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국 사람이에요. 당연하잖아요."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표정이다. 너무 손쉬운 질문을 받은 듯 곧바로 대답을 던져왔다. 인터뷰 내내 보였던 소극적이던 태도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늘의 주인공 김손서(13) 양.
 
김 양은 생각이 많은 편이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대답을 하기 전엔 한참 동안 말을 골라냈다. 그가 입을 열 때까지 몇 분이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또래답지 않는 신중함엔 오랫동안 편견과 홀로 싸워온 시간이 엿보였다.
 
김 양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빠는 한국인이지만 엄마는 필리핀인이다. 덕분에 피부색이 남보다 검다. 이목구비도 짙은 편이다. 남과 다른 모습은 사춘기에 접어든 김 양에겐 조금 버거웠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다르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얼굴이 조금만 하얗게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김 양이 말했다.
 
김 양은 또래 초등학생들의 주 관심사인 연예인은 잘 모른다. 그는 아줌마들이 보는 드라마가 좋다. 배우들의 이름은 몰라도 그들이 연기하는 인생이 재미있다. 시간이 남을 땐 책을 읽는다. 김 양은 "드라마나 이야기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가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양에겐 친구가 많지 않다. "친구들은 저를 차별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외모가 다르니까, 그냥 모두 다 날 욕할 것 같고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가가기 힘들어요. 나를 싫어하는 친구도 없지만 좋아하는 친구도 없을 걸요. 저는 그냥 공기 같이 조용한 존재에요." 어딘가 풀죽은 목소리로 김 양이 말했다.
 
김 양은 얼마 전엔 필리핀에 다녀왔다.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더 쓸쓸하기만 했다. "갔다 와서 괜히 타서 더 까매지기만했잖아요. 역시 제가 살 곳은 한국이에요." 김 양이 진지한 얼굴로 씩씩하게 말했다.
 
남과 다른 모습을 고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김 양이지만 언제나 어른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곧바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밝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또래다운 불만을 재잘재잘 털어놨다. 엄마가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하는 것과, 동생들이 말을 잘 안 듣고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이 그의 고민이란다. 그래도 말끝엔 가족을 향해 "고맙다. 사랑 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김 양은 엄마가 외국인으로서 4남매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그의 장래희망은 '디자이너'다. 왠지 부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좀 더 자신이 진짜 되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고 채근하자 김 양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머무르는 것"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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