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종교 넘나들며
배신의 본질 다각도로 파고들어 



미국 국가안보국의 무차별적인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미 육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으며 내부고발의 신기원을 이룩한 이들은 한편에서 '배신자'로 평가받는다. 앞서 공익을 목적으로 내부 비리를 폭로한 고발자 중에는 대중의 지지를 받을지언정 조직 내에서 반역자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부고발은 조직과 일자리를 위태롭게 하고, 그동안 부정행위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나머지 동료들을 '소극적 가담자'로 내몰기 때문이다.

배신은 양면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다. 프랑스 정치가 샤를 드골은 알제리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알제리 독립을 선언했다. 지지자들 입장에선 배신 행위지만, 인류애의 관점에선 정의로운 결단이다.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배신>에서 복합적인 배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각도로 파고든다. 책은 '철학자가 왜 배신을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정신인 자유·평등·박애 중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박애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박애(혹은 형제애)가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며, 두터운 인간관계와 신뢰를 약화시키는 배신이 형제애를 해친다고 본다.

저자는 배신이 도덕이 아닌 윤리의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성에 근거해 모르는 사이의 얕은 관계를 규제하는 게 도덕이라면, 가족이나 친구처럼 두터운 신뢰가 밑바탕에 깔린 관계는 윤리와 연결된다. 배신에 대한 고찰을 통해 두터운 인간관계의 본질까지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족과 친구를 배신하는 개인적인 배신부터 정치적 배신인 반역, 적을 돕는 부역, 종교적·계급적 배신까지 전 분야를 두루 살핀다. 1605년 영국 의회의 화약음모사건에 가담한 가이 포크스,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로마군에 투항한 갈릴리 지휘관 요세푸스, 12사도 중 한 명인 유다, 그리스군이 속임수로 쓴 트로이 목마 등 역사와 정치·종교·문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배신 이야기를 다룬다.

책 후반부 '계급에 대한 배신'에서는 계급적 연대 문제도 들여다본다. 1970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 토리당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지만, 수백만 노동자들이 토리당에 표를 던지며 반전이 일어났다. 노동당의 자유이민 정책에 분노해 토리당을 찍은 영국의 노동자와 극우 정치인 마리 르펜을 지지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계급을 배신한 것일까. 저자도 당시엔 계급 배신이라 믿었지만 지금은 연대의 관점에서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노동자들은 이민자와 전혀 연대감이 없었고, 오히려 이민자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주지 않은 진보당에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도덕을 실천하는 힘인 '연대'의 가능성을 고민하며 정의보다 불의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한다. 먼저 중대한 불의에 저항하는 집단에서 시작해, 긍정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과 최근의 촛불혁명도 불의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듯, 저자의 생각은 한국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연대와 집단을 만드는 데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배신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완전무결의 투명한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저자의 대답은 'NO'다. 배신에 대한 공포, 위선에 대한 혐오는 투명한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 사생활을 보호하고, 국익을 앞세워 비밀 통치를 일삼는 오늘날 현실에선 이뤄지기 힘든 이야기다.

결국, 배신은 인류 문명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완전무결한 진실을 요구하는 투명성은 현대 문명과 어울리기 힘들다. 배신은 문명 생활에 필요한 '은폐의 대가'로서 우리가 치러야 하고,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비용이다. 

부산일보 제공 김해뉴스 책(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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