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의 <똑똑함의 숭배>는 능력주의가 외려 미국사회의 불평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역설한다. 능력주의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엘리트 계층에 부가 집중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2000년대 들어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가톨릭교회 아동 성추행 등 일련의 사건들은 엘리트주의의 병폐와 연결된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잘못에 책임마저 지지 않는다.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경영진은 성과급 파티를 벌였고, 가톨릭교회는 피해자인 신자보다 가해자인 사제들을 감쌌다.

능력주의는 인종, 성별, 출신 배경 등 차이를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능력을 기준으로 새로운 계급인 '재능 귀족'을 탄생시켰고, 이는 나아가 부패·범죄와 연결된다.

저자의 해법은 간명하다. 기회의 평등만큼 '결과의 평등'에도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빈부격차를 줄이는 정책, 사회보장 제도 강화 등은 진정한 능력주의의 밑바탕인 '매우 평등한 조건'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오직 능력(학력)에 따라 시험 성적으로만 입학생을 뽑는 뉴욕 맨해튼의 명문 헌터 중·고등학교. 2010년 이 학교 졸업생 허드슨의 연설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행복감과 안도감, 두려움, 슬픔보다 제가 느끼는 것은 죄책감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런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료로 우수한 교육을 받은 건 열한 살 때 치른 시험 성적, 오직 그 한 가지 때문입니다."

부산일보 제공 김해뉴스 책(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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