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이 나오는 집 안. 시린 전기장판 위를 13개월 된 소현(가명)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던 집 안에서 아이는 할머니의 온기에만 의지해 겨울을 맞이했다. 소현이가 세상을 마주한 순간부터 아이에게는 '미등록 아동'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국적도 기록도 없는 '투명인간'.

소현이네에게도 영유아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는 건강권,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권이라는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미등록외국인(불법체류자)인 엄마와 외할머니의 불안한 신분은 어떠한 정보조차 접근하지 못했다. 미등록외국인은 스스로 존재가 드러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외부와 거의 교류하지 않고 한국어, 한국의 법과 제도조차 모른다. 소현이네 엄마와 외할머니에게도 한국어와 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그저 숨죽여 살 수밖에 없었다.

소현이네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이 행정기관도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투명인간이기 때문에 법무부, 김해시는 소현이네와 같은 '미등록외국인', '미등록아동'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행정기관의 '복지 인력 부족'은 자국민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행정기관들은 "소현이네 사정은 안타깝지만 제도 밖의 일이라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고 했다.

1년 전 김해아동복지시설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기아 '우연이(가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연이는 한국 땅에서 태어나 '우연'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친구들과 해맑게 뛰며 노는 평범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연이는 6년 째 투명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부산의 이주민인권단체가 소현이네를, 김해아동복지시설에서 우연이를 발견했기 때문에, 소현이네는 베트남 국적을 얻었고 우연이는 베트남 국적을 얻을 기회라도 주어졌다.

역설적이게도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게 된 이들은 행운아(?)였다.

미등록아동들은 그들이 태어나보니 한국이었고 부모의 상황으로 한국에서 살아야 했다. 아동들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다. 숨죽여 살아야 하는 부모처럼 미등록아동들도 '없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일까.

1989년 11월 20일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된 날이다. 더불어 매년 11월 20일은 '세계 어린이날'로 지정돼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 '의견을 말하고 참여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와 놀권리'를 말하고 있다.

행운(?)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미등록아동'은 우리 동네 언저리, 따뜻한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자라나고 있다. 이들의 딱한 소식에 얼굴만 찌푸릴 것이 아니라 함께 떠들 때 '미등록아동'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본보가 창간 7주년호 1면과 3면을 통해 보도한 ‘소현이네와 우연이의 이야기’가 김해에서 '미등록아동'의 존재를 말하는 시작점이길 바란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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