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국경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난 그림젤 패스 풍경.

 

콜로세움에 세워둔 오토바이 관심 끌어
군인·관광객 등 사진 찍으며 “신기해”
아무도 못 훔쳐가 안심하고 구경 즐겨

스위스 넘기 앞서 농촌서 만난 할머니
맛있는 음식 대접하며 “하루 자고 가라”

동양인 드문 그림젤 패스 모인 바이크족
유라시아 횡단 이야기에 일제히 큰 박수



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은 한국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좁은 해안도로 옆으로 난 절벽에는 많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달력에 나오는 풍경 사진만큼이나 아름답다. 아말피 해안을 지나 소렌토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폴리를 거쳐 폼페이로 향했다.

고대 로마 도시인 폼페이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폼페이 바로 옆에는 베수비오화산이 있다. 2000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하룻밤 새 4m의 화산재가 쌓였다고 한다. 폼페이는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묻혀 버렸고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사라진 고대도시를 발견하게 됐다.

발굴단은 유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냈다. 코를 막고 앉아 있는 사람,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놀란 강아지. 그날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재앙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왠지 마음이 숙연해졌다. 폼페이를 둘러보고 다시 바닷가 길을 따라 로마로 향했다.

로마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이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신기해했다. '얼마나 여행을 한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 '힘들진 않은 지'를 물었다. 로마 시민,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경찰 아저씨와 테러에 대비해 나와 있는 군인아저씨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 최정환·최지훈 부자가 이탈리아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 세워진 '피사의 사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덕분에 좋은 일도 있었다. 대개 유명 관광지에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힘들다. 그런데 경찰 아저씨들이 주차금지구역이라도 잠시 바이크를 세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경찰이 우리 바이크를 지키고 있으니 좀도둑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라도 안심이 됐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바이크를 둘러싼 채 사진을 계속 찍어대니 도둑이 근처에 오려고 해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에도 들렀다. 아빠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유명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로마를 둘러보고 다시 피사로 향했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는 '피사의 사탑'이 세워져 있었다. 기울어진 것도 신기했지만 그 모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탈리아를 지나고 스위스로 출발했다. 일단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음식재료를 사기 위해 근처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들렀다. 장을 보고 나오는데 한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조금 걸어서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집 입구에 숫자 '1780'이 적혀있었다.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할머니는 "이 집을 지은 해"라고 답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200년을 훨씬 넘긴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 최지훈 군이 로마 콜로세움 앞에서 바이크에 앉아 있다(왼쪽). 최지훈 군이 이탈리아 시골마을에서 만난 한 노부부와 환하게 웃고 있다.


할머니는 이 집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집안 구경을 시켜 주었다. 벽난로가 있어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집 뒤로 난 계단에 오르니 집 옆에 있는 아주 오래된 성당과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의 아들은 미국에 산다고 했다. 할머니는 맛있는 차와 음식을 내어 주었다. 감사했다.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는데 아빠는 어르신들이 불편하실 것 같다며 그냥 스위스로 가자고 했다.

유럽연합에 가입된 국가들은 따로 국경이 없었다. 큰 트럭들만 세관 검사를 받느라 조금씩 줄지어 서 있었고, 일반 자동차와 바이크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스위스 국경을 넘자 그림 같은 산악지대가 펼쳐졌다. 산악지대지만 도로가 잘 정비돼 있었다. 신기했던 건 모든 도로 옆에 철도가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2위인 나라답게 교통시설이 정말 잘 돼 있었다. 어느 도시든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도록 철도가 거미줄처럼 연결이 돼 있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그림젤 패스에 도착했다. '패스'는 알프스 산맥의 고개를 넘어가는 곳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그림젤, 수스텐, 푸르카, 스텔비오 패스가 있다. 아빠처럼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 한 번 쯤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올라가는 재미가 있어서다.

 

▲ 이탈리아 소렌토~ 스위스 국경 지도.

 
그림젤 패스에 닿았을 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쌓일 정도는 아니어서 운행을 하는 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광장히 추웠다. 고개 정상에 있는 산장에 들어서니 이미 바이크를 타는 많은 아저씨들이 추위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여기는 동양인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주위사람들이 우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는 가까이 몰려들었다. 몽골, 파미르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함께 박수를 크게 쳐 주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들은 나를 "럭키보이"라고 했다. 그림젤 패스 산장에서 몸을 녹이고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이제 스위스를 자세히 둘러볼 시간이다. 김해뉴스 최정환 최지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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