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6일 외동 나비프라자 4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공모전 시상식 모습.


‘허웅 한글생활수기 공모전’ 수상자 선정

창원용호초 김하연, 창원여중 윤소정, 김해중앙여고 이지민 양이 '2017 눈뫼 허웅 선생 추모 한글사랑 생활수기 공모전'에서 각각 경남도교육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해뉴스는 지난 16일 외동 나비프라자 4층 회의실에서 '2017 눈뫼 허웅 선생 추모 한글사랑 생활수기 공모전' 시상식을 진행했다. 시상은 <김해뉴스> 류순식 사장과 한글학회 하치근 이사가 담당했다. 한글학회장상은 이상훈(삼계초·4), 김한희(율하중·2), 유지현(김해대청고·1) 에게 각각 돌아갔다. 경남도교육감상을 받은 고등부 이지민 양은 "이렇게 좋은 상을 수여받을 줄 몰랐다. 앞으로도 한글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


◇ 2017 눈뫼 허웅 선생 추모 '한글 사랑 생활 수기' 공모전 부문별 당선자 명단

△초등부 / 경남도교육감상 김하연(창원용호초), 한글학회장상 이상훈(삼계초), 김해교육지원청장상 박현준(장유초), 서지혜(관동초), 박가영(능동초)

△중등부 / 경남도교육감상 윤소정(창원여중), 한글학회장상 김한희(율하중), 김해교육지원청장상 진유하(칠원중), 이민서(삼계중), 임채린(밀양여중)

△고등부 / 경남도교육감상 이지민(김해중앙여고), 한글학회장상 유지현(김해대청고), 김해교육지원청장상 배성은(김해중앙여고), 김나연(창원성민여고), 강남이(김해대청고)

△늦깎이부 / 김해뉴스사장상 이현서, 오욱케세이, 사토유카, 누엔 티 타인 프어, 탄시유엔

△여성부 / 김해뉴스사장상 강성련, 이진희, 윤원경, 김하연, 김태경


▲ 김하연 학생

초등부 장원상 - 김하연(창원용호초등학교 4학년)

좋은 말 쓰는 버릇들여 동생 모범될 터

제목: 말 버릇


동생과 집에서 딱지치기를 하다가 싸우게 되었다. 학교에서 쓰던 말대로 동생에게 "이 바보야" "안물" "안궁" 하며 말싸움을 하게 되었다. 큰 소리가 나자 엄마가 달려오셨다. 요즘 안 그래도 우리 둘이 자주 싸워서 엄마는 우리가 싸우기만 하면 화부터 내신다. 동생은 내가 쓴 좋지 않은 말들을 엄마께 이르며 억울하다고 울먹였다. '아... 야단 맞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엄마의 잔소리가 나에게 날아왔다.

"어디서 이런 나쁜 말들을 배워와서는... 동생에게 좋은 말만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말을 쓰고 있노?"

"아니 그게 아니라 수연이가 먼저~"

"됐어. 둘 다 잘못했으니 너네 둘이 알아서 해결해" 하고 가버리신다.

'바보' 이런 말은 특히나 엄마가 쓰지 말라고 주의를 많이 주셨던 편이라 화가 많이 나신 듯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정말 '바보'라고 놀릴 때 쓰는 게 아니라 친한 애들끼리 웃으며 쓰는 말인데 엄마는 이해를 못하시나보다. 집에서는 쓰지 않아야지 다짐하는데도 잘 안 된다. 평소에 자주 쓰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친근함의 표시이면 정말 듣기 좋고 누가 들어도 좋은 말을 쓸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왜 이런 말들을 쓰면서 친해지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지 않은 말들을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쓰다 보니 버릇이 되어버려서 자꾸 하게 된다.

아…그렇구나. 버릇이 참 무섭다. 이토록 쉽고 예쁘고 편한 우리 한글을 내가 그동안 너무 함부로 다룬 것 같다. 엄마의 말씀대로 좋은 말만 해도 모자랄 사랑하는 친구나 동생들에게 앞으로는 좋은 말을 많이 써서 모범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 윤소정 학생

중등부 장원상 - 윤소정(창원여자중학교 1학년)

손녀가 어릴 적 썼던 편지, 75세에 한글 배워 함께 읽은 할머니

제목: 한글을 꿈꾸신 할머니


어릴 적, 할머니에게 백설 공주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얕은 두께의 동화책을 불쑥 내밀고서는, "할머니! 책 읽어주세요!" 대뜸 이야기했었다. 새빨간 사과를 깎고 있던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눈이 책으로 향했고 순간, 그녀의 얼굴이 샛노랗게 질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다시 푸근한 인상으로 돌아오는 할머니였다.

"할미 시장 좀 다녀와야겠어. 책은 아부지한테 읽어달라고 혀. 알았지, 우리 새끼?"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고서는 끙끙대며 구부정한 허리를 일으켜 뒷짐을 지고서 찬찬히 방을 나가셨다. 어린 나는 절뚝대며 내 곁을 지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나가시고, 나를 쭉 지켜보던 엄마가 조심스레 내 이름을 불렀다.

"소정아. 앞으로는 할머니한테 책 읽어달라고 하지 마. 엄마가 읽어줄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엄마에 저절로 위축이 된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엄마는 한동안 침묵을 일관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글을 읽지 못하셔. 쓰지도 못하시고. 어릴 때 가난하셔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셨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할머니한테 책 읽어달라는 소리는 하지 마."

'내가 이 어린아이에게 이런 소리를 해도 되는 걸까'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등 뒤로 그동안 내가 할머니에게 온갖 고집을 부려왔던 일들이 생각났다. 나로 인해 꽤 곤란하셨을지도 모른다. 내 이름 석 자를 적어달라고 어리광 피웠던 일, 동화책을 읽어달라며 떼를 썼던 일,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다며 꼭 읽어보시라면서 약속까지 받아내었던 일까지. 엄마의 그 한 마디로 그동안 내가 어떤 짓들을 저질러왔는지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몰라서 그런 거잖아. 그럴 수 있지."

엄마는 그런 내 머리를 고이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마 엄마는 내가 풀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풀이 죽긴 죽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가만히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것뿐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엄마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엄마! 내가 할머니한테 한글을 가르쳐드리면 어떨까?"

내 짤막한 외침에 엄마는 꽤 당황한 듯했다.

"네가 할머니한테 글을 가르쳐드린다고?"

"응!"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 엄마는 영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짓기 바빴다.

"아, 나도 할 수 있어! 할머니한테도 가르쳐드리고 이왕 하는 김에 나도 한글 공부하면 되잖아! 얼마나 좋아?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야?"

결국 엄마는 또랑또랑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내 자신감에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대신 할머니가 허락한다면 말이야."

웃음을 흘리며 얘기하는 엄마의 어감에는 비꼬는 느낌이 한가득했다. 할머니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 아빠가 할머니께 한글 한번 진지하게 배워볼 의향이 없으시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 그 뒤로 다시는 한글의 '한' 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했으니, 역시나 엄마는 내 의지가 금방 꺾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 예상은 모두를 철저하게 빗나갔다. 할머니가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야기는 한순간에 가까운 사람들부터 먼 친척까지 퍼져나갔다.

"그분이 너한테 한글을 배우신다고?"

"웬일이래? 평소에는 필요 없다고 열을 내시던 사람이."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아빠와 엄마였다. 그렇게 사정사정해도 들은 척도 안 하시던 분이 손녀의 한 마디에 한글을 배우신다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뭐, 그때는 동네 주민 분들까지도 진짜냐고 놀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말 다한 거라고 본다.

그 뒤로 할머니와 나는 하루에 꼬박 몇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한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잘 봐요. 이건 기역이에요. 기역.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라는 속담 아시죠? 그때 그 기역이에요. 낫이랑 비슷하게 생겼죠?"

요즘 유치원생들이 쓰는 한글 연습장에다 꾸역꾸역 적어 넣어보는 한글. 연필을 꼭 쥐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입모양으로 '기이-역'을 말하며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 글씨체가 단정하긴 커녕 구불구불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입안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어느새 'ㄱ'을 20번 다 썼다고 내 팔을 툭툭 치는 할머니였다.

"다 썼네요? 잘 했어요, 할머니! 다음은 니은이에요. 니은은 의자처럼 생겼어요. 다리 없는 의자! 음. 이건요. 기역을 뒤집으면 돼요. 짠, 봐요! 맞죠? 기역을 뒤집으니까 니은이 되죠?"

 
"그러네. 그것 참 신기하다, 소정아." 그깟 니은이 뭐라고. 소녀처럼 좋아하는 할머니가 미웠다. 진작 말씀하시지. 그럼 조금이라도 빨리 도와드렸을 텐데. 주름이 자글자글한 입가에 어여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무작정 속상하기만 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쯤, 어느새 'ㄴ'도 20번을 다 썼다.

"그래요. 그거예요. 별로 어렵지 않죠? 우리 다음은 디귿을 배워봅시다."

그렇다고 절대 동정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미안함이었다. 어쭙잖게 그녀를 가엽게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감을 하기는 힘들었지만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괜히 여기서 울기라도 해서 할머니에게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할머니는 그동안 찬바람이 몰래 새어 들어오던 그 구멍들을 하나하나 메꾸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내달렸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을까. 1년 반이 지나갔다. 어느새 할머니는 모든 한글을 노련하게 읽고 쓸 줄 알게 되었고 가끔가다 동네 사람들께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셨다.

"김 씨네 아줌마! 거, 이거 읽을 줄 아나? 나는 읽을 줄 알어. '콩나물 1000원에 팔아요.' 맞지? 이야, 콩나물을 어쩌다 1000원에 팔게 됐대? 요즘 장사가 많이 안 되나 봐?"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시장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할머니. 괜스레 내가 다 뿌듯했다.

"거 참, 할머니도! 한글 읽기 시작했다고 이제 허세 피우고 다니시는 거예요? 콩나물 사줄 거 아니면 절로 가!"

"사람 참 야박하네. 내가 뭐 언제 안 사준대? 3000원어치 같은 콩나물이나 줘봐. 집 가서 우리 똥강아지 먹이게."

많이 신나시는 건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은 게 느껴졌다.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3000원을 꺼내시곤 콩나물과 맞바꾸는 할머니. 1년 반 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때 들었던 감정이 미안함이었다면, 지금 내가 할머니를 보며 드는 이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많이 늦은 만큼 조급함도 있었을 텐데, 남들이 쳐다보는 시선에 짓눌리기도 했을 텐데, 분명 중간 중간에 이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것도 느꼈을 텐데. 그 모든 것들을 단호하게 무시해주고 나와 함께 달려와준 할머니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하시는 할머니를 뒤에서 지켜보자니 또 다른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쓸쓸해 보이기만 했던 그 뒷모습이 그날따라 유독 꽉 차보였다. 좀 더 따뜻해 보였다.

"할머니. 이제 할머니 한글 읽고 쓰실 줄 아시잖아요. 그럼 해보고 싶은 일 없으셨어요?"

내 물음에 나물을 다듬으시던 할머니의 손이 멈칫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가야?"

"그냥요. 한글 익히시고 나면 읽고 싶었거나, 쓰고 싶었던 게 있을까 싶어서요. 없어요?"

다리를 오므려 팔로 꼭 붙들었다. 그리고는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몸을 움직였다. 나는 생각했다. 분명 할머니가 그냥 한글을 배운 건 아닐 거라고.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아니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할 리가 없을 테니까, 뭔가 이루고 싶은 게 있지 않았을까? 인내심을 가지고 할머니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이내, "사실, 읽고 싶은 게 하나 있긴 있어."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손에 들고 있던 나물을 살포시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였다. 뭐기에 저렇게 긴장하는 걸까. 호기심이 일었다. 얼마 안 지나서 할머니는 작은 종이 쪼가리를 들고 방에서 나오셨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종이 뭉치였다.

"그게 뭐예요?" 궁금함이 들어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며 종이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를 보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충격에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아, 충격이라기보다는 감동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어릴 적 감사함을 담아 할머니에게 썼던 편지였다. 그때 나에게 꼭 읽어보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던, 그 편지였던 것이다.

"우리 강아지랑 약속한 거잖아. 꼭 읽어보겠다고. 그래서 한글을 다 깨우치면 이거부터 읽어보고 싶었거든."

지금까지 잘 참아왔던 눈물이 폭발했다. 딱히 슬픈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서러운 것도 아니었다. 미치도록 고마웠다. 그냥 '사랑합니다.', '고마워요.', '건강하세요.'와 같이 형식적인 내용의 편지일 뿐이었다. 심지어는 당사자인 나도 까먹고 있던 편지였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셨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왜 울고 그래? 희한한 데서 잘 터진단 말이야."

할머니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익살스럽게 말했다. 그게 오히려 내 감정을 더 건드린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어디 볼까?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소정이에요. 있잖아요. 저는 할머니가 너무너무 좋아요. 할머니가 해주는 밥도 맛있고요. 아이스크림도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만수무강하세요. 앞으로도 맛있는 밥 많이 해주세요. 동생하고도 안 싸울게요. 공부도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사랑해요! 소정 올림."

할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그 뒤로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몇 분이 흐르고 그 정적을 깬 건 할머니였다. 어느새 할머니의 눈에도 고요한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고맙네. 할미한테 이런 글 써줘서. 우리 똥강아지 때문이라도 오래오래 살아야겠네. 한글 배우길 잘했어, 그렇지?"

안 울기 위해 꾹 참는 게 다 보였다. 그런데도 모른 척 했다. 할머니도 그러길 바랐을 테니까. 눈을 곱게 접으며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녀였다.

"네"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울다가 웃다가, 뭐 하는 짓인지. 역시, 나는 할머니가 좋다. 정말 한글 안 가르쳐드렸으면 어쩔 뻔했지.

"에구, 눈물 많기는. 한글 읽는 게 뭐가 그리 슬프다고 울긴 울어. 뚝!"

내가 지금까지 한글을 써오면서 이토록 한글이 고마운 날은 없었다. 'ㄱ', 'ㄴ', 'ㄷ'을 알고 있다는 것이 내 자신 스스로에게도 자랑스러웠고 대견했다. 그리고 나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면면히 종이를 들여다 봐준 할머니가 은혜로웠다. 아마 종이가 그리 깨끗한 까닭은 그녀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편지를 펼쳐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한글이 굉장히 소중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존재일 수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이 일흔다섯 먹고 드디어 한글을 다 깨우쳤네. 참 뿌듯하다, 아가야."

울고 있는 나를 향해 담담히 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떨려왔다.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다시 나물을 다듬기 시작하셨다. 평온함 그 자체였다.

현재 나의 할머니는 80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고 계시다. 요즘은 나 없이도 한글 공부를 잘 하신다. 이제는 나보다 더 똑똑하신 거 같다니까.

할머니는 한글을 꿈꾸셨다. 손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은 것도 있었겠지만, 한글을 배우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 꿈을 이뤘으니, 모든 게 만족스럽기만 하다. 음, 다음에 시골 가면 할머니랑 한글 놀이나 해야지. 그땐 내가 꼭 이기고야 말겠어.


▲ 이현서 씨

늦깎이부 장원상 - 이현서(베트남·출신)

항상 친구처럼 응원해주신 은혜

제목: 나의 한국어 선생님


김해다문화센터의 방문 한국어수업 프로그램 덕분에 선생님과 만나게 됐다. 선생님과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2년쯤 될 것 같다. 세월이 참 빠르다. 방문 한국어 수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께 어휘, 문법을 많이 배웠다. 한국에서 잘 생활하려면 한국의 문화와 역사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이들은 키우는 방법과 힘들 때 도움이 받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 전화로 물어봐야 하는지 늘 정확하고 꼼꼼하게 가르쳐 주셨다. 한국에서 6년 동안 생활하면서 우리 가족 말고 나한테 늘 걱정해 주시고 신경도 많이 써 준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는 것 같다.

4년 전 선생님과 만나기 전까지는 거의 집에서 혼자 알아서 단어와 간단한 문법들을 배웠다. 혼자 공부해서 한국어 문법, 어휘, 말하기, 읽기, 듣기 그리고 쓰기가 많이 부족한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문화센터에서 공부하려고 했지만 우리 집 작은 아이 때문에 센터로 못 갔다. 대신에 집에서 공부하려고 방문 수업을 신청했다. 방문수업이 시작되고 사랑하는 선생님과 만나게 되었다. 사실 고향에서 학교 다니는 동안 방문수업 받은 적이 없어서 이번에 우리 집에서 수업이 어떻게 진행하는지? 선생님께서 어떻게 가르치시는지? 나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선생님이 저한테 정말 잘 해 주셨다. 그동안 내가 혼자 어휘와 문법만 배웠기 때문에 짧은 문장 밖에 못 썼다. 선생님이 긴 문장을 부드럽고 연결하기 쉬운 문장 연결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내가 한국어를 배울 때 제일 힘들고 못 하는 문제가 바로 쓰기이다. 쓰기만 하면 완벽한 문장은 몇 개 밖에 못 쓰고 이상한 주제가 계속 나왔다. 그때 선생님이 옆에 있어서 그런 부족한 문제들을 잘 고쳐 주시고 많이 가르쳐 주셨다. 쓰기 할 때 항상 주제의 중심문제 찾아야 한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장점 단점들을 선택해야 하는지 늘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내가 한번 쓰고 선생님이 봐 주고 잘 안되면 다시 고쳐 주시고 무엇 때문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려주셨다. 나의 쓰기 때문에 선생님이 고생이 많이 한 것 같다. 선생님 덕에 내가 예전에 쓰기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다. 또한 늘 긴장이 많고 부끄러워서 밖에 나가면 제대로 말을 못 하였다. 방문 한국어 수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과의 대화를 많이 해서 지금은 긴장하는 게 많이 줄었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긴장감도 많이 줄어들 수 있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여러 방법을 알려 주셨다. 무엇이 필요할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화해야 하는지 다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리고 마음이 힘들고 답답할 때 저 옆에 친구처럼 늘 들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항상 걱정해 주시고 직접 와서 도와주셨다. 또한 선생님의 응원 덕분에 운전면허도 땄고 사회 통합프로그램도 해 봤다. 선생님 아니면 혼자 용기를 못 내고 언제, 어디에서 할 수 있는지 몰랐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의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도 많이 궁금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한국의 역사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늘 저보고 지금은 시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있으면 공부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또 아이들은 크면서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한 게 많아서 엄마가 정확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하였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선생님과 만나서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을 잘 크고 있는지 건강 한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동안 선생님께 배웠던 것들은 잘 기억해서 우리 아이들한테 꼭 알려 주고 싶다. 나의 실력은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만약에 선생님 못 만났으면 지금처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선생님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이지민 학생

고등부 장원상 - 이지민(김해중앙여자고등학교 1학년)

말은 항상 상대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목: 순간


석식시간이었다. 다들 공부로 체력을 다하여 배가 고팠는지, 공부에 매진하느라 다 나누지 못하였던 서로의 소식들을 빨리 알라고팠는지 급식소는 수저가 움직이는 소리와 이야기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고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 오늘 일찍 일어나 보겠다고 3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서 보고서 쓰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학교까지 노트북 가져와서 아침에 끝냈어!" 얼마 있지도 않은 떨어져 있던 시간에 일어난 일들을 공유한다.

"나는 멘토링 보고서 쓴다고 그거 아직 보내지도 않았어.. 어떡하지." 친구의 걱정이 들려왔다.

"내가 아침에 메일 보내줬잖아!" 난 아침에 보고서 제출하는 메일을 몰라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모르길래 문자로 메일 주소를 보내 준 그 이야기를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 친구는 어떻게 그 말을 해석하였는지 얼굴을 굳혔다. 기분이 나쁜 듯 굳힌 얼굴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시끄러웠던 급식소 때문인지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하였던 건지 나는 친구가 내 말을 나는 메일 보냈어라고 자랑하는 것으로 들렸을 것으로 예상한다.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려 말을 정정할 새도 없이 다음 주제로 넘어가 버렸고 그렇게 석식시간은 끝이 났다. 내가 아무리 이 친구를 오래 보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닌 이상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망상은 계속되었고 말을 좀 더 자세히 할 걸이라는 생각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으며 이렇게 말할 걸 저렇게 말할걸 다시 급식소로 돌아가 시뮬레이션을 하였다. 참 바보 같은 짓이다. 그냥 물어보면 될 것을 난 또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어찌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고 날이 지나가면 말하지가 그렇게 내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지만 상대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때의 무안함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느낀다. 말이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이면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얼마 없는 친구들 중 한 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 친구와 싸우고 나서 느낀 것이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오해를 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되면 떠올리곤 한다. 조금 또 조심하자고 싸우지 않게.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게.

그런 날이 있다. 좋지 않은 일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날, 소소한 것 하나까지도 좋은 것을 찾기 지지리도 힘든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던 일들이 조금씩은 있는 그런 날 말이다. 아침부터 배가 아팠다. 불행히도 4교시 영어 수행평가였던 나의 공들인 상황극은 나의 더듬거리는 영어 대사로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선생님의 다른 반보다 잘했다는 모든 반이 듣는 칭찬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일을 시작으로 멘토링 하는 멘티 아이들과의 주말 시간 잡기도 단단히 실패하였고, 우유 당번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혼이 났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듯 하였다. 오늘이 진짜 날이긴 날인지 반도 A반에서 B반으로 떨어졌다. 원래 반 이동은 월요일에 알려주기로 하셨는데 오늘 알려주셨다. 오늘은 목요일인데. 날이긴 날인가 보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그런 척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반 이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성적 하락으로 있는 반 이동은 나에게 의미가 컸다.

한 친구에게 내 이동 소식을 알렸다. 듣자마자 자기는 떨어지지도 않았으면서 내 반 이동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나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본 것 같다.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자신의 성적이 더 낮은데 왜 네가 떨어지냐며 면박 아닌 면박까지 주더라. 처음에는 당황하였고 싱숭생숭하였다. 나까지 같이 우는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만들 뻔하였다. 그러니까 잘하지 그랬냐 같은 가시 같은 말이 아니라 내가 내려가야 된다고 너는 잘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를 대신하여 울어준 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어떻게 보면 울린 거니까 말이다.

아쉬웠던 시험의 성적이 지나가고 슬펐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하였다. 지금 이 면학실 안에는 혼자가 아니지만 의자에 앉으니 눈물은 자연스럽게 흘렀다. 힘들었고 힘들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바쁘게 살아가는데 이런 시련을 당하는 것이 억울하였다. 내 감정을 온전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내 감정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를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는 나의 마음을 온전히 다 알아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묵묵히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혼자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흘러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울었던 친구에게로 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이미 울고 나서여서 그런지 더 이상 울컥하지 않았고 그래서 조금 더 온전하게 나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조용한 면학실에서 소곤소곤 서로에게만 들리게 나누는 감정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충분하였다.

아직도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었고 그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오늘 내 이런 날이 끝이 난 줄 알고 있었다. 학원을 다녀오는 길에 나는 친구가 나에게 콘서트 티켓 돈을 입금하였다는 말을 들었고 확인하고 입금을 하려고 하였다. 내 계정으로 예매하였던 표이기에 내가 입금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저번에 계좌를 달라고 하여 아무 생각 없이 나의 통장 계좌를 주었고 나는 오늘까지 입금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친구의 문자를 확인한 것은 약 오후 11시 25분, 이미 가상 계좌는 거래가 끝난 상황이었고 친구의 콘서트 티켓은 자동 취소되었다. 나의 실수였다. 친구는 내가 준 계좌가 가상계좌인 줄 알고 있었다. 친구도 오늘 너무 바빠 통장 주인 이름이 내 이름인 것을 확인하고도 아무 의심 없이 입금하였다고 한다.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었을 콘서트였고 친구의 4년 덕질 중 첫 콘서트였다.

계좌를 줄 때까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동상이몽이었던 것이다. 서로가 이야기하는 계좌가 달랐고 정정하기에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서로 말하지 않았던 것은 되돌리기가 힘든 것이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네 이름 보고 뭐지 하고 의심하지 않았어. 우리 둘 다 오늘 되는 일이 없네." 어이없게 웃으면서도 끝내 내 욕은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괜찮다는 말을 계속하였다. 그런 친구의 말에 나는 더 미안하였다.


▲ 강성련 씨

여성부 장원상 - 강성련

한글사랑 프로젝트, 믿고 잘 따라 주는 아이들이 예쁘고 고마워~

제목: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여름방학 동안 활력을 충전한 아이들은 수업 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모를 정도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 중 몇 명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구를 자유자재로 발산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한 9월도 생존수영교실, 학부모 상담 및 공개수업, 인성교육실천 친구사랑주간, 수시평가주간 등으로 바쁘게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어느 덧 10월을 맞이했다.

10일 만에 만난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보낸 긴 연휴동안의 즐거움을 아쉬워하듯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심이 된 화제는 추석날 친척들로부터 받은 용돈이었다.

"난, 30만원이나 받았다."

"나는 5만원 밖에 못 받았어."

"선생님, 저는요, 가족여행 간다고 친척들 못 만나서 용돈 하나도 못 받았어요."

누군가 나를 부르며 말하자 나는 이때다 싶어

"자, 이제 수업시간이니까, 용돈얘기 그만하고 국어와 국어활동 책 준비하고 바르게 앉으세요. 그동안 수업을 못해서 진도가 많이 늦어요. 56쪽 우리말 다지기 띄어쓰기를 바르게 해 봅시다."

라며 아이들의 수다에 찬물을 끼얹고는 수업을 진행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은 글씨 쓰기를 힘들어한다. 천천히 바르고 정확하게 쓰기보다는 후다닥 써 버리고는 다 썼다고 자랑하기 바쁜 아이들이다. 이번 수업 시간도 분명 지루하고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칸에 한 자씩 꾹꾹 눌러 써 내려가는 아이들이 아닌가?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집중하면서 글을 쓰는 반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귀엽고 대견했다.

"자, 이번에는 띄어쓰기가 안 된 문장 <용돈은계획을세워서사용합시다>, <한글날과같은국경일에태극기를답니다>을 바르게 띄어 써 봅시다."

"선생님, 한글날에 태극기를 달아야 해요?"

"어제 우리 집은 태극기 안 달았어요."

"우리 집도 안 달았어, 선생님, 우리 아파트에 태극기 단 집 거의 없었어요."

띄어쓰기를 하다말고 어제 국기를 달았는지 안 달았는지 서로에게 확인하느라고 교실은 다시 시끌벅적했다. 9월 말에 한글의 소중함이라는 주제 글쓰기를 과제로 하긴 했지만 바쁜 교육일정과 추석연휴를 핑계로 한글날에 대한 계기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였다.

"어제가 한글날이었으니, 태극기 다는 일은 이미 늦었네요. 하지만 한글날의 의미와 한글의 소중함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겠죠. 그러니 이번에 한글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었고, 우리는 한글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한글을 왜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요?"

"선생님,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지 저는 알아요. 세종대왕이 만들었어요."

"야, 우리도 그건 알아, 선생님, 우리 NIE수업에서 기사를 배울 때처럼 한글을 6하 원칙에 따라 자세하게 공부해 봐요."

제법 똑똑한 녀석이 거들어 준 덕에 반 아이들의 거부감 없이 한글에 관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수업이라 일회성이나 계기교육의 차원이 아닌 프로젝트 형식으로 수업을 계획하여 진행했다.

먼저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만화나 드라마 형식의 영상들을 보여 주었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시청각 자료들을 보면서 한글에 대한 여러 가지 배경지식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글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우리 고유의 글자가 없었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중국의 글자인 한자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한자는 우리말과 맞지 않으면서 글자 수도 많았고 무엇보다 배우기가 어려워서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읽지도 그 뜻을 이해하지도 못했어요.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이야기 해 볼까요?"

"바보처럼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어요."

"한자를 모르니까 양반들이 하는 말이나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꼭 필요한 말이나 하고 싶은 말도 못해서 답답해했어요."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비참하고 불쌍하게 살고 있었어요."

"네, 한자를 몰라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여러분도 마음이 많이 아프죠? 세종대왕은 이러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나의 백성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또한 나는 귀가 있    어도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 백성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겠다. 이제 우리의 소리를 담은 새로운 문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백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결심한 뒤 오랫동안 연구를 거듭하여 글자를 만들게 되고, 그 글자를 훈민정음이라고 부르게 했어요."

"선생님, 질문 있어요. 세종대왕이 글자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왜 한글이라고 부르나요?"

"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던 당시에는 신분사회였고 높은 신분에 속하는 양반들은 이 글자를 우리글로 인정하지 않고 천시했어요.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우리 글자로 받아들이고 훈민정음을 꾸준히 사용했지요. 이렇다 보니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처음에는 한문과 구별해서 언문, 언서로 부르다가 또 가갸글이나 암글 등으로 낮추어 부르기도 했어요. 그 다음에는 국문으로 불리다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기고 국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되자 언어를 연구하던 주시경 선생님이 한글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 한글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됐어요. 한글의 '한'은 '하나' 또는 '크다'는 뜻이에요. 한글은 크고 올바른 글자, 한민족의 글자, 대한민국의 글자라는 뜻이에요."

반 아이들은 동영상 시청과 설명, 질의응답, 토의 등을 통해 한글을 누가,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글자가 없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양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정신은 무엇이었는지? 훈민정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한글이 되었는지?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깨달아 나갔다.

다음은 한글의 소중함을 글로 표현하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 반은 주1회 신문을 활용하여 NIE 수업을 하고 있다. 신문 광고란에 소개된 '2017 눈뫼 허웅 선생 추모 한글 사랑 생활 수기 공모전'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한글의 소중함이 아이들의 머리나 가슴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져 버리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 계획한 수업이었다.

평소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인데 뭐가 그리 궁금하고 급한지 질문을 쏟아냈다.

"선생님, 수기가 뭐예요?" "생활 수기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눈뫼 허웅 선생이 누구에요? 무슨 일을 한 사람이에요?" "왜 허웅 선생님을 추모해요?"

"허웅 선생님께 편지형식으로 쓰면 안 되나요?"

허웅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글쓰기에 대한 의욕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다. 그래서 우리는 또 허웅 선생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허웅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학자였던 최현배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국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해서 훈민정음과 국어 문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국어학자, 한글학자, 언어학자가 되어 초등학교 한자교육 반대, 한자혼용 반대, 한글날 국경일 제정 등 한글과 국어 문화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한 분이에요. 한마디로 허웅은 한글학자인 주시경, 최현배와 함께 한글을 빛낸 인물입니다."

"선생님, 허웅 선생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자를 읽고 쓰면서 공부를 했겠네요."

"한자를 같이 쓰면 공부가 훨씬 어려울 것 같아요."

"한글날에 태극기를 달도록 만든 사람도 허웅 선생님이네요."

"세종대왕처럼 허웅도 정말 고맙고 훌륭한 분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아이들의 반응은 샘물처럼 맑고 봄 햇살처럼 따뜻했다.

"자, 그럼 우리 한글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볼까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띄어쓰기에 맞게 바른 글씨로 써 봅시다."

생활 수기를 처음 써 보는 아이들이라 대부분 한글에 대한 사실이나 자신의 생각, 느낌, 정서 등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 명도 빠짐없이 진지하게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갔다. 책을 읽는 모습 이상으로 글을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에게 더없이 사랑스럽고 별처럼 반짝거렸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말, 언어생활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해마다 느끼는 것인데, 아이들의 말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말다툼을 할 때뿐만 아니라 놀이를 할 때, 공공장소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시청할 때도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함부로 말하거나 듣기에 매우 좋지 않은 말, 심지어 욕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눈으로 보여주는 실험 영상인 <말의 힘 '고맙습니다'와 '짜증나'>를 시청하게 했다.

"선생님, 저거 진짜예요? 정말 밥이 시커멓게 변해요?"

"우아, 저거 실화예요?"

"선생님, 우리도 저 실험 해 봐요."

아이들은 신기해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말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하기 위하여 <말의 힘 '고맙습니다'와 '짜증나'> 실험을 교실에서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나쁜 말이나 욕을 하고 싶을 때 꾹 참았다가 유리병 속에 든 하얀 밥알에다 대고 표현하게 했다. 대신 어떠한 상황에서도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실험을 한 지 오늘로써 꼭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아직 유리병 속의 밥알들은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나를 찾아와서 누가 자기에게 욕을 했다고 고자질하거나 상처가 되는 말 때문에 속상해서 우는 일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매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눈도 귀도 없는 또 다른 유리병 속의 하얀 밥알들에게 아이들은 '고마워요. 사랑해요. 오늘 참 잘했어요.'라고 속삭인다. 그 모습이 참 예쁘다.

'얘들아, 그동안 선생님을 믿고 잘 따라 주어서 고마워, 앞으로 선생님이 먼저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르고 쓰고 아름답게 가꾸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너희들에게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칭찬하고 격려할게. 우리 모두 사랑으로 소통하는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 나가자.'

"여러분, 고마워요. 사랑해요. 오늘 참 잘했어요."

한 달 가까이 진행했던 한글 사랑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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