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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역사’ 2000년 그늘에 가려진 가야불교 실체 이제 깨어날 시점가야불교 뿌리를 찾아서 (24) 전문가 좌담회
  • 수정 2017.11.15 10:51
  • 게재 2017.11.15 09:54
  • 호수 347
  • 11면
  • 심재훈 기자(cyclo@gimhaenews.co.kr)

<김해뉴스>는 지난 1월부터 연재한 '가야불교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 종료를 앞두고 '가야불교문화진흥원'과 함께 '가야불교의 현재적 의미, 그리고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은하사 설법전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는 여여정사 도명스님의 사회로 진행됐다. 은하사 주지 혜진스님, 가야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 인해스님(바라밀선원), 강산문화재연구원 김용탁 원장, 가야불교문화연구회 박광수 회장, 김해도자연구소 배상법 소장이 참석했다.

 

▲ 은하사 설법전에서 '가야불교의 현재적 의미와 재조명'을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은하사 주지 혜진스님(가운데), 가야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 인해스님(오른쪽에서 세 번째), 여여정사 도명스님(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토론을 하고 있다.



■ 도명스님(여여정사)
“향토사학자 발견 편린 엮으면 연결고리”

■ 인해스님(바라밀선원)
“가야불교 접근은 가야사 알아가는 과정”

■ 혜진스님(은하사)
“승려 개념 없을 때 ‘선암’, 나중에 ‘불암’”


 

△혜진스님(이하 혜진)=가야불교의 고찰인 은하사에서 가야불교 좌담회를 진행하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

△도명스님(이하 도명)=가야불교와 관련해 지역 불교계 인사와 향토사학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첫 좌담회다. 주제가 무거울 수도 있지만 편하게 이야기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 사업을 강조하면서 가야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가야사와 뗄 수 없는 가야불교에는 관심이 아직 덜한 상황이다. 가야사와 가야불교의 공동분모, 관계를 이야기해 보자.

△인해스님(이하 인해)=역사와 문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가야불교에는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허황옥(허왕후)이 48년 오빠 장유화상과 함께 가야로 건너 와 왕후가 됐다. 가야불교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은 가야사의 한 부분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일부에서 종교적 접근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만, 가야불교를 전통문화 복원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의미가 있다.

△김용탁 원장(이하 김용탁)=가야가 남겨놓은 문헌이 없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관계사 쪽에서 가야 내용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나라 때 중국 자료로는 <삼국지> '위서동의전'이 있다. 금관가야 위주로 기술됐고, 내용이 적어 연구에 한계가 있다. 가야불교가 가야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느냐를 볼 때 부정확한 측면이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로는 가야사를 통해 가야불교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

 

김용탁 강산문화재연구원 원장
“보다 적극적인 유적 발굴 노력 필요”

■ 박광수 가야불교문화연구회 회장
“동남아에 관심 갖고 소통 시도해야”

■ 배상법 김해도자연구소 소장
“비교언어학 이용하고 설화 재분석을



△배상법 소장(이하 배상법)=전설 차원의 역사에 새롭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증학적인 부분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비교언어학을 이용하고, 설화·민화를 재분석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추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파편화된 자료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이를 좀 더 발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도명=가야사와 가야불교의 자료가 부족하다. 향토사학자들이 발견한 편린들이 가야사를 엮어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가야를 수로왕이 세우긴 했지만 불교 관련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가야의 정체성은 허황옥이 오면서 시작했다. 불교라는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인해=종교의 전파 과정을 보면 먼저 민간에 전해져 초전된다. 이후 문화·민속적 수용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에 맞게 변용된다. 국가 공인까지 길게는 200~300년, 짧게는 100년이 걸린다고 본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만 보더라도 가야불교 전래 사료가 신라 법흥왕 시기보다 앞선다. <삼국유사>에는 질지왕 때 왕후사 이야기가 나온다. 왕후사 창건과 가락국기의 초전 시기는 400년 정도 차이난다. 가락국기 내용을 기준으로 유추해 보면, 당시는 무불상 시대였기 때문에 불상이나 탑이 존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가락국기에 나오는 16나한 이야기가 실제 존재할 수 있었다. 역사학계에서 가락국기의 불교 초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내재된 역사성과 사상성을 부인하긴 힘들다.

△혜진=지명 중에서 선암, 불암만 봐도 선암이 후에 불암으로 바뀌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승려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선인이 왔다 해서 선암으로 불리게 됐다. 선돌 바위 전설이 남아 있는 동네도 있다. 이후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암이 됐다.

△김용탁=가야는 해양세력, 해양문화를 가진 나라였다. 위서동의전을 보면 서해안, 남해안 경로를 따라 온 마지막 종착지가 구야국이다. 동남해안을 중심으로 유적이 발견된다. 경주 중심의 신라세력이 확장하기 전에 가야 지역에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다. 한(漢) 나라의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했다. 기록상 3세기 중·후반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은 불교가 융성한 시기였다. 김해에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왔을 개연성이 있다. 김해는 종착역이자 대마도와 일본으로 가는 해양 경로를 개척하는 시작점이다. 이런 경로를 통해 불교가 들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박광수 회장(이하 박광수)=불교가 성행한 스리랑카, 미얀마 등에서 형성됐던 참파 문화, 푸남 문화에서 발견되는 제철문화에서 가야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가야의 철전은 중국의 주조방식이 아니라 선철을 두드려서 하는 제철방식이다. 중국의 유리는 바륨, 납이 들어있는 반면 가야의 초기 유물 중에서는 알칼리, 소다가 들어있는 구슬이 발견된다. 이를 보면 해양을 통해 유리가 전래됐을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해양을 통한 남방불교의 전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명=가야불교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떤 활동을 했나.

△박광수=조은금강병원 허명철 이사장은 이미 1980년대에 <가야불교에 대한 고찰>을 썼다. 가야불교연구회에서 지금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배상법=김해포교당 학생회, 선진규 법사 등이 가야불교의 복원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줬다. 1981년 가야문화연구회가 생겼다. 저의 부친(배석현 처사), 초대회장 허명철 이사장, 김종간 전 김해시장도 활동했다. 이종기 박사는 저희 집에서 머물렀다.

△박광수=허명철 이사장이 6차례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해가 '군'이었던 시절 민간이 나서 가야사 복원 노력을 시작했다. 신경철 부산대 명예교수가 양동리고분군을 발굴할 때 허명철 이사장이 사재를 털어 지원하기도 했다. 그때 가야사의 다양한 자료를 발굴하고 축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종간 전임시장은 <가야>라는 월간지를 2년 동안 발간했다.

△배상법=대성큰스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화사에 머물다 은하사로 갔는데 평생 가야불교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 급속한 산업화와 개발 속에서 가야와 가야불교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가야불교를 재조명하기 위한 TV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해=3년 전부터 도 스님과 인연이 돼 가야불교 발굴 노력을 시작했다. 처음 학술모임으로 시작했다. 2015년부터 '법등회'로 이름을 바꾸고 구성원도 늘였다. 최근 '가야불교문화진흥원'을 설립했다. 참여하는 스님들은 사심을 버리고 공심으로 활동한다. 가야대와 여여정사 등에서 정기적인 학술세미나를 주최해 왔다. 지난해 가야불교 3000배 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는 제1회 가야불교문화축제를 주최하고, 10월 허왕후 신행길 기념행사에서 가야불교 관광 콘텐츠 세미나도 열었다.

△도명=일부는 가야불교의 실체를 두고 '김해김씨 등의 종친과 불교계가 후대에 만든 역사'라고 비판한다. 가야가 사라진 후 가야불교 역사도 훼손되고 사라졌다. 가야불교의 실체를 폭넓게 규명하고 복원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김용탁=근거가 희박하다고, 증명이 될 수 없다고 해서 역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문헌사료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니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활용해야 한다. 신라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30년 기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가야사 복원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보다 적극적인 유적 발굴 노력이 필요하다.

△박광수=인도에도 외세가 들어오기 전에는 역사서가 없었다. 전부 신화였다. <라마야나라>는 힌두 서사시가 있다.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가 아니다. 가야불교의 신화적인 요소를 좀 더 폭넓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좌담회에서 나온 뼈대에 살을 어떻게 붙여가는가가 중요하다. 스리랑카, 네팔 등 동남아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도 다문화적인 성격을 가진 가야불교를 재조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인해=가야사와 가야불교를 재조명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민간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간도 가야관련 발굴, 문헌 재탐구, 문화컨텐츠 개발 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술대회 등에 동참해서 발언하는 등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배상법=가야사와 가야불교의 발굴은 '구름 속에 코끼리' 같다. 지금은 조각이 나서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각 분야에서 관련 내용을 모으면 코끼리의 실상이 드러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도명=역사가 햇빛을 받으면 문헌으로 남고 달빛을 받으면 전설로 남는다. 가야가 망한 나라여서 2000년이라는 시간에 묻혀진 부분이 있지만 지금은 깨어날 시점이 된 것 같다.

김해뉴스 /정리=심재훈 기자 cyc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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