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어느 듯 지나가고 찬바람이 분다. 집에 와 보니 누런 늙은 호박이 큼지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호박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좋은 열매채소 이면서 잎채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박을 좋아한다. 호박으로 만드는 음식도 다양해서 애호박은 애호박대로, 늙은 호박은 늙은 호박대로 요리가 있다. 호박나물, 호박볶음, 호박전, 호박조림, 호박고지가 있다. 호박찜, 호박죽, 호박범벅, 호박떡, 호박엿도 하고 중탕하여 즙도 짜먹는다. 된장찌개에 호박 줄기를 넣고 끓이기도 한다. 쟁반만한 호박잎을 찌거나 삶아서 쌈으로 강된장과 함께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먹거리로서 이용되는 것이 호박이다. 하지만 늙은 호박에 대해 우리는 특별한 효능을 기대하고 있는데 바로 부기를 뺀다는 것이다. 주변에 산후에 부기를 빼기 위해서 호박즙을 해먹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몸이 부어서 살이 잘 찐다고 하시는 분들도 다이어트 목적으로 호박즙을 먹기도 한다. 요즘은 성형외과에서도 미용수술 이후 어혈과 부기 제거에 도움이 된다면서 호박즙을 주는 곳도 있다.
 

동의보감에 '호박은 성질이 평순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산후의 하복부 통증을 치료한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 기록한 호박은 보석의 한 종류인 호박(琥珀)을 말하는 것이지 식용하는 늙은 호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동의보감에서는 우리가 먹는 호박은 아예 찾을 수가 없다. 호박뿐만 아니라 고추, 양파, 감자, 고구마, 옥수수처럼 한국인에게 친숙한 음식들도 이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호박, 고추와 같은 채소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수입되어 대중화된 것들이라 동의보감을 만들 시점에서는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에야 우리나라에 재배된 것 같은 알로에는 '노회'라 하여 동의보감에 여러 처방의 약재로 쓰였다. 알로에가 호박, 고추, 고구마 보다 이 땅에 먼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늙은 호박의 정확한 효능은 무엇일까? 중국의 본초강목과 조선후기에 쓰진 방약합편에서 말하는 늙은 호박의 효능을 요약하면 이렇다.
 
'호박은 남과(南瓜)라 하여 달고, 따뜻하며 독이 없고 보중익기의 효능이 있다. 만약 많이 복용하면 다리가 붓거나 야위어 지는 각기(脚氣)와 황달이 발생하며 기의 흐름을 방해한다.'
 
필자의 임상관찰에서도 호박은 보중익기 즉, 소화기가 약한 사람의 흡수율을 도와서 마른 사람의 체중 증가에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평소 잘 먹는 사람에게는 식욕을 더욱 왕성하게 했다. 살이 찐 사람과 순환장애가 있는 체질이 호박즙을 장복했을 때 부종이 빠지기 보단 오히려 더 붓게 했고 소화불량까지 일으켰다. 한마디로 늙은 호박은 구황작물로서 속을 든든하게 도와주는 음식이지 부종을 치료하는 효능은 없었다. 
 
늦가을 제철음식인 늙은 호박은 영양학적으로 비타민 A의 전구물질인 카로틴이 풍부한 음식으로서 인체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훌륭한 음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호박은 부기 빼는 음식'이라는 잘못 알려진 상식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김해뉴스 /조병제 한의학·식품영양학 박사 부산 체담한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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