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호 경북대 교수가 가야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해박물관 16기 가야학아카데미
이영호 경북대 사학과 교수 강의



국립김해박물관은 지난 1일 박물관 대강당에서 '신라인의 통일의식과 가야계 인물들'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제16기 가야학 아카데미'의 여덟 번째 순서로 마련됐다. 강의는 경북대학교 사학과 이영호 교수가 맡았다.

이 교수는 강연을 통해 7세기 신라사의 전개, 신라의 일통삼한(一統三韓) 의식, 신라 속의 가야계 인물들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가 됐다. 삼국이 통일하는 데 가야계 인물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도 금관가야(김해) 출신"이라며 운을 뗐다. 

이 교수는 먼저 삼국통일의 시대적 배경이 된 7세기 신라와 주변국의 관계부터 짚어 나갔다. 그는 "삼국 간의 항쟁은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전 성격을 띤다. 중국에는 581년 수나라가 성립되고 618년 다시 수를 멸한 당이 세워졌다. 수·당에 맞서 가장 완강하게 대립한 나라는 고구려였다. 살수대첩, 안시성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며 수·당 제국을 물리쳤다"고 밝혔다.

신라가 백제, 고구려와 통일전쟁을 시작한 기점은 642년으로 잡았다. 이 교수는 "그 해 신라는 백제의 공격으로 낙동강 서쪽지역의 성 40여 개를 잃고 백제 전선의 전진기지인 대야성(현재의 합천)도 함락당한다. 신라는 백제 정벌을 위해 642년 고구려, 647년 왜에 군사협력을 요청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648년 당나라와 손을 잡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과정에서 신라와 당은 평양 이남지역은 신라가, 위쪽은 당이 차지하기로 밀약을 맺었다.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뒤 당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신라는 당과 새로운 전투를 벌여 676년 한반도를 통일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당시 신라인들이 보여줬던 통일의식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신라가 고구려, 백제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삼국의 통합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 옛 백제인도 신라의 관료로 임용했고, 신라군이 고구려 부흥군과 함께 당을 공격했으며, 신라의 군사조직인 9서당에 고구려인과 백제인 등이 포함됐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는 그러나 "698년 성립된 발해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표방했던 것과 신라 말기 후고구려, 후백제가 등장했던 것은 일통삼한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진정한 통일로 보는 시각의 근거가 된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끝으로 신라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가야계 인물들을 소개했다. 그는 "신라에 가야금을 전한 우륵과 당나라 외교문서의 해독에 능했던 강수는 대가야 사람이었다. 특히 삼국통일전쟁에 크게 공헌한 김유신 일가는 금관가야 사람이다. 김유신은 상대등을 비롯한 주요 고위 관직을 지냈다. 사후에도 비석이 건립되는 등 왕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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