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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고 곡식 풍부했던 대청마을… 장유 ‘최고 중심지’로 발전김해의 뿌리 '자연마을'을 찾아서 (12) 장유2동 대청마을
  • 수정 2017.11.22 11:12
  • 게재 2017.11.22 11:05
  • 호수 348
  • 14면
  • 이경민 기자(min@gimhaenews.co.kr)
▲ 대청경로당 한 쪽 벽면에는 마을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맑은 물이 흘러 붙여진 이름 ‘대청’
은어, 꺽지, 뱀장어, 메기 등 살아

장유의 젖줄 대청천 덕에 곡식 풍부
면 지역 최초로 비닐하우스 재배 시작

1990년대 중반 신도시 개발 본격화
현재 대규모 아파트 단지, 상업지 즐비




"조선시대 때는 '경빈들'로 불렸다고 합니다. 갑오년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대부분 지역에서는 흉작으로 고생을 했지요. 옛날 대청천은 물길이 참 좋았습니다. 덕분에 이 물길을 이용하던 '경빈들'에만 풍작이 들었고, 장유 지역민들이 함께 그 곡식을 나눠 먹었답니다. 이후 '갑오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지금은 그 자리에 대단지 아파트인 '갑오마을'이 들어섰습니다."
 

▲ 대청경로당 인근에 세워진 대청마을 기념비.

장유 대청동(大靑洞)은 불모산 용지봉과 추월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이름도 '대청'이 됐다. 북쪽은 삼문동, 동쪽은 신문동, 남쪽은 관동동, 그리고 서쪽은 불모산과 접해 창원시와 경계를 이룬다.
 
대청동은 삼문동과 함께 장유2동에 속해 있다. 장유2동은 29개의 통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11개의 통이 대청동에 포함된다. 과거 대청동에는 자연마을인 상점마을과 계동마을, 대청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대청마을은 지금의 17통에 해당한다.
 
대청경로당에 들어서자 11대째 대청마을에 터를 닦고 살아온 김만용(79) 전 이장과 안창근(53) 이장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동네 할머니들도 이곳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로당은 2002년 8월 대청천을 사이에 두고 대청고 맞은편에 문을 열었다. 인근에는 대청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김 전 이장은 "대청천이 흐르는 곳에 경로당을 짓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 경로당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내가 사비를 들여 건물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03년 7월 시가 대청계곡 상점마을 아래쪽에 오수장을 설치했다. 장유의 젖줄인 대청천에 오수장을 만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과 뜻을 모아 반대했다. 소송을 하기도 했지만 패소했다. 결국 설치가 됐고 10년 이상 운용되고서야 없어졌다. 수질을 위해 처음부터 오수장이 아닌 관로를 설치했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청천은 팔판산, 불모산 용지봉에서 발원해 장유 중앙부로 흘러 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 대청천은 과거 지역민들에게 인기 있는 여름 휴양지였다.

 
김 전 이장은 "대청천은 물이 맑고 풍부했다. 주민들은 농수뿐만 아니라 김장, 목욕, 빨래를 할 때도 대청천을 이용했다. 옛날 가뭄이 심했던 갑오년에 대청천 물길이 흐르던 들만 풍작이 들어 지역민들이 한해를 잘 넘긴 일이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갑오년에 잘 먹었다'는 뜻에서 '갑오들'로 불렀다. 방언으로 '가오들', '가오야들'로 불리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는 "과거 이곳에는 맑은 물에만 서식하는 은어와 토종물고기 꺽지, 뱀장어, 메기 등이 살았다. 동네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가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창원 터널공사, 신도시 개발로 인해 수량이 많이 줄었다"고 회상했다.
 

▲ 조선시대 '경빈들'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아파트 대단지인 '갑오마을'이 들어섰다.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서부경찰서와 대청중, 대청초, 롯데마트가 들어섰다. 장유의 중심지가 됐다. 98년 신도시 개발 전 대청마을에는 60여 가구, 240여 명이 살았다. 당시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안 이장은 "60년대 말 장유에서 우리 마을이 처음으로 비닐하우스 재배를 시작했다. 주변의 능동, 삼문, 죽림 등으로 퍼져나가 70~80년대에는 장유 전체지역에서 하우스 재배가 번창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전 이장은 "지금도 생각난다. 당시 동네 청년이었던 김종훈 씨가 군 제대 후 삼촌에게서 고등채소 재배법을 배워왔다. 주 작물은 토마토, 오이 등이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자식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특수작물 같은 개념이었는데,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 현재 대청천 주변에는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198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대청마을에도 중소기업이 앞 다퉈 들어왔다. 1986년에는 고려생수 공장이 건립됐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공식 생수로 지정돼 '마운틴 생수'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팔려나갔다. 마을 주민들도 하나 둘 서서히 마을의 입주 공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김 전 이장은 "90년대 중반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인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경로당 앞에는 마을에 남고자 했던 사람들이 모여 이주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마음 편하게 오가며 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을회관이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작은 소망을 전했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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