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재단 외국시설 10년 탐방기
다양한 직업 활동 등 한국과 차이
서로 베풀며 함께 구성원으로 성장



'아이가 죽은 다음날 눈을 감았으면….'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대부분의 마음이다. 삶보다 죽음을 더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다. 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와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사회 제도와 인식이 한참 모자란 탓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돈벌이하고 세금도 내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세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서울에서 장애인 재활·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푸르메재단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세계의 선진 장애인 시설로 향한다. <보통의 삶이 시작되는 곳>은 재단 관계자들이 지난 10년간 유럽과 미국, 일본의 직업재활시설과 생활재활시설, 재활병원 등 30곳을 탐방한 뒤 꼼꼼히 기록한 책이다.

해외에서 만난 풍경들은 우리나라 현실과는 딴판이다. 혐오시설이란 이유로 외딴 곳으로 내몰릴 법한 장애인 시설이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 주택가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장애인 작업장과 업무 유형도 다양하다. 단순 조립공장에서 일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컴퓨터 전산 업무를 처리하는 전문직, 자연 속에서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는 장애인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장애인지원단체 레벨스필페는 13개 지역에서 60개 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직업을 제공한다. 틀에 찍어낸 듯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하는 우리나라 중증 장애인의 삶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차이는 장애를 대하는 근본적인 인식 차이에서 출발한다. 저자들이 만난 사람들은 장애인의 삶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가치 있고 고귀하다고 여긴다. 비장애인이 적성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듯 장애인도 개성에 따라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건 당연하다. 이를 위해 환경에 장애를 맞추지 않고 장애에 맞춰 작업 환경을 유연하게 바꾼다.

일본 나고야의 골프장 시스템을 관리하는 한 중증장애인은 바닥에 담요를 펴고 앉아 일하지만 이 분야에선 베테랑이다. 이 회사에선 비장애인 직원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장애인 직원도 여럿 있다. 모든 빵을 110엔에 판매하는 일본의 빵집 클라라 베이커리도 '사람에 일을 맞춘' 경우다. 계산 담당인 지적장애인 고니시 도루 씨가 일하기 편하도록 전체 가격을 통일한 것이다. 작업장 대부분은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때로는 적자가 나기도 하지만,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건 든든한 제도적 지원 덕분이다.

미국은 1938년 장애인 작업장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한 '와그너 오데이' 법을 제정한 이후 꾸준히 지원 대상과 혜택을 확대해 왔다. 오늘날 정부와 학교, 교도소 등지에서 필요한 물품의 10~15%를 장애인 작업장에서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직업학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함께 교육하며 기업 실습을 통해 취업까지 보장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학생 교육용으로 최신 자동차를 무상 기부하며 수업에도 참여한다.

법과 제도, 민간의 보살핌 속에 자라난 장애인들은 더 이상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장애인작업장 '어빌리티 퍼스트'는 매년 장애인들이 번 수익 20만 달러 중 20%를 떼어내 더 어려운 장애인 단체에 기부한다. 클라라 베이커리 직원들은 이웃 학교에 수시로 요리 출장을 나가 어린이들과 함께 빵을 만든다. 비장애인처럼 나누고 베풀면서 진정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다.' 푸르메재단의 구호처럼 실로 장애인이 살 만한 세상이면 모두가 살 만한 세상이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그네를 만들면 비장애인도 재밌게 함께 탈 수 있다. 중증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누구에게나 편리하다. 장애인을 보듬는 일은 결국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하는 길이다.

부산일보 제공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