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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전통에 천착, 변방에 문화를 심는다③ 연극 연출가 이윤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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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0.12.20 18:11
  • 호수 3
  • 11면
  • 황효진 기자(atdawn@gimhaenews.co.kr)

   
 
연극이 시작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암전'이다. 불이 꺼지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펼쳐져야 비로소 연극은 시작된다. 관객들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무대는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암전으로 인해 관객들은 연극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 앞을 밝히며 나타나는 일종의 '환상' 혹은 '현실'.

"(전략) 눈은, 지척거리는 찬비를 동반하면서, 우리들 어깨에 섬뜩한 현실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둡고 긴 시대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연극 <시민K> 중. 1989년 이윤택 작)

지난 1979년 시인으로 등단한 이윤택이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이와 비슷했다. 군사독재정권 아래 억압되고 어두웠던 1980년대 한국사회 속에서, 그는 지식인으로서 '시'를 쓴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꼈다. '시를 쓰는 대신 실천을 해야 한다'. 이윤택은 이렇게 다짐하고 지난 1986년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했다.
 
그가 처음 연출한 작품은 <죽음의 푸가>였다. 연희단거리패 창단공연이자 부산 가마골소극장 개관공연이었던 이 작품은,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는 시대상'을 표현한 윤대성 원작 '미친 동물의 역사'에 독일어권 시인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붙여 재구성한 것이었다. 이윤택은 첫 공연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연이 다 끝났는데 관객들 모두 전혀 미동이 없었어요. 아무도 객석에서 떠나지 않았고, 박수조차 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실패했구나'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런 작품을 처음 봐서 관객들 모두 얼이 빠져 있었던 거죠."
 
그 후 작품은 입소문을 탔고 관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태풍 베라호가 왔는데도 관객들이 밀려들어 촛불을 켜고 공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극으로써 사회적 실천을 하겠다'는 이윤택의 바람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셈이었다.

"연극인에게는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없어. (중략) 연극만세!"(연극 <경성스타> 중. 2010년 김윤미 작 이윤택 재구성 및 연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윤택은 100여편 이상의 작품을 연출해 왔다. 특히 1986년작 <오구-죽음의 형식>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관객들의 관심과 평단의 혹평을 한꺼번에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무대 위에서 장난을 치는 연극은 이윤택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사회적인 의식을 드러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소재였던 '굿'이 우리나라 연극의 원형이라고 생각했고, 그 후로 '일식' '초혼' '씻금' 등을 꾸준히 연출했다.
 
그는 <문제적 인간 연산>을 연극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다. 이 작품은 그에게 '동아연극상', '대산문학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상', '백상예술대상' 등 많은 상을 안겨주었고, 이후 대극장공연을 주로 연출하게 됐다. 또한 독일어와 불어로 번역돼 외국에서 상연되기도 했다.
 
이윤택은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연극을 지향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관객들이 알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나는 고독한 원리주의자가 아닌 '잡놈'이죠. 세속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면서 다른 이들과 섞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작품 속에 이윤택 자신이 투영되고는 한다. 지난달 선보인 <경성스타>에서는 1920년대에 활동했던 작가 임선규의 모습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이윤택이 지역과 전통에 뿌리를 두는 변방의 연극인이라면, 임선규는 '친일작가' 혹은 '월북작가'라는 오명을 쓰고 저평가된 비운의 연극인이다. 두 사람 모두 연극을 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는 점이 닮았다.

 
"얼마나 멋진 일이니. 우리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이 세상은 지옥일거야."(연극 <오구-죽음의 형식> 중. 1986년 이윤택 작)

 지난 해 김해 생림 도요마을 정착 지역민과 문화로 소통

   
 
'밀양연극촌'으로 지역밀착형 문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던 이윤택은, 지난해엔 김해 생림면 도요마을에 '예술창작스튜디오'와 '도요출판사'를 차리고 이 곳을 연희단거리패 및 몇몇 문화예술인들의 생활터전으로 만들었다. 문화구조가 아예 없는 비수도권 지역에 '문화의 중심'을 구성해 보자는 시도이다.
 
"협회나 관 등이 주도하는 부분 말고, 정말 의식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문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김해는 도시가 성장하면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있는 곳이지요. 자연환경도 훌륭하고요. 자체적인 이야기도 갖고 있어 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최적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뮤지컬 3부작 <제 4의 제국>이다. 이는 가야사를 바탕으로 한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1부 '사랑의 제국-아름다운 동반자'와 2부 '태양의 제국-도래인 이야기'가 완성됐고, 내년에 완결편이 공연될 예정이다.
 
또한 그는 지역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맛있는 책읽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월 둘째주 토요일마다 책을 읽고 학자들과 지역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든다. 지금까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삼국유사>, 최영철 시인의 시집 <찔러본다>를 함께 읽었다. 내년부터는 인문학강좌도 시작할 생각이라고 한다. 지역민들을 위한 '시민학교'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 그가 꿈꾸는 도요의 미래다.
 
상상력이 없는 세상이 지옥이듯, 이윤택이 없는 문화판은 사람들에게 지옥일 수 있다. 암전이 되자 이윤택의 무대가 시작됐고, 우리는 그 속으로 쉽게 빠져들었다. 그렇기에 그의 무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암전이 더디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한국 '연극의 대명사' 이윤택

이윤택은 지난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를 중퇴하고, 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를 독학으로 졸업했다. 
 
지난 1979년 시 <천체수업><도깨비불> 등을 월간 <현대시>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부산일보에 입사해 편집기자로 활동했다. 지난 1986년에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하고 가마골소극장을 개관해 본격적인 연극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1989년 희곡 <오구-죽음의 형식>으로 한국평론가협회 최우수 예술가상(연극부문)을 수상했으며, 1990년대에는 연극 <시민K><청부><햄릿><문제적 인간 연산>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했다.
 
지난 1999년 밀양의 한 폐교에 자리를 잡아 '밀양연극촌'을 만들고 2001년 여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2009년부터는 김해 생림면 도요에 '예술창작스튜디오'와 '도요출판사'를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같은 해 영산대학교 CT(Culture&Technology)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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