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용준 장유누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여러분은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고 계시는지요? 저는 정신과 의사이고 타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도 집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이틀 앞둔 어느 날 한 남편은 회식 때문에 새벽까지 술을 마시게 됐습니다. 워낙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결혼 전 모임도 많았던 남편인지라 그는 아내와 술자리와 관련해 몇 가지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남편은 정해진 시간보다 더 늦게 되었고, 이전에 꼭두새벽에 어린 아기를 업은 채 주차장에서 잠든 남편을 찾아 다녔던 경험이 있었던 아내는 쓴소리를 했습니다. 평소에 조용히 얘기하고 평정심을 강조하던 남편은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욕설이 섞인 감탄사를 남발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부부 사이에 냉전이 시작됐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잘못을 인정하며 싹싹 빌어 마무리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남편은 저입니다. 저는 평소랑 다르게 왜 그랬을까요? 스스로를 돌아보며 분노의 본질을, 그리고 어떻게 다스릴지를 같이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원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지만 술만 마시면 '뚜껑이 열려' 감정에 복받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뚜껑'을 닫아두는, 즉 감정과 충동성을 제어하는 뇌가 전두엽입니다. 술을 마시면 전두엽 부위의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화를 내면 분노에 이르는 회로는 활성화돼 조그마한 반응에도 화를 내고 분노가 터집니다. 
 
그렇다고 분노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걸까요? 실은 분노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맹수로부터 혹은 적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종족을 지키기 위해 분노하고, 에너지를 내기 위해 신체를 준비시켜 왔을 것입니다. 신체 반응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니 이를 대하는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점이 분노 조절에 다가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이것이 당장 되지는 않습니다. 먼저 쉬운 길부터 가 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씁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그때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던 고민도 별 것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일기를 쓰듯 내 마음을 바깥에서 바라봅니다. 아, 화가 났었구나, 내가 자신만을 바라보길 기대했는데 회사일 때문에 뒷전인 것 같아 실망했구나, 허구한 날 늦는 남편 때문에 애먼 애들만 들들 볶고 있었구나. 
 
이제는 화가 나는 상대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내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저 사람 잘못인데 왜 내가?'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잘못을 모를 것이니 어찌 달라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할 수 없이 내가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안 내가 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 폭발할 것 같아 못 하시겠다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 자리를 피하고 숨을 돌리십시오. 가능하다면 배를 이용하는 복식호흡을 해 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긴장되고 급할 때 빨리 반응하는 흉식호흡은 맹수로부터 도망가거나 분노할 때는 어울리지만, 분노에서 벗어나려면 느긋함에 어울리는 복식호흡이 필요합니다. 술꾼 남편인 저는 다행히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복식호흡을 해서 평정심을 찾았습니다. 양육에 지친 아내보다는 남편이 힘이 더 있기에 먼저 두 손을 내밀어 싹싹 빌었습니다. 
 
물론 우울증이나 그 외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분노의 원인이 될 수 있음도 말씀드립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거나 혹은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십시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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