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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벌 까까머리 '경찰의 별'로 뜨다경무관 승진 김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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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0.12.20 18:04
  • 호수 3
  • 21면
  • 이광우 기자(leekw@gimhaenews.co.kr)

   
 
지난 한주 동안 부산과 경남 경찰 사회의 최대 관심사는 이 지역에서 과연 6년 만에 '경찰의 별'이라 불리는 경무관 승진자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었다. 경찰대 1기생인 김해 중부경찰서 서장도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터라서 김해지역 경찰들은 특히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결과는 부산지방경찰청 김철준 정보과장의 경무관 승진겸 부산경찰청 차장 발령이었다.

김 차장은 경찰대 3기생인데, 동광초등과 김해중·고를 나온 김해 토박이이다. 고백하건대, 김 차장은 기자의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대학 재학 중 김 차장이 외박을 나왔을 때, 새벽까지 술을 마신 둘은 기자가 다니던 대학의 담을 넘어가 잔디밭에서 잠을 잤고, 경비 아저씨한테 들켜서 쪽문으로 쫓겨난 적도 있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인터뷰를 강행했다.
 
- 소감은.
 

▶ 경무관이란 직급은 인물보다는 전국적인 관점에서 해당 지역의 정서를 고려해 배정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직장내 동료 여러분 그리고 시민들께 감사드린다.

이번에는 제가 부산경찰청 11층(정보과장실)에서 7층(차장실)으로 옮기다 보니, '전국 최단거리 인사'도 화제가 됐다. 승진하면 다른 곳에 1~2년 갔다 오는게 관례인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승진과 동시에 부산청 차장으로 바로 근무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정실 인사 및 평가 등에 대한 우려와 토착비리화 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타 시도에 발령을 내 온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찰 지휘부는 우리 사회가 투명해 졌고, 그래서 그간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같다. 그런만큼 처신을 더욱 공정하게 하고, 매사 눈위를 걷는 자세로 신중하게 행동하겠다.

- 김해에 얽힌 추억은.

▶ 김해는 제가 가진 추억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발가벗고 동상동 집앞 도랑에서 멱감고 가재잡던 기억, 동광초등학교 바로 옆이 집이었는데 정문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등교할 때는 거의 매번 끙끙거리며 담을 넘던 기억, 친구들과 어울려 앵두 서리라든지 악동짓을 한 기억 등등.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동신버스를 처음 타 보았는데 버스 안에서 당시 공병학교 군인이 쓰고 있던 철모(일명 딸바가지)가 하도 신기해 그 군인이 내리는 곳까지 따라갔다가 공병학교에 내리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올 길이 막막해 울고불고 했던 일이다.
 
- 경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 처음에는 경찰이 뭔지도 모르고 근무했던 것같다.

힘들었던 시기는 지난 96년 부산 남부경찰서 경비과장을 할 때다. 당시 경성대에서 '5.3 동의대 사태 7주년 학생 결의대회'를 개최했는데, 행사 종료후 우리 경찰중대가 남부경찰서 경비를 서기 위해 경성대 앞을 지날 때였다. 신호가 와서 멈춰 섰는데, 갑자기 학생들이 정문에서 뛰쳐나와 화염병을 버스에 던졌다. 전경 10여 명이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병원에 가보니 얼굴이 흐느적 거리며 중심을 못잡고 흔들거렸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책감에 경찰을 그만 두려 했는데 주위 분들이 배려하고 도와 줘서 견뎌냈다. 가장 커다란 고비였던 것같다. 그때 모시던 서장님이 경무관 승진을 한번 해 보려고 정말 각고의 노력을 다 했는데, 그 문제로 인해 경무관 승진을 포기하는 것 같아 인간적으로도 정말 미안했다.

지난 2005년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부산경찰청 정보과장으로서 반대 단체회원들의 집회를 막후조정한 것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그때는 전 세계에서 NGO단체들이 몰려왔다. NGO 대표와 저 둘이서 부산역 앞 광장호텔에서 만나 집회를 수영강 앞에서 개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약 2만명이 집회를 했는데, 시위대가 수영강을 넘어가려 했고, 경찰은 컨테이너를 설치해서 다리를 봉쇄했다. 시위대가 밧줄을 걸어 컨테이너를 끌어 당겼고, 상단의 컨테이너가 떨어지면서 전경 6명이 함께 추락했다. 해운대 아르피나 종합 상황실 모니터를 통해 그 장명을 지켜보던 경찰수뇌부는 아연실색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전경들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순간, 경성대 앞에서 화염병을 맞아 흐늘거리던 당시 대원들 생각이 났고, 이제는 정말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결과적으로는 대회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나중에는 개인적으로도 자부심을 느꼈다.
 
- 앞으로의 포부는.
 
▶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진실된 인생을 살고 싶다. 기독교인으로서, 아직 직장에서는 술도 마시고 목사님이 요구하는 성결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한시바삐 세속적인 생활을 끊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10만 경찰은 항공모함과 같아서 정말 움직임이 느린 조직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방향과 흐름이 바뀌면 돛단배들과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게 다른 영향력을 끼치는 조직이기도 하다. 경찰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장과 지휘관간에 한 마음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 본다. 여태까지는 경무관 이상 지휘관들이 지역실정에 비교적 어두운 상태에서 지휘를 해 왔다. 따라서 지역 경찰들과 괴리가 있었다. 따라서 좋은 뜻을 갖고 업무를 추진해도 일선 경찰서, 지구대의 직원들은 항상 곡해하고 비아냥 거리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저는 지역 실정을 잘 알기 때문에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앞날의 지위변화라든지 영달보다는 조직의 막힌 동맥을 잘 흐르게 해서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김철준 차장은 ─────
1965년 김해에서 태어났다. 동광초등과 김해중·고를 졸업한 뒤 경찰대에 3기생으로 입학했다. 1999년 부산찰청 정보3계장을 시작으로 정보 파트에 몸을 담기 시작, 2000년에는 부산진경찰서 정보과장, 2001∼2004년에는 부산경찰청 정보2계장 등을 역임하는 등 '정보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4년에 총경으로 승진한 뒤에도 3차례 부산경찰청 정보과장을 지냈다. 유례가 잘 없는 일이다. 경남 고성경찰서장, 부산 해운대경찰서장, 부산 금정경찰서장 등을 지내기도 했으며, 올해 6년 만에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현재 부산경찰청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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