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박물관, '금관가야 신라' 주제 강연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 초청해 강의



국립김해박물관은 지난 12일 박물관 대강당에서 '금관가야와 신라'를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제16기 가야학 아카데미'의 다섯 번째 순서로 마련됐다.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주 교수는 강연을 통해 가야의 출범, 가야와 신라의 관계 전개, 가야의 멸망과 신라를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존립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외교다. 외교는 내정을 이해해야 알 수 있다. 적어도 둘 이상의 나라가 대상이 되며 시기 이해도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복합적이다. 특히 가야의 경우 하나의 통합된 국가, 정치세력이 아니라 여러 독립국으로 분립된 상태였기 때문에 대외관계사 파악이 어렵다"고 밝혔다. 

▲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가 12일 김해박물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 교수는 가야사의 성립시기를 판단할 때 가야와 변한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소위 전기론(前期論)과 전사론(前史論)으로 나뉜다. 서로 입장 차이가 뚜렷하다. 어느 쪽이 타당한가의 가치 판단 문제가 아니라 어느 입장에 설 때 순조롭게 설명이 가능한지가 핵심이다. 물론 양쪽 다 성립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전기론은 변한 시기에 초기가야의 성격이 나타나기 때문에 변한을 가야의 전기시대로 봐야 한다는 학설이다.

반면 전사론은 변한에서 초기가야의 성격이 보이지 않고 가야가 성립함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이 나타나므로 변한을 가야 이전의 역사로 인정해야 한다는 학설이다. 공통적으로 변한-가야의 계승은 인정한다. 다만 가야의 시작점을 언제로 보느냐에 차이가 있다. 

주 교수는 "변한 지역의 교역체계 중심은 금관가야(김해)였다. 뛰어난 제철 기술을 갖고 있었고 철 운반을 위한 수로교통이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진한의 사로국(경주)이 유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육로교통의 발달에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도 두 나라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후 사로국은 신라로 통합돼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지만 가야는 그렇지 못했다. 주 교수는 새로운 변화에 따르지 않았던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는 "3세기 말부터 조짐이 있었다. 한반도의 가장 선진지는 대동강 인근의 낙랑구역이었다. <진서>에 따르면 삼한 중 마한, 진한은 중국과 270~290년대에 통교를 했다. 변한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에 따르지 않고 기존의 교역망,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4세기 초 중원 오호 세력의 진출 때문에 고구려가 남하한다. 당시 제1의 재화가 '철'에서 '금·은'으로 바뀌면서 운송수단 역시 수로교통에서 육로교통으로 옮겨갔다. 5세기에 들면서 가야의 세력은 점점 약해졌다. 가야권의 혼란상을 틈타 신라가 532년 금관국을 복속시켰다. 560년께 가야의 여러 세력을 멸망시켰다"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한편 국립김해박물관은 지난달부터 매주 수요일 '한국고대사의 재발견'을 주제로 '제16기 가야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총 9회 강연과 1회 답사가 진행된다.

오는 25일에는 수강생 중 신청을 받아 경북 경주 월성 발굴지, 황룡사 역사문화관, 옥산서원으로 답사 여행을 떠난다. 다음달 1일에는 경북대 사학과 이영호 교수가 '신라인의 통일의식과 가야계 인물들'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간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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