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갑니다. 김해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수로왕릉이죠. 어릴 적 추억도 많구요." 정수원(45·서울 송파구 마천1동)씨는 수로왕릉이 고향집만큼 그립고, 궁금하다. 김해 시민들에게도 수로왕릉은 자랑스러운 곳이지만, 출향민들에게는 향수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래서 명절이면 고향과 함께 수로왕릉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김해가 시가 되기 전, 옛 김해 읍내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수로왕릉은 놀이공간이며 학습공간이었다. 글짓기대회도, 그림그리기대회도, 소풍도 수로왕릉에서 했고 가끔은 청소도 하러 갔던 곳이다. 그래서 애정을 듬뿍 담아 '수로왕릉이 지긋지긋하다'는 농담을 할 때도 있다. 얼마나 친숙한 공간인지 말해주는 이야기다.

▲ 추석을 맞아 수로왕릉 제초작업을 하고 있다. 사적지를 돌보는 작업은 일년 내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정 씨는 가야 역사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배경장면으로 수로왕릉이 등장하면 왠지 모를 자부심이 든다고 한다. 왕의 무덤가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자랐고, 명절이면 차례를 지낸 뒤 할아버지를 모시고 대가족이 수로왕릉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곤 했다. 대학시절에는 외지의 친구들이, 일본 유학시절에는 일본 친구들이 김해에 놀러왔을 때 수로왕릉은 꼭 소개시켜주어야 하는 '필수 답방 코스'였다.
 
추석을 맞는 수로왕릉은 지난 달 31일 전 직원이 이른 아침 7시부터 벌초와 제초작업을 마쳤다. 8월 하순부터 시작된 작업으로 수로왕릉뿐만 아니라 구지봉, 허왕후릉, 봉황대유적지 등도 차례로 단장을 했다. 이런 작업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년 내내 계속 된다. 시민들은 들러서 구경하고 즐기는 공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김해의 문화유적을 돌보는 손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풀이 많이 자라는 여름에는 제초작업이, 낙엽이 끝도 없이 지는 늦가을에는 낙엽을 치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
 
수로왕릉을 비롯한 김해지역 사적지를 관리하는 사적지운영팀은 행정 계장과 주무관을 비롯해, 시설을 관리하는 무기계약직 3명, 경비를 보는 청원경찰 9명, 공익요원 4명, 주민편의시설을 담당하는 인원 4명, 상시 사역 인부 1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적지를 돌보기에는 부족한 인력이라 힘들 때가 많다. 연중무휴라 사적지를 찾는 관람객들은 좋지만, 시설물관리나 조경 관리 등의 업무를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내고 있는 이들 운영팀은 다 함께 쉬는 날이 없다. 그들이 있어, 시민들은 늘 아름다운 사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 수로왕릉의 연못(위)과 능소화가 활짝 핀 수로왕릉 담길.
"수로왕릉의 입구에서 앞쪽 공간만 보고 가는 분들이 있는데, 후원도 아름다우니 꼭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문화해설사 박복순(54) 씨의 말이다. 숭화문으로 들어와 홍살문을 지나 수로왕릉만 대충 훑어본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수로왕릉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다. "능을 정면에서만 보는 것과 뒤에서 보는 느낌이 또 다르거든요. 뒤에서도 한번 바라보세요"라고 말하는 박 씨는 수로왕릉 관람에서 놓치면 후회할 곳을 짚어주었다. 제례공간과 건물만 보고 가기에 왕릉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왕릉공원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능 뒤편의 숲길이 아름다우니 천천히 돌아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30분 남짓이면 눈 앞에 보이는 것 말고도 숨어있는 그림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고목이 된 왕버들과 상수리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눈길을 주어 보라고 한다. 얼핏 지나칠 수도 있으니 고인돌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수로왕의 탄생설화가 시작되는 여섯 개의 알 모양 조각을 보고 난 뒤에는 유물전시관도 꼭 들러보아야 한다.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초상화와 복식, 그리고 생고기를 올리는 제사차림은 보는 사람의 역사적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만약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문화해설사의 설명으로 그 호기심을 마음껏 충족시켜볼 수 있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 설화, 나무 이야기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사적지를 비롯해 가야 문화와 김해 문화를 설명하는 15명의 문화해설사들이 김해 전 지역을 돌며 활동 중이다.
 
단체 관광팀이 오면 몇 시간 동안 걷고 설명해야 하니 힘들기는 하지만, 어린 학생들이 설명을 열심히 듣고 모르는 것을 하나 더 알고 돌아갈 때 문화해설사들은 보람을 느낀다. 어린이집 아이들부터 초중고생들의 견학도 많고, 타지역에서 온 김해 김씨·김해 허씨 후손들, 일반단체까지 문화해설사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 대구 등 인근 도시에서 학생들을 인솔해 온 교사들이 학생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가야 역사와 관련된 질문을 해올 때는, 질문과 답변의 수준이 고차원이 되기도 한다. 수로왕릉뿐만 아니라, 가야역사 투어 안내도 함께 하는 문화해설사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도 가야의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박복순 해설사에게 개인적으로 수로왕릉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후원의 왕버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굽은 나무 그늘 밑에서 혼자 생각에 잠기며 긴장을 풀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에 왕버들 나무 그늘이 궁금해진다.
 
직원 이상근(52) 씨는 "수로왕릉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가을"이라고 말한다. 상수리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벽오동, 소나무 등의 수종이 있는 수로왕릉은 가을이 물들 무렵이 가장 근사한 시기라, 단풍과 낙엽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일러준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직원들은 "겨울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수로왕릉 전체가 눈에 덮이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대나무가 병풍처럼 둘러 선 건물의 기와지붕과 사철 푸른 소나무가 있는 설경을 자랑하느라 침이 마를 지경이다. 이야기를 있는 대로 다 풀어놓자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아름답다는 말이 되겠다.

한류드라마 '궁'의 원작만화가 수로왕릉에서 탄생한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김해여고 출신 박소희 씨 작품이죠
우리에게 친숙한 이 공간이 얼마나 유명한 곳인지 혹시 잊고 계셨던 건 아니겠죠

▲ 수로왕릉의 후원과 유물전시관을 천천히 돌아볼 것을 권하는 박복순 문화해설사(위)와 수로왕릉을 방문한 어린이들.
수로왕릉에는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수로왕릉을 단초로 만들어진 만화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있다. MBC 드라마 '궁'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원작만화 역시 일본, 베트남, 대만 판으로 출간되었다. 원작만화 '궁'을 그린 작가는 김해여고 출신의 박소희 씨. 박 씨는 김해여고 1학년 때 수로왕릉에서 만화 스토리를 착상했다.
 
"친구들과 수로왕릉이 있는 왕릉공원에 놀러갔다. 자물쇠로 닫혀 있는 누각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에 사람이 산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한참 일본의 왕세자가 결혼한다는 보도가 나올 때였는데, '우리도 왕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 만화 구상을 시작했다"라고 박 씨는 언론에서 말한 바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린 '궁'은 김해여고 같은 반 친구들이 최초의 독자였던 셈이다.
 
한류드라마 '궁'의 원작 만화의 탄생지인 수로왕릉이 김해에 있다는 사실이 어느새 잊혀져가고 있다. 국내 관광객 아니, 일본 관광객들을 비롯한 해외관광객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곧 추석이다. 조상에 예를 올리는 마음으로, 이 땅에서 가야를 세운 수로왕을 찾아볼 시민과 고향을 찾아오는 출향민들에게 수로왕릉의 소식을 전한다. 최근 김해문협에서 실시한 '찾아가는 백일장'에 참가한 김해합성초등학교 1학년 최서준 어린이의 글 중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김해에 수로왕릉이 있다. 2011년 현재에도 앞으로도 수로왕릉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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