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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가야 왔던 1세기 무렵 아요디아 인근 사르나트에 찬란한 불교문화가야불교 뿌리를 찾아서 (22) 인도 바라나시·사르나트
  • 수정 2017.11.08 17:13
  • 게재 2017.10.25 10:20
  • 호수 344
  • 14면
  • 심재훈 기자(cyclo@gimhaenews.co.kr)
▲ 인도인들이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고 있다. 허황옥의 고향이라는 아요디아의 사라유 강에서 갠지스 강을 거치면 벵골만으로 이어진다.

 

사라유 강~갠지스 강 거쳐 벵골만 연결
말레이반도~남중국해 지나면 한반도 직행
‘해상 실크로드’ 불렸던 바다 교역로 일치

사르나트 박물관에 다양한 형태 불상 전시
먄마르사원 발굴 유물, 당시 생활상 설명
허왕후 고향에도 불교 성행했을 가능성



허황옥(허왕후)이 가야로 떠난 출발점과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아 '인도의 젖줄' 갠지스 강으로 유명한 도시 바라나시로 갔다. 아요디아(아요디야)를 가로지르는 사라유 강은 갠지스 강 하구와 연결된다. 허황옥 일행이 바다로 갔다면 이 경로가 유력하다. 갠지스 강은 인도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으로 이어진 벵골만과 연결된다. 허황옥이 아요디아에서 출발했다면 사라유 강과 갠지스 강을 거쳐 벵골만을 지난 뒤 말레이반도 부근을 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당시 '해상 실크로드'로 불린 해상 교역로와 일치하는 경로다.

▲ 사르나트에 있는 태국 사찰의 거대불상.

바라나시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귀에 익은 운율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판소리 같았다. 사설이 이어지고 중간중간 극적인 부분에선 발림, 얼쑤 같은 추임새가 나왔다. 판소리와 똑같은 형식의 악극이었다. 구성과 형식, 리듬은 거의 같았다. 대사만 한국어에서 힌두어로 바뀐 것뿐이었다. 글을 알지 못하는 민중에게 힌두의 신화 라마야나를 알리기 위해 흥겨운 악극 형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판소리가 조선 말 백성들에게 위안을 주었듯 종교적 색채가 강한 라마야나 악극은 가난한 인도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었다.

아요디아에서 5시간을 달린 끝에 바라나시에 닿았다. 현지에서 '강가'로 불리는 갠지스 강에 갔다. 오전 6시가 되기 전, 인기 여행지 중 한 곳인 아시 가트에는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갠지스 강 서쪽 둑을 따라 강물로 연결되는 가트(계단)들이 길게 이어져 있고, 뒤쪽으로 수백 년 된 힌두 사원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남성들은 오렌지색 힌두 의상을 어깨에 걸치고, 여성들은 주로 보라색과 빨간색 화려한 옷을 두르고 여기에 온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뿌자(기도)'를 올리려는 것이다.

▲ 사르나트의 불교유적을 대표하는 '다메크 스투파'.

바라나시대학교 지리학과 라라 싱 교수는 "당시 교역로를 감안하면 허황옥 일행이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와 남중국해를 거쳐 가야에 갔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요디아라는 지명은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도 대략 10개 정도를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아유타국이 인도의 아요디아인지 아직 확정해 말하기 힘들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도공주와 가야왕의 결혼이 한국에서 아직 설화적 수준의 역사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다. 지리학, 민속학 등 다양한 인접학문과의 교류를 통해 향후 실체가 밝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싱 교수는 ACLA(아시아문화경관협회) 등 여러 국제학술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북미, 유럽, 아시아 각국의 학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그는 허황옥 이야기는 인도와 한국을 이어주는 교류의 매개로서 중요한 관계이자 상호작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에서는 허황옥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학술 연구가 초기 단계다. 나는 지난 2013년 한국대사관 소식지를 통해 처음 이야기를 들은 뒤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인도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다면 허황옥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전세계의 불교신자들이 찾는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대탑'.

싱 교수를 만난 뒤 여러 힌두 사원과 오래된 건물을 둘러 보았다. 시내 유적을 살펴보다 오래 된 4층 건물에서 쌍어 문양을 발견했다. 1884년 세워진 이 건물은 제이풀 가문이 바라나시를 지배할 당시 지은 왕실 건물 가운데 하나다. 쌍어는 이 지역을 상징하는 문양이어서 다른 옛 왕실 건물에서도 빠지지 않은 장식이었다. 이곳은 현재 어린이들을 위한 힌두 연극인 '람릴레'를 공연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인도 북부 사르나트로 갔다. 사르나트는 인도에서 불교 흔적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소수의 도시 중 하나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시대적 배경은 1세기다. 허황옥이 가야에 온 1세기 당시 아요디아 인근 인도 북부의 종교적 환경은 어땠을지를 알아보는 게 사르나트를 찾은 목적이었다.

사르나트는 아주 작은 도시다. 하지만 한때는 거대하고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웠던 지역이다. 사르나트 문화유적을 관리하는 총책임자이자 인류학 박사인 신하 씨는 "사르나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세계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교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허황옥이 가야로 건너왔던 때는 48년이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에는 이와 비슷한 1세기 무렵부터 이후 1000년이 흐른 10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불상이 전시돼 있다. 1990년 발굴된 먄마르사원에서 나온 각종 그릇, 장신구들은 기원전 1세기 전후에 불교의 영향을 받은 생활상을 보여준다. 허황옥이 아요디아에서 가야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진 시기와 비슷한 때에 아요디아 인근의 사르나트에서 불교가 성행했다면 당연히 아요디아에서도 불교가 널리 퍼져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신하 씨는 가야와의 관련성을 찾으려면 아요디아 인근 도시 럭나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요디아 남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럭나우의 임암바라와 가이사르 가든 등에서 쌍어 문양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 등 옛 페르시아 지역에 퍼져 있는 물고기 흔적이 인도 일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사르나트에는 한국의 사찰인 녹야원이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의 말사다. 신라 때 승려였던 혜초 스님의 인도 순례를 기념하는 불탑도 세워져 있다. 2006년 녹야원에 부임한 지훈 스님은 "허황옥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려면 (사르나트 인근에 있는 보드가야라는 도시와 비슷한 명칭인)'가야'라는 이름을 왜 썼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뱃길이 어느 쪽으로 형성되었을 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녹야원에서 LG전자 인도지사 김기원 지사장을 만났다. 김 지사장은 "허황옥 이야기가 이곳에서도 점차 알려지고 있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더 친숙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직접적인 경제 교류와 투자 뿐 아니라 인도사람들이 중시하는 종교나 문화 분야에서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바라나시·사르나트(인도)=심재훈 기자 cyclo@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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