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전~마산 복선전철 사업 부지에 포함돼 이식을 앞둔 용전숲 노거수들.



1462년 생법역 생긴 뒤 숲 조성
인근 지나가는 부전~마산 전철에
부지 일부 포함돼 고목 이식해야
고령 나무들 살 수 있을지 걱정



저는 용전숲에 사는 고목, 노거수입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참 빠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도 진례면 신월리 용전숲, 옛날로는 생법역 옆에 자리 잡은 지 400년이 넘었으니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400년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 같습니다. 강산이 수십 번 변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사람들이, 이야기들이 제 곁을 오고 갔는지 모릅니다.

제가 오늘 <김해뉴스>에 등장한 것은 조만간 용전숲을 떠나야 하는 다른 동생 노거수들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곧 용전숲 바로 옆에 신월역이 들어서고 부전~마산 복선전철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용전숲 4000여㎡ 중 750㎡ 정도가 사업 부지에 포함됐습니다. 그 때문에 용전숲에 심은 노거수 90여 그루 중 수령 100~200년 된 16그루가 옮겨질 예정입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이식하려고 올해 초 가지를 쳤고, 이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뿌리돌림을 해두었습니다. 동생 노거수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습니다. 오랜 친구같은 동생들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용전숲이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시작은 조선시대 세조 8년인 1462년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파발마 역원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올라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창원과 연결되는 역원인 '생법역'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진례면 산본리 용전마을이 바로 생법역 터입니다. 역이 들어선 이후 부속림으로 400여 년 전 용전숲이 생겼고, 저를 포함해 나무들이 심어졌습니다.

지금이야 역 옆에 왜 숲이 있는지 이해를 못할지 모르지만 그 때는 숲이 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역로로 말을 타고 달려온 관원들은 울창하게 우거진 숲에서 땀을 식히고, 숲 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을 마셔 목을 축였습니다. 숲은 자동차 역할을 했던 말에게는 휴식처이기도 했습니다. 관원들은 나무들의 몸통에 고삐를 단단히 고정하고 말에게 시원한 물과 여물을 먹였습니다.

역이 들어선 덕에 숲 주위에는 주막이 들어서고 장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관원들은 말을 쉬게 하는 사이 주막에서 국밥과 막걸리 한 그릇을 시원하게 들이켰죠. 일부 관원들의 '갑질'로 죄 없는 마을 주민들이 시달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관원들의 눈에 띄면 부역에 끌려 나가야 하거나, 관원들을 대신해 말에 여물을 주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용전숲 옆에는 용전마을이 생겼습니다. 숲의 노거수들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 가까이에서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숲 뒤편에 있는 용지봉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용지봉 인근에 암장한 무덤이 있는지 살펴보고는 유골이 나오면 용전숲에서 태우기도 했습니다. 우거진 나무와 물, 그늘이 어우러진 용전숲은 여름철 용전천의 범람을 막아주고 겨울철 서북풍 칼바람을 막아주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용전숲을 '나라에서 만든 숲'이라며 매우 아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법역은 없어지고 마을 사람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대신 근처에는 공장과 축사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장유와 진영을 잇는 1042번 지방도가 생겨 차들이 쌩쌩 지나갑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말들이 달렸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입니니다. 그동안 노거수들의 몸도 많이 약해졌고, 저와 비슷한 시기에 심어졌다가 죽은 나무들도 있습니다. 수 년 전에는 1억 원을 넘게 들여 대대적인 수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 진례면 용전숲에 어린이들이 찾아와 뛰놀고 있다.


여름이면 용전숲을 찾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용전숲을 기억하고 찾는 사람들, 보전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며칠 전에도 인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숲을 찾아 왔습니다. 어린이들은 작은 두 팔을 벌려 나무를 끌어안았지요. 저는 흐뭇한 웃음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동생 노거수들이 이사간 뒤에도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시끄러운 전철 옆에 있는 숲을 옛날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아줄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적지 않은 저도 제대로 적응해 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