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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보다 이웃사촌 더 아낀 마을… 독립운동 자금 댄 일제갑부 허발 고향(11) 안동(마마리)
  • 수정 2017.11.01 11:22
  • 게재 2017.11.01 10:24
  • 호수 345
  • 13면
  • 배미진 기자(bmj@gimhaenews.co.kr)
▲ 수령 500년이 넘은 안동 당산나무. 이곳 주민들은 '할매 당산'이라고 부른다.

 

김해~양산 오간 파발마 머물던 역원 존재
동네에 말 많다며 ‘마마리’라고 불리기도

조선 때부터 창녕조씨·김해허씨 등 집성촌
비닐하우스 농사 활발한 덕 늘 ‘은빛 바다’

산업화 시작되며 한일합섬, 국향산업 설립
군데군데 낡은 가옥, 골목길 아련한 향수



"논밭에는 오곡백과가 영글고 산에서는 맑은 물줄기가 흘러 내렸지요. 안동은 김해에서 알아주는 부자마을이었답니다."

안동은 삼방동과 지내동 사이에 위치한 공업지역이다. 예전에는 주민 대다수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지만 1969년 한일합섬이 들어오면서 공장으로 뒤덮였다. 안동에서 13년간 통장을 맡았던 동김해새마을금고 조팔도(63) 이사장은 안동의 옛 이름을 '마마리(馬磨里)'라고 소개했다.

"마을에 말이 많았다고 전해져 마마리로 불렸습니다. 마마란 이름이 천연두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1947년 6월 25일 안동으로 개칭했습니다. 안동은 살기 편안한 동네라는 뜻입니다."

마마리라는 이름에는 다른 해석도 있다. <김해의 지명>에 따르면 마마리의 '마(馬)'는 중심에 있는 산, 들, 마을을 뜻할 수 있고, '마리(磨里)'는 마을을 뜻하는 '말'의 변이형태로 표기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마마리는 말단 행정구역 단위의 하나로 '중심에 형성된 마을'을 뜻한다. 마마리는 지역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인식됐다는 이야기다. 과거 마마리에는 김해와 양산을 오가는 파발마가 머물렀던 역원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동네보다 말이 많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 안동육거리에서 안동경로정 방향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옛 마을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안동에는 조선 중기부터 창녕조씨, 창녕장씨, 김해허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조 이사장은 "마을이 워낙 커서 웃각단, 아랫각단이라고 나눠 불렀다. 150가구가 모여 살았다. 안동같이 인심 좋은 곳이 없었다. 멀리 있는 형제보다 이웃사촌을 더 각별하게 여겼다"며 웃었다.

안동의 대표적 인물은 허발(1874~1931)이다. 고을에서 이름난 갑부였던 허발은 일본의 경제적 침략과 문화 말살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과수원, 정미소, 금융조합, 유통업 등으로 재산을 모았다. 1919년 3·1만세운동 후 중국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했다. 1922년에는 사립합성학교(현 합성초)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지냈다. 조 이사장은 "허발의 땅을 밟지 않고는 김해를 지나갈 수 없었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그만큼 부자였고 사회 공헌에 힘쓴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옛 안동에서는 비닐하우스 농사가 활발했다. 집마다 토마토, 오이를 심었다. 농사가 잘돼 풍족하게 지냈다. 지역이 넓다 보니 멀리서 보면 비닐하우스가 은빛 바다를 이룰 정도였다.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기 싫어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지내동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평양골이 있었고, 뒷산에 폭포가 흐르던 물만골이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자주 나타난다는 범골도 우리에겐 놀이터였답니다. 하루는 물만골에 소 풀을 먹이러 올라가서 나무에 묶어두고 신나게 놀기만 했습니다. 뿔난 소의 뒷다리에 채여서 다치고, 홀쭉한 소의 배를 본 부모에게도 혼나고 말았답니다." 조 이사장이 옛 추억을 회상하며 껄껄 웃었다.

▲ 할배 당산이 있었던 자리에 후계목인 양버즘나무가 자라고 있다.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토박이는 당산나무다. 안동육거리에서 안동경로정 방향으로 들어가면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볼 수 있다. 이곳 주민들은 '할매 당산'이라고 부른다. 할배 당산은 70여 년 전 고사했다. 그 자리에는 후계목인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자라고 있다.

조 이사장은 "나무 옆에 전선이 지나가고 가지가 내려 앉아 위험한 모양새다. 손을 대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어 아무도 잘라내지 못한다. 정월보름이 되면 당산나무 앞에서 지신밟기를 하며 소원을 빈다"고 말했다.

안동육거리 남서쪽에는 주유소가 있다. 과거 이곳에는 샘물이 있었다. 조 이사장은 "주민들의 식수는 안동통새미에서 해결했다. 맑고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지만 동네가 개발되면서 샘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비닐하우스로 은빛 바다를 이루던 안동의 옛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국향산업과 한일합섬, 한영요업이 잇달아 들어왔다. 기세를 몰아 중소기업들이 입주하면서 안동 일대는 공단이 됐다. 한일합섬은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는 여성들을 위해 한일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조 이사장은 "한일합섬에는 한때 여자직원만 1만 명 정도였다. 옷 장사, 분식집도 매우 잘 될 만큼 경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 안동통새미가 있었던 샘터에는 주유소가 들어서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군데군데 옛 마을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신축 건물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오래된 가옥들과 좁은 골목길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시멘트를 덧칠했지만 옛 풍경이 생생하게 아른거린다.

논밭을 공장터로 내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났다. 안동은 김해의 경제 활성화를 이끌었지만 노후화와 슬럼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김해시는 1조 원 규모의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할 것이라 발표하기도 했다. 조 이사장은 "낙후된 만큼 개발이 돼서 새로 인구가 유입되면 풍요로웠던 옛 안동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김해뉴스 /배미진 기자 bmj@ 김해의 뿌리 '자연마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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