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문인 강남주 작가 첫 소설
‘세계유산’ 기록에 그림 3점 남긴
부산 동래 출신 무명 화가 다뤄



술재 변박. 지난달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기록물에 '묵매도', '송하호도', '왜관도' 등 그림을 무려 3점이나 올린 조선 후기 화가다. 그는 궁정 도화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술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이다.

생몰년 미상인 18세기 부산 동래의 화가 변박이 21세기 한국을 찾았다.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일공동등재 한국추진위원회'의 강남주 학술위원장이 소설가로서 펴낸 첫 장편소설 <유마도>를 통해서다.

소설은 동래부사 조엄이 채 스무 살도 안 된 변박을 불러 시화를 선보이게 해서 재능을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엄은 조선통신사 정사를 맡자 공식 화원으로 선발되지 못한 변박을 조선통신사 사행선의 기선장으로 발탁한다. 책은 변박을 중심으로 1763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300여 일에 이르는 조선통신사 여정을 촘촘하게 펼쳐낸다.

강 위원장이 변박에 주목한 것은 지난 2010년 무렵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변박의 자료를 살펴보던 중 변박이 남긴 그림 중 '유하마도'가 일본의 절 호넨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사실은 <조선통신사행록> 등 공식기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호넨지는 조선통신사 행렬이 일본을 오갔던 200년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절이었다.

강 위원장은 그림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를 찾기 위해 2013년 직접 절을 찾았다. 호넨지 주지를 겨우 설득해 실물을 본 강 작가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림을 담은 뚜껑에 '유마도'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변박이 남긴 그림의 정확한 정보를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던 중 문학이 학문을 바로잡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소설을 쓰게 됐다. 공식 기록에 없던 그림이 어떻게 일본에 넘어가게 됐는지 궁금증에서 시작해 4년간 자료 조사와 집필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등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강 위원장은 1974년 등단한 이래 시, 수필, 문학평론을 오간 원로 문인이다.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2013년 계간지 <문예연구>의 신인소설상에 당선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수십 년간 문학 활동을 해 왔지만, 소설가로서 정식 등단을 거치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새로 하겠다는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밝혔다.

강 위원장의 의지는 소설 곳곳에 투영돼 있다. 철저한 고증은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실감 나게 재현해냈다. 변박의 예술혼은 물론 조선과 일본 양국의 역사, 문화교류 현장은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안긴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역사를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 최천종 피살사건 등을 꼼꼼하게 짚으면서도 일본인이 왜관으로 와 조선통신사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 등에는 허구를 가미했다"고 말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맞춰 발간된 책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부산 지역의 화가 변박을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변박이 남긴 그림 '유마도'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

강 위원장이 책 말미에 밝힌 작가의 말은 긴박한 세계정세 속에서 후세대들이 숙지해야 할 조언이 되고도 남는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엄중한 사실입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오간 200년 이상 조선과 일본에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선조들은 결코 방심하지 않고 평화의 터전을 다듬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나침반은 아닐까요." 

부산일보 제공 김해뉴스 책(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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