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그랑프리(GI) 에서 파워블레이드가 결승선 통과하고 있다.


2018년을 보름정도 앞두고 '한국 경마계' 의 절대 강자 구도가 바뀌고 있다. 

장거리까지 급피치를 올리는 파워블레이드(4세, 수, 한국, R125)와 대통령배(GⅠ) 3연패에 빛나는 황제 '트리플나인(5세, 수, 한국, R123)'의 '휘청거림'이 맞물려 돌아가는 2017년 시즌이 흥미롭다.   

지난 10일 국내 최초 삼관마(Triple Crown) '파워블레이드'가 8억원의 상금이 걸린 그랑프리(GⅠ, 제9경주, 2300m)까지 접수했다. '파워블레이드'는 본래 단거리에서 활약하던 말로 경마전문가들은 2300m의 최장거리인 '그랑프리(GⅠ)'에서 '파워블레이드'의 우승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1800m 이하의 경주에서는 60%이상의 승률을 보여줬지만, 2000m이상의 장거리 경주에서는 30%미만의 승률에 불과했던 파워블레이드의 과거경주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을 깨고 '파워블레이드'는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괴물같은 추입력(초반 천천히 달리다 중반 이후 강력한 스퍼트 발휘)을 보여주며 지난 11월 '트리플나인'에게 내어준 '대통령배(GⅠ)' 우승에 대한 설욕에 성공했다. 

올해 들어 '파워블레이드'는 '트리플나인'과의 경쟁에서 2승 1패 전적을 보여주고 있다. 승률상 우위지만 2승 모두 1600m 이하인 단거리 경주였고 2000m의 장거리 경주에서는 속시원히 이기지 못했다. 이 때문에 트리플나인과의 대결에서는 단거리에서만 강하다는 '반쪽 우수마'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번 그랑프리 우승으로 파워블레이드는 장거리에서도 트리플나인에 우위를 점했다. 경주마 능력치를 나타내는 레이팅 역시 R122에서 R125로 껑충 뛰어올라 트리플나인(R123) 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섰다. 경마계에 입문한지 3년 만에 일궈낸 기적 같은 경주력 비결은 무엇일까


■ 100억원 몸값 전설의 명마 '메니피'의 아들
경마에선 '혈통'이 무척 중요하다. 부마와 모마로부터 우월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마가 잘 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씨수말과 씨암말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우수한 품종을 후대로 보내는 역할을 맡은 씨수말은 씨암말보다 가치가 더 높다. 씨암말은 1년에 1마리밖에 낳을 수 없지만, 씨수말은 하루에도 수차례 교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씨수말은 '메니피'다. 한국마사회는 경마의 질적 향상을 위해 2006년에 '메니피'를 37억 원을 주고 미국에서 수입했다. 1996년 출생한 메니피는 경마용인 영국산 '서러브레드' 품종으로 뛰어난 경주마였다. 미국에서 11차례 경주에 출전해 5번 우승하고 2번 준우승을 차지했다.  

'메니피'는 2008년 국내에서 씨수말로 데뷔했고 지난해까지 최근 5년 연속 최고의 종마(種馬)인 '리딩 사이어(Leading Sire)' 타이틀을 획득했다. '리딩 사이어' 호칭은 그 해 자마들의 수득 상금이 1위를 차지한 씨수말에게 부여한다. '메니피'는 550두 이상의 자마(2008년 ~ 2016년 생산기준)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활약한 메니피 자마들의 수득상금만 500억원에 이를 정도로 타고난 실력을 보유했다. 

이번 그랑프리 타이틀을 거머쥔 '파워블레이드' 역시 '메니피 '의 대표 자마다. 지난 2015년 8월 데뷔후 현재까지 벌어들인 수익만 30억원에 이른다. 그 외 '경부대로'(2014년 대통령배 우승, 2014년 그랑프리 우승), '영천에이스'(2015년 코리안 더비 우승), '스피디퍼스트'(2013년 코리안더비 우승), '라이징글로리'(2012년 코리안오크스 우승) 등의 명마도 메니피를 아버지로 두고 있다. 
씨수마로서 메니피의 가치와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허를 찌르는 변칙적 선수기용
이번 경주에서 파워블레이드와 함께한 선수는 경마관계자 모두의 예상을 깬 오경환(38) 기수란 점이다. 오경환 기수는 1999년에 데뷔한 최고참 선수라 할 수 있지만, 사실 대상경주 우승경험은 지난 2012년 동아일보배를 끝으로 5년동안 전무했다. 최근 1년간 승률 역시 7.6%에 불과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국경마 역사상 최단기 1000승 달성에 빛나는 김영관 조교사 입장에서는 임성실, 함완식, 다실바 기수 등 이미 호흡을 맞춰본 최고기량 선수들 중 선택의 폭이 많았을터다.

다만, 이 같은 의문점은 오경환 기수만이 갖고 있는 강점에서 풀린다. 오경환 기수는 경기종반에서 경주마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는데 베테랑이라는 평가다. 뜻밖의 선수기용에 대해 김영관 조교사는 "오경환 기수는 직선주로에서 경주마를 모는 힘이 다른 기수보다 탁월하다. 특히 막판 단거리에서 말들의 힘을 뽑아내는 데는 도가 텄고, 그렇게 해줄 친구라 믿었기에 기용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 '선(先) 비축, 후(後) 안배' 경주전개 
"초반에 힘 빼고 페이스 유지하다 직선주로에서 승부를 걸자던 작전이 들어맞았다"

'선(先) 비축, 후(後) 안배' 인 김영관 조교사의 작전은 당초 단거리에 강한 선입마 임에도 불구, 장거리에서 추입능력까지 갖춘 파워블레이드의 강점을 십분 발휘하게 했다. 선두그룹에서 페이스 조절을 잘해 직선주로에서 폭발적인 뒷심을 만들어 낸 것이 우승 원동력이 됐다. 

일반적으로 단거리 경주는 초반 선두싸움이 치열한 만큼 조교사와 기수 모두 선행 또는 선입형의 경주전개를 선호한다. 반면 중장거리 대회에선 경주 후반 폭발적인 추입력을 자랑하는 추입형의 경주마가 사랑 받는다. 선행마는 출발하자마자 선두권에서 달리는 말을 뜻하며 선입마는 선행마를 따라가는 스타일을 말한다. 추입마는 피니시 라인을 앞두고 선두로 치고 나오는 습성을 가진 말. 

김영관 조교사는 "일찌감치 오경환 기수한테 추입이 작전이라고 말했다. 파워블레이드는 경주 초반에도 잘 뛰는 말이기 때문에 선두그룹만 유지해 준다면, 초반 비축한 힘을 중후반 이후 폭발시켜 '역전'을 노리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디지털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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