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새를 키우는 쌀’의 마케팅 담당자 시오미 마시히로씨가 쌀을 들고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다.

 

자연방사 참여한 일본 왕자비 임신하자
전국 각지에서 연 30만 명 방문객 찾아

‘황새를 키우는 쌀’ 마케팅 효과 높여
친환경 농사 짓는 농가 지속적 늘어나

학교 인공둥지 설치 살아있는 생태교육
이미지 개선 노린 대기업 공장 이주해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새는 '복을 가져다주는 새', '아이를 데려다주는 새'라는 이야기가 구전, 신화, 동화 속으로 많이 내려져 왔다.

일본 도요오카에서도 기쁜 소식이 있었다. 2005년 도요오카시가 처음 실시한 황새 자연 방사 행사에 당시 히로히토 왕의 둘째 아들 아키시노 왕자 부부가 참여했다. 행사 직후 기코 왕자비가 임신을 했다. 이듬해인 2006년 일본 왕실과 일본 국민들이 41년간 기다리던 왕위 계승권자인 아들을 출산했다.

이후 일본인들은 황새에 관심을 더욱 많이 갖게 됐고, 아이를 가지길 원하는 젊은 부부들의 도요오카 방문도 이어졌다고 한다. 황새 시민 지킴이인 미야무라 요시오 씨가 관리하는 비오톱 바로 옆, 황새를 신성시하는 쿠쿠히신사에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 소원 카드가 가득하다.
 

▲ 아기를 가지길 원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이 찾는 쿠쿠히 신사.


자연 방사를 시작으로 일본인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준 황새가 도요오카에 선물한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다. 도요오카는 황새를 관광 자원으로는 물론 농업, 산업, 교육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황새고향공원'의 연간 방문객은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김해 화포천을 방문한 도요오카시 관계자들은 화포천 인근의 풍경과 도요오카가 많이 닮았다고 했다. 도로, 마을, 논이 어우러진 풍경 때문이다. 김해보다 고층건물이나 도시화 지역이 적지만, 실제 도요오카는 김해의 비도시화 지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옆으로는 벼가 누렇게 여물어 고개를 숙인 낯익은 논 풍경이 펼쳐진다.

대개 관행 농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만 황새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도요오카에서 처음 친환경 농법을 시작한 사람은 나리타 이치오(60) 씨다.

2005년 황새 자연 방사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후, 정부·현·시는 2002년 농민들에게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보라고 권유했다. 친환경 농법의 권위자를 2년간 도요오카에 초청해 함께 연구를 하기도 했다. 주로 쌀겨를 사용해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했다. 관행 농업보다 논 수위를 2~3㎝ 정도 낮춰 쌀겨가 쓸려가지 않도록 했다. 황새 먹이 터를 보존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6월에 하던 중간 물 빼기 시기를 한 달 정도 늦췄다.

처음에는 2명으로 시작했던 친환경 농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황새를 위한 길이기도 했지만, 농민들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나리타 씨는 "처음에는 친환경 농법 경험이 없어 너무 힘들었다. 친환경으로 지은 쌀 가격이 비싸지만 그만큼 기술도 많이 들어간다.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수입에 큰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행정기관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친환경 농법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 매장 곳곳에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는 ‘황새를 키우는 쌀’.

나리타 씨처럼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가는 지난해 318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의 농협인 JA에 따르면, 지난해 도요오카에서 무농약 농사로 생산한 벼는 400t, 저농약은 950t이었다.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쌀이 가격도 높다. 관행 농업으로 생산한 30㎏짜리 쌀 한 포대는 1만 370엔이지만 저농약 쌀은 1만 4160엔, 무농약 쌀은 1만 6460엔이다.

친환경 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지만, JA는 여기에 '황새를 키우는 쌀'이라는 이름을 붙여 마케팅 효과를 높이고 있다. JA에는 다른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매장이나 박람회를 통해서도 홍보를 하지만, 천연기념물 보호에 관심이 많은 환경단체 회원들에게 적극 홍보해서 소비량을 늘리고 있다.

황새를 키우는 쌀의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은 의외로 도요오카가 있는 효고 현이 아니라 오키나와이다. 도요오카 시 무네하루 시장의 황새 복원 특강을 듣고 감명을 받은 오키나와의 한 대형매장 대표가 '황새를 키우는 쌀'을 대량 구매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 도요오카 친환경 쌀로 빚은 술.

2010년부터는 도요오카 학교 급식에 사용하는 쌀의 양을 늘려 지금은 매년 250t 가량을 도요오카 전체 학교 급식에 공급하고 있다.

쌀은 학생들의 생태 교육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도요오카 시는 황새와 생태계를 소개한 교육용 책을 만들어 각 학교에 배부하고 있다. 책에는 황새 방사의 노력, 황새를 키우는 쌀 내용도 담겨 있다. 책에는 황새의 번호와 가락지 색이 나와 있어 학생들이 황새의 가락지만 봐도 황새의 이름과 나이, 방생 시기 등을 알 수 있게 돼 있다.

학교 운동장에 인공둥지가 설치돼 있는 미에초등학교는 학교에서 황새를 지켜보며 살아있는 생태계 교육을 펼치고 있다. 교장실에는 황새 인공둥지탑에 초점을 맞춰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학생들은 황새를 지켜보며 관찰 일지도 작성한다. 최근에는 자연 방사 후 100번 째 황새가 미에초 둥지탑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전교생과 교사들이 기대를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미에초에서 태어난 황새는 99번째였다.

미에초는 황새 관찰 외에 체계적인 생태 교육을 펼치고 있다. 학년별로 황새를 비롯한 생태계 수업을 진행한다. 3학년에게는 황새의 크기와 생활 습관, 먹이 등 황새 관련 내용을 가르치고,  5학년에게는 인간과 황새의 관계, 경제적·사회적인 문제 등을 지도한다. 6학년에게는 황새 관련 문화, 마루야마강 하류에 지정된 람사르 습지 등 국제 환경 협약을 두루 교육하고 있다.

미에초의 나카무라 세이지 교장은 "학교에서 황새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황새가 계기가 되어 생태계 전체와 자연을 교육하고 있다. 황새는 아이들이 자연을 잘 이해하고, 자연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도요오카는 일본에서 멸종된 황새를 다시 살려낸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이 덕분에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도요오카를 찾는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곳은 일본의 대기업 가네카 그룹의 태양광 사업체인 가네카 솔라텍이다. 가네카 솔라텍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 태양광 패널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총 9만 5000㎡ 공장 부지에서 120㎿ 생산 능력을 가진 태양광 패널을 생산하고 있다.

가네카 솔라텍이 1998년 도요오카에 입주한 이유는 도요오카의 친환경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도요오카 시의 허가를 받고 공장 건물, 홍보 자료 등에 황새 캐릭터를 사용하고 있다. 직원 90% 이상을 도요오카 시민으로 채용해 지방세는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큰 공여를 하고 있다.

▲ 황새의 친환경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는 ‘가네카 솔라텍’ 공장.

가네카 솔라텍의 시미즈 료시 대표는 "가네카 그룹은 대기업이다. 여러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친환경적이라는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태양광 패널을 생산하는 솔라텍을 설립하면서 황새가 있는 도요오카라면 친환경적인 이미지에 부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무네하루 시장은 "황새만 사는 도시가 아니라, 황새도 사는 도시, 공생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황새에 집착하는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황새 도시라는 것에 시민들 역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과거 도요오카가 황새를 살렸다면, 이제는 황새가 도요오카를 살리고 있다. 황새를 통해 얻은 도요오카의 발전은 황새가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해뉴스 /도요오카(일본)=조나리 기자 nari@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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