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도를 읽다> 이후 두 번째 책
노동자·김해·삶 이야기 담아내

 

▲ 김용권 시인이 환하게 웃으며 최근 출간한 시집 <무척>을 소개하고 있다.

'사향고양이는 커피나무 밭에서 늙고 병들어 버렸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일꾼이 바뀌었다/ 관광 상품으로 다람쥐 커피가 인기를 누리자/ 다람쥐는 배터지게 쳇바퀴를 돌려야 했다/ 일용으로 끌려 다니는 키 큰 나무를 숭배하는 영혼/ 먹고 싸고, 싸고 먹고/ 이빨이 물러질 때까지 답습해야 하는 일/ 나는 코피 루왁을 만들었다'(김용권의 시 '코피 루왁' 중에서).

김용권(55) 시인이 이달 초 시집 <무척>을 출간했다. 지난 2012년 첫 시집 <수지도를 읽다> 이후 두 번째다. 그는 2009년 시 전문잡지인 <서정과 현실>에 작품 '문현동 나팔꽃', '고사목' 등을 게재하며 등단했다. 이번 시집에는 '무척', '코피 루왁', '풍치'를 포함해 총 64편의 시가 실렸다.

김 시인의 시는 처음 노동문학에서 출발했다. 2004년 마산창원노동연합회가 주관하는 '들불문학제'에서 노동자의 삶을 다룬 시를 써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창원의 동서식품에서 30년간 근무했다. 당시에는 스스로 부정하는 부분이 있었다. 노동자라고는 하지만 실제 바닥의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듯 어려운 상황을 부정했다. 그러나 결국은 노동자였다. 지금은 인정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시집 <무척>에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은 주제에 따라 1~3부로 나뉜다. 각 부의 주제가 해당 부를 대표하는 시의 제목과 일치한다.

1부를 대표하는 시는 '비는 칼국수 집으로 내린다'이다. 비가 오면 갈 곳이 없어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워 칼국수 가게를 찾은 일용직 노동자들과 이들을 위해 밀가루를 반죽하고 썰어내는 또 다른 노동자의 모습이 대비된다.

2부 '파울플라이를 치다'는 시인이 야구경기를 관람하다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그는 "타자가 공을 뒤로 치면 관중은 '앞으로, 앞으로'를 외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다들 출발선상에서 앞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살다 보면 좌절하거나 멈추게 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간이 때론 홈런을 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좌절한 사람들을 위한 시"라고 설명했다.

3부 '나무가 걸어가는 방식'도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다. 시인은 "진영 비음산 우곡사에 가면 500년 된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다. 벼락을 맞아 속이 없고 껍질만 남아 있지만 해마다 꽃을 피운다. 사계절 산을 오르내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게 사람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도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시집 <무척>에는 '연화사 미륵불', '한림정역', '김해천문대' 등 김해를 다룬 시들이 많이 실렸다.

김 시인은 "동상동 전통시장 안에 있는 연화사에는 목이 없는 미륵불이 있다. 이처럼 지역의 문화재에도 아픈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서정'이라는 건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안의 아픔, 절실함을 들여다보고 끄집어내고자 한다. 다음에는 지역에 산재한 문화재들을 소개하는 시를 써 시집을 내고 싶다. 현재 작업 중"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한편 경남 창녕 남지에서 태어난 시인은 20년 전 김해로 왔다. 부산 동아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김해문인협회에 소속돼 있다. 또 '시산맥 영남시', '석필문학회'에서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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