어 가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총 축조, 다종·다량의 부장품 매납, 시간에 따른 무덤의 구조적 변화, 매장 관념의 변화 등은 서로 유사하게 나타난다. 가야고분의 경우는 여기에 계획적인 순장 습속, 고분 입지조건의 경관적 우수성 등이 더해졌다.

가야고분군이 세계문화사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시간에 따른 가야고분의 구조 변화, 매장 풍습, 사후 관념 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 기술적 총체, 경관의 탁월한 사례가 있어야 한다.


■ 가야고분과 백제고분의 비교 / 공주대 사학과 홍보식 교수

백제고분은 가야고분과 입지, 군 구조, 규모, 봉분 축조 기법, 매장시설의 구조, 축조·매장 방식, 부장품 구성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백제고분군은 시기에 따라 하천변의 미고지 또는 구릉 사면에 입지했다. 한성기에서 웅진기를 거쳐 사비기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규모가 축소되면서 무덤은 사자를 매장하는 시설물로서의 기능이 강화됐다. 뿐만 아니라 매장 주체시설의 간략화와 규격화가 진행돼 고분이 백제 사회를 나타내는 표상물로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반대로 가야고분은 4세기에서 6세기로 시간이 흐르면서 외관적 과시성과 규모가 더욱 증가했다. 부장품의 종류와 수량도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6세기 전반에 최고조에 도달했다. 또한 노동, 토목, 기술, 각종 생산품, 대외 교류, 지배 관계 등 가야 사회의 모든 요소들이 집약된 기념물이다. 따라서 가야 고분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복원할 수 있는 최적의 자료이자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기념물로 평가할 수 있다. 


■ 신라고분과 비교한 가야고분의 특성 / 한빛문화재연구원 김용성 조사단장

동종이형(同種異形)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신라와 가야의 고분은 거의 같은 궤적을 그리며 발전했다. 그러나 후기 목곽묘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권으로 통일돼 광역에 걸쳐 나타나지만 가야권역에서는 각각 다른 양상을 보이므로 이때 신라와 가야의 묘제가 분화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대성동고분군은 신라와 구별되는 이혈일(日)자형 주부곽식과 단곽식의 목곽묘를 조영했다. 회(回)자형을 기본 묘형으로 하고 있다. 심한 중복현상도 관찰된다. 후대의 방계가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선대 왕묘의 주변이나 위에 묘를 축조했기 때문이다. 고총 단계에 해당하는 말이산고총과 지산동고총은 원형봉토분으로 축조했다. 내부 주체는 수혈식석곽이 위주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러한 가야의 세 고분과 신라고분의 차이는 각기 서로 연결되지 않는 독립된 정치체라는 점을 보여준다. 


■ 가야고분군과 일본고분시대 묘제 비교연구 / 경남발전연구원 하승철 역사문화센터장

일본은 오사카 모즈·후루이치고분군을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즈·후루이치고분군은 4세기 후엽부터 5세기에 걸쳐 조성된 일본열도 최대 규모의 고분군이다. 일본 최성기의 고분문화를 대표한다. 5세기 새로운 금속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된 철기 무기·무구, 금동 장신구 등이 다량 부장돼 있고, 한반도와 대륙에서 전달된 스에키 등이 부장돼 있다. 특히 최고급의 외래계 유물이 집중돼 있어 외교권을 장악한 모즈·후루이치고분군 왕가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이 고분이 국가 형성기라고 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사례임을 강조한다.

가야고분군은 2011년부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가야고분군의 생성과 성립 자체에 주목한 연구는 별로 많지 않다. 짧게는 200년, 길게는 700년에 걸쳐 형성된 가야고분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극복해야할 과제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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